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4,555
오늘 : 331
어제 : 339

페이지뷰

전체 : 78,757,367
오늘 : 1,031
어제 : 1,15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집사를 세워 문제를 맡기는 사도들

본문 / 6: 1- 7

 

 

1. 지도자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아마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기준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모두 다 다른 것이기에 이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그래도 보편적으로 보면 주로 이러한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교회, 따뜻한 교회, 세상에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라고 해서 천대하지 않고 모두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세상과 다른 모습이 있는 교회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한 다면 아마도 좋은 프로그램과 멋진 예배당이 있는 교회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해보니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과연 교회에 모두 천사 표만 모여 있는 것 같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여전히 시기도 있고, 질투도 있고, 수군수군 되는 것도 있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도 있다는 것을 겪으셔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의 초대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에서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였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고, 자기의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아니하고 유무상통하였더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구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오늘날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아무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다 할지라도 역시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부족하여 이러한 문제가 초대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 부족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도들이 있어도 교회 안에 구제 문제에 있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성령이 충만하면 말 한마디로 척척 움직여지고 아무런 잡음도 없이 모든 일이 잘 진행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교회는 여름에 전교인 여름수련회를 갑니다. 그런데 그때 순서를 맡은 분들이 앞에서 목청껏 외치며 인도하여도 별반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의 말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척척 움직이게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어 진다면 그곳은 절대 군주나 절대 독재자가 강압적으로 다스리는 곳이거나 아니면 이단의 교주가 움직이는 곳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여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이기에 후에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역시 반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장을 맡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을 그만 두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까닭을 물으니, 자기가 초등학교에서 반장 할 때에는 말을 잘 들었는데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있어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은 지도자 한 사람을 모두 다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꼭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도자가 되어 인도를 하면 모두가 알아듣고 척척 따라 움직여 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생각처럼 모두가 다 따라온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여도 다 따라 오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성경 전체에 나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나라는 그런 왕에 의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가 있는데 이스라엘은 오합지졸 같아 보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가 한마디 하면 모두가 척척 모이고 또 무엇인가를 지시하면 뭐라고 핑계 대지 않고 하는 그러한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목사에게 카르스마가 있다고 하며 또 그런 교회의 대부분은 어떤 특정인의 카리스마적 지배가 너무 막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참된 카리스마를 받은 사도들이 있던 초대교회에서 조차 구제문제로 인하여 소란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문제와 해결방안

오늘 본문은 성경에 등장하는 교회 내부에서의 최초의 갈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것도 특별히 민감한 문제점을 두고 생겼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두 개의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 이 갈등의 원인이었습니다. 한 집단은 히브리파 유대인들, 즉 히브리어 내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고, 다른 한 집단은 헬라파 유대인들, 즉 헬라어(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은 인생의 말기에 성전 근처에서 살기 위하여, 즉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가까이에서 지내는 것이라 여겨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남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과부가 된 그들의 아내들은 흔히 생계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들은 대개 정착하여 사는 유대 가족들에게 소속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이들이 함께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두 공평하게 구제가 시행되어야 하는데 히브리파 과부들은 구제의 명단에 다 들어있는데 헬라파 과부들은 명단에서 빠진 것입니다. 그러자 헬라파에서 불만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식으로 말하자면 개척멤버하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하고 알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세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돈이 직결되는 구제문제가 대두 되었기에 아주 민감한 사안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구제를 할 때 곤란한 문제들이 생깁니다. 어떤 가정을 구제하면 자기들과의 인정에 따라서 왜 누구는 안 해주고 누구는 해 주는가, 저 집보다 이 집이 더 어려운데 하는 그런 문제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나오면 사도들이 알아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면 될 텐데 오히려 자기들은 발을 빼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다가 현장에서 죽어 버렸는데 그러한 권세로 한마디만 하면 이런 문제정도는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겠다고 하면서 구제문제를 집사를 뽑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이 구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에 있는 것임을 사도들이 직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제도 귀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구제로 인해 이 땅에서의 목숨을 잠시 연장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구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회에서 빵과 복음이라고 하여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자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결국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어느 곳이든 빵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사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복음 사역의 현장에서도 성경을 더 원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빵을 공급받아 먹는 건 이 땅에서 목숨을 하루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빵 보다는 복음을 달라고 하는 것이 복음 현장의 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굳이 복음 전하는 곳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믿는 자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관심과 초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제를 하고 또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도 정말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또 믿음으로서 감사함으로 구제를 하고 도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제를 받고 또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것이 형제의 땀과 수고로 된 것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제하는 자와 받는 자의 마땅한 마음이며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사를 세우고 구제를 하는 일에 있어서 바울 사도는 과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에 보면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딤전5:1-16)고 합니다. 구제의 대상이 되는 참 과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그 조건이 참으로 까다롭습니다. 교회에서 명단에 올려서 구제하여야 할 참 과부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서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자녀나 손자나 도울 친척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여야 하고 또 재혼을 하였다면 안 되고 그리고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로 하여금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집사들이 살펴보고 자기의 인정이나 이해관계에 끌리지 않고 마땅히 구제를 하여야할 사람에게 구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할 때에 모두가 어떠한 심정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마음

우리가 이런 주의 사역을 하며 품어야 할 심정에 대해 빌립보서 2장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11)고 합니다.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언제 이러한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권면, 사랑,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 자비가 있거든 이라고 말씀합니다. 나쁜 내용이 아니라 참으로 좋은 내용을 할 때 그리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좋은 내용의 열매들이 가득하여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구제를 하고 선교를 하고 봉사를 하고 전도를 하고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중에서도 무엇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다툼이나 허영으로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경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편과 네 편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모습이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이런 어리석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정말 보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교회가 잘 될 텐데, 아니면 저 사람만 안 보이면 내가 살맛이 날 텐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우리 가운데 없다면 자기는 늘 착한 사람인줄 착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을 우리에게 붙여 주심으로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또 나밖에 모르는 인간인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문제이구나, 나만 없어지면 오히려 일이 잘 될 텐데 내가 오히려 방해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낙망하여 뛰쳐나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더 무릎을 꿇고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늘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죽기까지 낮아지는 것입니다. 구제하면서 허영이나 다툼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목사가 말씀으로 봉사하는 것도, 집사가 구제나 다른 것으로 봉사하는 것도 언제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교회로 부른 것입니다. 예수 믿고 바로 천국가게 하시지 않고 교회로 부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우리 모두는 집사로 또는 봉사자로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과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맡겨진 직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증거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거룩한 뜻임을 알아 우리의 삶속에서 그 부르신 주님의 뜻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성경에서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르게 나타납니까?

2.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또 그런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 오늘 초대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에 발생한 초대교회의 문제에 대한 사도들의 반응과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5. 구제에 대한 교회 내에서의 성경적 원리와 그 대상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언제 품으라 하며 또 그래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오늘도 우리를 세우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7 12월 7일 / 사도행전46. (행13:4-12) 지혜로운 사람 서기오와 마귀의 자식 바예수 관리자 2014.12.07 705
216 11월 30일 / 사도행전45. (행13:1-3) 주의 일을 위하여 성령이 이르시되 관리자 2014.11.29 614
215 11월 23일 / 사도행전44. (행12:19-25) 가이사랴에서의 헤롯의 죽음 관리자 2014.11.23 782
214 11월 16일 추수감사주일 / (히13:7-8) 믿음으로 하는 참된 감사 관리자 2014.11.15 433
213 11월 9일 / 사도행전43. (행12:1-19)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 관리자 2014.11.08 635
212 11월 2일 / 사도행전42. (행11:27-30) 흉년의 때에 힘대로 부조하는 교회 관리자 2014.11.02 587
211 10월 26일 / 사도행전41. (행11:19-26)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관리자 2014.10.25 655
210 10월 19일 / 사도행전40. (행11:1-18)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의 삶 관리자 2014.10.18 615
209 10월 12일 / 사도행전39. (행10:34-48) 주님의 일하심을 누가 금하리요 관리자 2014.10.12 605
208 10월 5일 / 사도행전38. (행9:32-43)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주님의 일하심 관리자 2014.10.05 722
207 9월 28일 / 사도행전37. (행9:19-31)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함 관리자 2014.09.26 606
206 9월 21일 / 사도행전36. (행9:10-19)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관리자 2014.09.20 660
205 9월 14일 / 사도행전35. (행9:2-9) 사울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뜻 관리자 2014.09.14 803
204 9월 7일 / 사도행전34. (행8:26-40) 빌립을 통로로 하는 성령의 전도 관리자 2014.09.06 332
203 8월 31일 / 사도행전33. (행8:14-17)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슴을 받았다 함을 듣고 관리자 2014.08.30 704
202 8월 24일 / 사도행전32. (행8:9-25) 마술사 시몬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관리자 2014.08.22 1148
201 8월 16일 / 사도행전31. (행8:1-8) 큰 핍박 그리고 큰 기쁨 관리자 2014.08.22 511
200 8월 10일 / 사도행전30. (행7:54-60) 스데반의 죽음과 우리가 가야할 십자가의 삶 관리자 2014.08.09 668
199 7월 27일 / 사도행전 29. (행7:44-53) 성전에 담긴 하나님의 뜻 관리자 2014.07.26 771
198 7월 20일 / 사도행전28. (행7:37-45) 모세 그리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 12 관리자 2014.07.19 1065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