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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본문 / 3: 1- 4

 

1.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좌우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 좌우명들은 대부분 자기의 삶에 있어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들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좌우명을 되 뇌이고 바라보면서 다시 일어서고 시작하는데 힘이 될 만한 것들입니다. 그럼 예수 믿는 여러분들의 삶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아마 우리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좌우명을 이미 가지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혹시라도 아직도 좌우명이 없는 분들은 오늘 이 말씀이 우리 평생의 삶의 좌우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또 이런 설교를 하나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왜 자꾸만 땅의 것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시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땅의 것을 추구하고 살아가기에 그 내용은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너무나도 다들 잘 알아서 땅의 것을 구하며 살고 계실 것입니다. 땅의 것은 우리들에게서 있어서는 너무나도 강력한 본능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나마 우리들의 본능적인 이야기를 접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 말고 과연 어디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권면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가정생활도 하지 말고, 직장생활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일상의 삶도 이 땅이 전부로 알고 사는 사람들과 위엣 것을 찾는 우리들과는 다른 것이어야만 합니다. 위에 것을 찾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정생활을 해야 하고 또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18절 이하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아비 또 종들과 상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짓 선생들이나 꿈꾸는 자들처럼 그냥 뜬 구름 찾듯이 위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정생활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어디에 속하여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3:1)고 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들이 이어지는 뒤의 내용의 이유와 원인이 될 때 사용되는 접속사이기에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부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먼저 앞에 있는 내용 중에 몇 절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6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2:6)”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서 주체적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 들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13절에서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다”(2:13)고 하는 말씀으로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죽어 있는 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우리를 넣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 혼자만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함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넣어주시는가 하면 바로 세례라고 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세례란 연합되는 것”(2:12)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6장에서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1)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묶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자가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 살며,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이며, 위로부터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위엣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살리심, 즉 위로부터 거듭나지 못하였다면 아무리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해도 엉뚱한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것이라고는 말하면서 그 내용물들이 다 땅에 있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 하는 말처럼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무언가 복이 쏟아지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땅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2. 위엣 것

그런데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저 자신도 재물이 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특히 성도 중에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의 사정을 들을 때든지 또는 사택을 옮겨야 한다든지 할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사이에 전세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르다 보니 온갖 땅의 생각들이 저절로 드는 것입니다. 이 나이에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가 하는 생각부터 별별 생각이 다 나는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각이 이것이 나의 수준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본문 말씀이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인데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위엣 것을 찾지 않고 사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다는데 또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다는데 하는 말씀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는 위엣 것을 찾아 나설 능력이 없기에 주님께서 위엣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조치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평소에 바라는 대로 되었다면 나는 위엣 것을 찾을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언제 하늘을 쳐다보겠습니까? 땅에서 모든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되어 질 때는 쳐다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땅의 소망과 기대가 끊어질 때, 농사짓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피난처가 될 만한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다 파하시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심을 알게 하시려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볼 때,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보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또 어떤 특징이 있는가 하면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1-3)고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게 되는데 위엣 것이란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주어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결정체가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찾는 다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며, 찾는 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2)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 말씀과 거꾸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아서 언제나 땅의 것으로 하나님께 보답하려고 하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임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주님께서 당신의 몸 된 자들을 가만히 두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흔들어서라도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도록 조치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큰 부자가 있었는데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유산을 달라고 하니 이런 불효자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유산을 줍니다. 유산 다 날릴 것을 알고도 주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외국에 나가 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기는 것을 둘째 치고 그곳에서 유흥비로 그 유산을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그때 마침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취직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겨우 구한 곳이 돼지를 치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는데 그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이 아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집에는 종들도 다들 배부르게 먹고 사는데 나는 여기서 뭐하고 있나 하며,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아들의 자격이 없지만 품꾼의 하나라도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집 앞에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름 순종하며 살았다고 여기는 큰 아들과 대비하여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며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즉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 아들이 있는 땅에 흉년이 들게 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비유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 가서 장사하여 성공하겠다는 그 나라에 흉년이 들게 함으로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이라면 반드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도록 조치를 하실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애매하게 고난을 받고, 온갖 어려움들이 닥칠 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땅에 것이 아닌 위엣 것을 찾게 하시려는 사랑의 손길이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소한 이익들로 인하여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는가 하면서 원망하지만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데도 우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은 우리들처럼 자기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심한 고난을 받았는지 살 소망 까지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까? 자기를 믿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어떤 능력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의 말씀대로 하면 세상의 초등학문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금욕적인 행위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의문에 속한 것을 지켰다고 하는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아무리 지혜롭게 보인다고 하여도 이런 것들은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이라고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세상의 속한 것들만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엣 것을 추구하겠다는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성취는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우리가 영원히 거하여야 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 하늘 소망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3:3)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이 살아있음은 실상 죽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지금 성도들을 보면 세상에서 별 볼일 없어 보이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그 결과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볼품이 없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 온갖 모독을 다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하늘의 생명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 역시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같은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기에 땅에 것만 생각하고 사는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역시 생명이 감추어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3:4)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모든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의 소망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 생명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입을 것입니다. 그 날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이라는 이 시간에 비록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이런 소망을 갖게 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며 사는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들이 거의 다 이루어져 갑니다.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중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날을 생각하면서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전부인양 사는 어리석은 삶을 버리고, 이제 우리 하나님의 간섭과 참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날을 소망하며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는 자로 세워져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사는 예원 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들이 예수님을 주로 받은 것이 은혜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은혜로 주와 하나 된 자들에게서 변화되고 나타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심은 무엇이며, 그 일하심의 결과는 무엇을 만드는 것입니까?

4.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은 무슨 뜻이며, 다른 표현으로 하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5. 오늘날 우리 가운데 참견과 간섭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6. 우리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믿는 우리들의 소망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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