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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 아들의 나라와 그에 합당한 기도

본문 /  골 1: 9-14


1. 신령한 지혜와 총명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이후로 그 아들의 나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시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라고 합니다. 전에 살던 우리가 살던 나라는 흑암의 권세 즉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나라로 옮겨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가 달라졌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도 달라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에 의하면 은혜와 평강의 나라이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에 대하여 먼저 감사를 한 것입니다. 이 나라에 대한 소식이 복음이며, 이 복음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 나라의 특징이 그 나라에 속한 우리들을 통하여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이며, 같은 믿음의 형제들끼리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그 아들의 나라 곧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들의 나라로 소속이 옮겨졌기에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도록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1:9)라고 합니다. 골로새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과 사랑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터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그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첫째,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주어져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그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제일먼저 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에바브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인데 이곳에 예수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나, 신비한 체험이나, 금욕적인 주장을 하는 여러 거짓 선생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더욱 더 믿음이 성장하고 또 고급한 신앙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골2:16-23)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이 다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자들이 실체를 붙들고 있는 자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겸손함을 떠는 것입니다. 천사 숭배함과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서는 교만한 자가 된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하는 것과 같이 의식적인 규정에 순종하는 것과 육체적인 금욕들이 지혜 있는 모양으로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모양을 내는 육체적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와 비슷한 신앙의 주장을 참으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신앙으로 보고, 고급한 신자가 되려면 방언을 해야 하고, 신비체험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만이 아니라 삼박자 축복을 받아야만 영적인 깊이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과 수많은 교회성장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면서 자기들만이 예수님이 이 시대에 허락한 교회성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선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는 이천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바울사도도 자람과 열매와 충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과 전혀 다름을 알아야만 합니다. 바울의 자람과 열매와 충만함에 대한 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통과 의례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 같이 예수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같아 보여도 끝에 갈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다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란 끝이 다르다는 말처럼 무엇이 최종 방향이며 목표인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첫째로 기도한 내용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두 번째 기도의 내용입니다.


2. 그 외 기도제목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 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을 쓰는 바울사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율법을 잘 지키며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가 분별되기에 범사에 어떻게 행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에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고 합니다. 세상의 근심은 세상을 최종목표로 여기기에 생기는 근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에 최종목표를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그 최종목표의 자리에 서게 할 것이기에 세상의 근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기도제목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10절).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한 것이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말씀합니다.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나오는 것만이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선한 열매들이 나오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한 열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하면, 어떤 일의 결과를 가지고 자기의 자랑과 공로로 돌리는지 아니면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지 그 사람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네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10절).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본 것이 보내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쳐두고 다른 하나님을 찾는 것은 모두 가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11절). 그 영광의 힘이란 세상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시킨 십자가의 힘입니다.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기에 승리요 영광의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에베소서 1장에 보면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1:19-20)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데 이 능력으로 자기 백성도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신 것입니다. 이러한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그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기에 이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 기도는,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11절). 견디고 참는 것은 편하고 좋은 일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상황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 어떻게 기쁨으로 견디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주님의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기도는,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2)고 합니다. 우리로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미 얻게 하셨기에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골로새 교회는 복음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의 간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자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라고 인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내용을 증거 하면서 알게 해 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기도를 일곱 가지로 나눈 것은, 하나님께 이렇게 하여 달라는 부분을 나누어 보니 일곱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한 가지씩 설교를 하면 일곱 번을 해도 부족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도들이 우리의 삶에 무슨 보탬이 되는 기도가 하나라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해 달라거나, 자녀들의 취직을 위한 것이거나,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거나, 세상의 영광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 답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 다른 나라 다른 삶

다시 오늘 본문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나라 시민이 되었기에 이제 그 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오면 시골에서 농사짓던 것 다 버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농사짓는 도구들이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차이는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죽자 살자 좋아하고 추구한 것이 그 나라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배설물이요 쓰레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아들의 나라에 배설물과 쓰레기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1:5)고 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 빛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그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계21:4). 처음 것은 다 지나간 것입니다. 계시록 22장에서는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있으며 그 얼굴을 볼 것이며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신다는 것입니다(계22:5). 그러면 흑암의 권세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들의 나라와 빛의 나라의 기업을 얻게 된 것입니까? 14절의 말씀처럼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 즉 십자가의 피로 해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보시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세상에 썩어질 기업을 이어 받으려 해도 그 기업의 경영을 알기 위해 회장 아들이라도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받은 자들이 그 나라의 비밀을 배우며 알아가는 것도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아들의 공로로만 들어가는 나라이지만 이제 그 나라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더 많이 알아가며 또 자라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만함이며 열매인 것입니다. 이 소식을 바울사도가 전하는 것은 그의 받은바 사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아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받은바 사명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26장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7-18)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과 이 은혜에 감사와 감격이 충만함으로 바울의 골로새 교회를 위한 기도처럼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여 우리도 우리에게 허락된 그 아들의 나라를 자랑하며 또 증거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는 기도를 먼저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골로새서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무엇입니까?

4. 바울의 기도 제목에 대한 그 내용과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바울의 기도제목에 세상에 속한 내용들이 하나도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우리가 아들의 나라, 빛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우리가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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