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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자라는 복음이 열매

본문 /  골 1: 1- 8


1. 골로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의 마지막부분 말씀처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과 또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 그리고 그 성령이 임하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게 되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게 된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렇게 사도들이 전한 주의 이름만이 죄 사함을 얻는 능력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가는 곳 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증거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고 하며 또 사도행전 16장에도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합니다. 이러한 주의 이름의 증거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로 또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 끝까지 증거 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 바로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사도행전이 아니라, 성령 행전이 맞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그 일들은 사도들의 능력이 아닌 오직 주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렇게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이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을 잡아 죽여야 마땅하다고 여긴 유대교에 열심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앞장 선 사람이며, 얼마나 열심히 복음 전하는 자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였는지 외국에서 예수 믿는 자들까지 잡아 오기 위해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전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대교에 열심을 낸 사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증거 한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여 열매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우리가 보고 골로새인 것입니다. 골로새는 조그마한 성읍인데 여기에 세워진 골로새 교회는 바울사도가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은 곳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골2:1)이라고 하는 것과 1장에서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골1:7)라고 하는 것을 보면,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자기 고향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골로새 교회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골로새 교회가 복음을 받고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데 거짓 선생들이 이곳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거짓 선생들 즉 이단들의 특징은 딱 한가지로 모아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신 것이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공로를 흠집 내는 것이 이단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봅니다. 통일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실패이며, 반쪽 구원이라고 합니다. 몰몬교는 새로운 계시가 미국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안식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알려진 이단들보다 더 교묘한 이단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6-29)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증거 한 것처럼, 골로새서도 거짓 선생들의 선동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4-17)고 합니다. 만물이 예수님에게서 창조되되 모든 것들이 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우주만물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까지도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이런 웅장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골로새에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2.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도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커녕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이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바울이 자신 스스로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인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2절). 그러나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우리 또한 주님께 부름 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유효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기 전에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어제까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만 전부인줄 알고 살던 사람이 오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이렇게 거룩한 무리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능력이나 소질을 개발하여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태어날 수가 없듯이 복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결코 그 사람의 자질이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율법의 선생인 니고데모도 예수님 앞에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를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스스로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아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에스겔이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신다고 답을 합니다. 그때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 대하여 대언하라고 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여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명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뼈들이 움직이듯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사람의 골격이 되고 거기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지만 생기는 없었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대언을 하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곧 살아나니 큰 군대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과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 즉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마른 뼈들을 조직하고, 사람의 모습이 되고 또한 생기에 대하여 대언하니 생기가 들어와서 사람이 되어 일어나는 것처럼, 복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능력이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말씀이 살과 피를 입으시고 오셔서 그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 되는 곳은 어디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름을 들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복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게 된 자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입니다. 그냥 원래부터 타고난 신실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성도가 되는 것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나듯이, 복음을 증거 하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면 그것을 듣고 믿는 자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증거 되어 골로새 지역에 성도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것입니다.


3. 열매 맺는 삶

오늘 본문을 보면 2절까지는 이렇게 인사말을 하고서는 3절부터 8절까지는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 만들어 낸 자기들의 신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 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마다 간증하는 하나님이 다 다릅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 사도는 무엇을 듣고서 골로새 교회의 사람들을 성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인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까?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가 없는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음이 좋다고 자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결단코 자기의 믿음을 과시할 수가 없습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는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인종이나 피부색이의 차별이 없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그 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용서가 나오는 사랑입니다. 긍휼이 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랑이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안의 사랑이란 자기를 버려 형제의 유익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의 사랑은 반드시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은 결국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고 합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인데 이 소망이란 곧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이런 믿음과 사랑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열매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열매가 골로새 교회에 언제부터 나온 것입니까? 6절에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고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골로새에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또한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란다고 합니다. 결국 골로새 성도들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열매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노력해서 힘써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때가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우리에게서 그 들은 다음부터 과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열매로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열매가 없다면 회개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다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은혜를 깨닫고 난 날부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더 풍성하고 충만하여 열매로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우리도 복음의 은혜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하여 더 풍성하여지고 충만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삶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여 하나님이 우리 주위에 세우신 지체들이 그런 우리를 통해 더욱 더 세워지는 역사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 있는 사도행전이라는 성경이 성령행전이 더 옳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골로새 교회에 등장한 이단의 특징과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3. 골로새에 보낸 이 편지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예수님의 계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오늘 말씀에서 복음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5.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분별이 된다고 합니까?

6. 오늘 바울이 골로새에 말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무엇입니까?

7. 복음의 열매는 어떻게 맺어지며, 복음을 들었음에도 열매가 없다면 해야 일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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