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1,558
오늘 : 20
어제 : 256

페이지뷰

전체 : 78,743,082
오늘 : 63
어제 : 1,287
조회 수 196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경 / 요17:17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그 소속이 바뀌는 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에 서는 것이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본문 속에 나타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는 말씀의 좀 다른 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만나와 말씀

오늘 본문 앞에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보전’은 11절에서 나오고, 여기 15절에서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 기도를 제자들 앞에서 하시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다 마치시고 떠나가실 텐데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구원은 단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그 소속을 변화시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뜻과 계획이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 이 기도문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위해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서 믿게 하였으니, 이제는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권고라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보존하옵시며 주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며 주의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의미심장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아 행하기를 요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쪽에서 행해야 되는 어떤 일과 섭리임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흐름을 성경 전체를 통해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신명기 8장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1-6)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계획 되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아 광야생활 사십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 사십년을 사는데 있어 요구되는 것이 ‘너희들이 사는 것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보기에는 신자는 세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진리 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영혼과 미래를 준비하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해야 된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만 이 사건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의도된 말씀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입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1-3) 이 같은 원망 이후에 만나가 주어지는데 이 원망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놀라운 간섭에 대해 기뻐하며 찬송하고 난 직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체험을 했음에도 하루 세 번씩 배고픔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배가 고픈데 도대체 자유와 해방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비록 노예였을지라도 먹고 입고 잘 곳이 있었지만 지금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해방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원망인 것입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 앞에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16:4-8)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아침에는 만나가 내리고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디 내 말을 듣나, 안 듣나 보자’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싶지만 배가 고픈 환경 가운데서는 도무지 하나님을 제대로 따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내 말을 지키나 보자고 제안하신 사건이 만나사건입니다. 이 같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신명기 8장을 보면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 만나 사건은 단순히 먹을 것을 주어서 과연 말씀을 지킬 것인가 아닌가를 보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이 못 지킬 것을 아시고 계셨지만 다만 이스라엘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먹을 것으로 이스라엘이 배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음을 보게 하심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는 인간의 어떤 나쁜 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존재임을 확인시키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란 육신적인 문제인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다른 외적인 것으로는 신앙생활에 대한 해결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진리

배고파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리기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허락하사 온전하게 보살피고 보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역의 연속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럴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광야 사십년 동안에 스스로 진리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리고, 미리암까지 원망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기도 하였으며, 고라 자손들은 반역으로 향로에서 불이 나와 죽었으며, 땅이 갈라져 그 일족들이 멸족 당하는 일들이 광야 40년 동안 연속됩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다가 가나안 입국을 거절당하고 광야 40년 생활을 자초합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이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뜻대로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결국 너희들이 말하는 대로 어떤 조건들을 다 만족시켜 환경을 조정해 주어도 하나님을 좇아오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아야 된다고 대조시키고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조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 말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접어두고 무조건 이 문제만 해결되면 주를 더 열심히 믿겠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을 봅니다. 만나만 주시면, 불기둥만 주시면 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인간이란 존재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잘난 존재들이 못됩니다. 이것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이끄셔서 실상을 보게 만들고 그리고 참된 신앙의 자세를 가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인 권위를 가진 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진리라는 것은 모두 경험과 검증을 통해 받아 드려집니다. 물은 0도 이하가 되면 얼고, 지구는 둥근데도 중력에 의해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물이 0도 이하에서 얼며, 둥근 지구의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고 살게 하는 중력은 어떻게 존재케 되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대답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궁극적인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냐 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은 하나님의 집념이요,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결정이면 곧 진리입니다. 그분이 태양에게 멈추라 하면 그것이 진리가 되어 멈추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왜 지구가 둥글어야 하는 가에는 답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그렇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로 창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이 표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권위자가 결정을 내리고 판단하여 계획한 모든 것이 진리임을 알고, 그것이 표현된 것이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잘 묘사된 곳이 이사야서 55장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8-11) 여기 보면 내 생각부터 시작하여 내 뜻과 말씀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생각, 뜻, 말씀은 같은 의미로 쓰여 졌습니다. 하나도 그 말이 헛되지 않다고 하십니다. 마치 비가 내려서 그냥 하늘로 가지 않고 땅을 적시어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같이 내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3. 간섭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성경이 시편 105편으로 하나님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는 기록입니다.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시105:5-7)라고 하여 ‘판단’이라는 말씀이 거듭 나타납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8-10절)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은 저들이 무엇을 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고 표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결심과 결정들을 나타내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간섭하셨고 그의 종들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뒤의 요셉의 사건에서도 설명하기를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17-19절)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 역사를 간섭하시며 그러기 위하여 각 개인들을 간섭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의 선택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시고 섭리하시고 다루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집념의 표현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분의 기도에서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이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3-6) 물론 우리가 성화라는 차원에서 책임져야 하고 반응해야 하며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차원의 시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명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지신 집념과 열심으로 간섭하시는 목적물이요 대상물이라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이해가 우리를 모든 시험과 어려움에서부터 건져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아는 것만큼 행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그것을 감당치 못하여 중압감에 짓눌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 중에서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자책감으로 자신을 매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그 열정과 사랑을 내가 나를 깨끗케 한다는 이름으로 대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가장 큰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또 들으려 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서 누구를 책잡으려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잡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격적 결함과 자기에게 유리한 말은 기억하고, 불리한 말은 잊어버리는 것 등 여러 가지 결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 늘 좌절과 절망과 그런 한심한 행위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시며, 하나님의 그 열심과 사랑과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어 마침내 당신이 요구하시는 자리에 우리를 세우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요, 힘이요 자랑이요, 신자가 갖는 놀라운 믿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여 꺼지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세상적으로는 먹고 마시는 것과 주거 환경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요즘은 못 먹어서 병이 생기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먹어 생기는 병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는 우리는 훨씬 많은 불평과 불만과 게으름과 완악함에 빠졌습니다. 그러고도 그것이 자신 탓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 탓이라 핑계케 하는 손가락질만 열심히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온갖 지적과 뒤 담화를 교회에서 하며 교회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듯한 포장을 하고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그런 것들로 적당히 덮고 있습니다. 남을 짓밟아 나의 자존심을 채우는 일에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낮추사 하나님 앞에 엎드려 질 수밖에 없으며 기도해야 되며 불쌍히 여기심을 구해야 하는 자인 줄을 알게 만드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은혜며 감사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과 열심을 알아 끝없이 찬양하며 엎드려 주를 구하며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핑계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만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신데 그 진리가 권위가 있는 진리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시편 105편의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자임에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3 1월 3일 1부 /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10.02.06 3383
732 1월 10일 2부 /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 - 시각의 변화 관리자 2010.02.06 2525
731 1월 17일 2부 / 너희 마음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관리자 2010.02.06 2737
730 1월 24일 1부 /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리 구원의 완성 관리자 2010.02.06 2784
729 1월 31일 1부 / 신자 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존재 가치 152 관리자 2010.02.06 2918
728 2월 7일 2부 / 하나님의 영광 우리의 영광 관리자 2010.02.06 2711
727 2월 14일 1부 / 하늘 권세 아래 사는 우리의 삶 관리자 2010.02.11 2621
726 2월 21일 2부 /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관리자 2010.02.20 2962
725 2월 28일 1부 / 우리에게 허락된 영광되고 깊은 신앙의 세계 관리자 2010.02.27 2643
724 3월 2일 2부 / 아버지께서 주신 일을 위해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0.03.06 2679
723 3월 14일 1부 /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관리자 2010.03.14 2462
722 3월 21일 2부 /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신앙 관리자 2010.03.20 2382
721 3월 28일 1부 /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케 하려 함이니라 553 관리자 2010.03.27 9382
720 4월 4일 부활주일 /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 관리자 2010.04.04 2601
719 4월 11일 /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가 가지는 신앙 관리자 2010.04.10 2645
718 4월 18일 2부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10.04.18 2183
» 4월 25일 1부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관리자 2010.04.24 1963
716 5월 2일 2부 /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신자답게 사는 길 관리자 2010.05.15 1877
715 5월 9일 2부 / 이 세상에서 신앙의 삶을 산다는 것 관리자 2010.05.16 1775
714 5월 16일 2부 / 신자로서의 출생과 신자로서의 삶 관리자 2010.05.16 163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