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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림자를 놓고 실체를 붙드는 신앙

본문 / 2:16-19

 

1. 십자가의 승리

우리는 지난주에 십자가로 승리하였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유대인이 보아도 이방인이 보아도 십자가란 저주받아 죽은 죽음인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은 승리라고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는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죄인이라고 몰아붙이는 의문에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마치 갚을 수 없는 빚 문서가 있는데 이것을 대신 다 갚으시고 찢어버리신 것이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더 쉬운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인 것입니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갔는데 그곳에 이미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이 식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성도님이 먼저 식사를 하고 나가셨는데 나중에 식사 후에 나가서 계산하려고 하니 이미 계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나간 성도님이 대신 밥값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법하고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은 마치 실체처럼 느끼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그림자 같이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밥값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이야기는 성경 속의 옛날이야기처럼만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이 실체라고 말씀하는 이 내용은 우리에게는 그림자 같고, 세상의 그림자 같은 이야기는 실체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를 보면 솔로몬이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1)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도 있었고 부자이기도 하였고 권력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평소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사업을 확장도 해 보고, 별장도 지어보고, 술을 마셔도 보고, 여자를 무려 천명이나 거느려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말이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2:17)고 합니다. 결국은 죽어가는 인생에게 무엇이 새롭다고 할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저 사람은 성공하였다 또는 실패하였다고 말하는 것의 기준은 모두 다 솔로몬이 말한 모든 것들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바람을 한번 잡아보려고 평생을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실체를 붙들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의 소식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아는 사람에게만 기뻐하는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와 허물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야만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받아 보내신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에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그 죄를 사함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임을 알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승리임을 믿는 다는 것은, 중세시대 십자군이 십자가 마크를 달고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한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앞세웠지만 인간들의 탐욕의 다른 이름일 뿐인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으니 그 승리를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부유하고 성공한 자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마치 중세시대의 십자군 전쟁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욕망과 탐욕을 성취하려고 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믿음을 동원해서 세상의 것을 더 얻고자 하는 탐욕의 전쟁인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2. 거짓된 내용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2:16)고 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하는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십자가로 승리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이미 승리한 것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골로새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승리라고 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는데, 그 십자가만이 승리가 아니라 다른 것도 더 추가하여야 더 고급한 신자가 되고, 더 충만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단번에 알아채겠지만 분명히 이들도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교묘하게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하는 식이기에 그들의 말과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선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마셔야 할지 아니면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금령들은 다 율법에 속한 것입니다. 또한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도 다 율법에 속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확실하게 실체라고 여기며 붙들 수 있는 것을 그림자라고 말하고, 내가 확실하게 붙들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을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오기 전까지는 그림자의 안내를 받지만 그러나 실체가 오면 이제 더 이상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자란 붙든다고 해서 붙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란 너무나 잘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이기에 전혀 그림자로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아니 먹고 하는 것을 율법을 따라 지키는 것은 자기가 분명히 잡을 수 있는 것이기에 실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절기를 지키고, 초하루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얼마든지 실체라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고를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1-5)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이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바로 그림자를 실체라고 여기고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날과 초하루와 절기와 안식일과 먹고 마시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2:18) 라고 하여 꾸며낸 겸손인 것입니다. 꾸며낸 겸손이라는 것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사양할 수도 있고 또는 겸손하게 그 은혜를 갚아 내겠다는 식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천사 숭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사를 숭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천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기에 천사처럼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천사들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허물과 실수가 많은 사람들의 예배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주 착한 사람을 보면 천사 표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오늘날에도 재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결코 제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제는 우리의 죄를 위해 다시 속죄할 제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믿는 것이 예배요 죄 사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하여 완전히 한편의 멋진 뮤지컬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예배를 디자인하고 리허설하면서 분초를 따지면서 음악과 배경과 설교가 함께 어우러지게 합니다. 그리고 예배 마치고 나면 예배기획자들이 모여서 다시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제대로 되었고, 무엇이 시정해야 할 것인가를 의논해서 실수하지 않게 합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서 졸도하게 할 만큼 예배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열심히 예배를 드렸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매끄럽고 세련되게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것을 붙드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인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와 초하루나 안식일 그리고 꾸며낸 겸손함과 천사를 숭배함 이런 것들이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인하여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상이며 실체인데 이 상을 빼앗으려고 그림자를 대치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주일성수를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와 헌금과 기도들이 다 그 은혜를 알기에 나타나는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인양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그림자를 붙들게 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여기는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줄 알았는데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믿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에서 급여가 나오기 때문에 교회를 믿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하면서 그림자를 붙들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도 좋아하고, 교회의 수입도 좋아지고, 목사의 형편도 나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만 줄기차게 전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교인도 좋고, 목사도 좋은 것이 될까 하는 식으로 궁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성경을 보면 얼마든지 사람의 행위를 부추길 수 있는 내용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무엇이 그림자인지 실체인지 구분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이렇게 하면 저주를 받는 다는 이야기를 계속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복을 받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설교시간마다 몇 개씩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목사에게 잘하니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성도님들 중에 어떤 분들은 목사님이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도 잘된다는 이야기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습니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니 목사가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더 교회를 나오고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것만 좋다고 붙들고 사는데 거기에 목사까지 더 보탤 것이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말하지 않으면서 과연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고 점검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즉 십자가의 승리가 아닌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듣기 좋게 과장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사탄의 노림수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2:18)라고 하여 그 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는 그런 것을 말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은 내가 어떻게 교회에 열심을 내었더니 복을 받았다는 것도 내가 본 것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간증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미혹하게 하는 영이 배후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2:19)고 하여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데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함으로 머리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와 은사를 막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부터 온 몸이 마디와 힘줄로 공급을 받습니다.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오직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복이 바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죄사함과 영원한 아들 됨과 영원한 기업이 모두다 우리의 머리요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림자를 붙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붙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나 오늘날 이단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신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도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10:1)고 하며 또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9-10)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실체와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언제나 그림자가 아닌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하십니다. 단지 무엇이 그림자고 또 무엇이 실체인지 분별하지 못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림자와 실체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것이 참으로 복이며 실체인 것을 믿고 살아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인간의 어리석음은 무엇이며, 솔로몬이 말한 바람을 잡으려고 애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르게 아는 자들과 잘못 아는 자들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3.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체와 그림자를 분별하기 힘든 까닭은 무엇입니까?

4. 믿음을 떠난 자들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5. 오늘날 신앙생활에서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붙들며 살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

6. 오늘날 교회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와 들어야만 하는 설교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7. 그때의 거짓 선생들이나 오늘날 이단들이 교회들에게 하려고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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