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0,594
오늘 : 13
어제 : 280

페이지뷰

전체 : 78,736,934
오늘 : 28
어제 : 1,33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본문 / 17: 1-10 

 

 

1. 믿음에 대한 오해

신자에게 있어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신자에게 믿음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뜨겁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지라고 하기도 하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한 믿음이 되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믿음에 대한 이러한 말을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신자들 대부분은 믿음은 내 하기 나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열정적인 믿음이 되기 위해 기도원을 찾아간다거나 또는 뜨거운 믿음을 갖기 위해 부흥회에 참석하기도 하며, 게으르지 않는 믿음이 되기 위해 교회 일에 열심을 내려고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고 하여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늘로부터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그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을 우리에게 잘 키워서 좋은 믿음으로 만들라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하지 못한 믿음을 주신 것이 되는 것이고, 그 완전하지 못한 믿음을 완전한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들 소관이라는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선물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믿음은 완벽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벽한 믿음이 신자를 장악하고 다스림으로써 신자들 한사람 한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믿음을 가지라거나 또는 믿음을 키우라는 말 등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인간의 무지의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믿음이 중요한 것만큼 그 믿음에 대한 오해 또한 매우 큽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믿음의 능력에 대한 것들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믿음이 능력이 있는 믿음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신자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능력은 모두 다 이런 것들일 것입니다. 병이 낫는다거나, 귀신들린 사람이 고침을 받고, 기도에 응답을 받는 그런 능력을 원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그러한 능력을 체험했노라고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교인들은 그러한 간증을 듣고 있으면 그런 간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믿음이 초라하게만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만 기도하면 해결될 것이고, 어떤 병이 들었다고 해도 믿음만 있으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니 문제가 없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삶에 자신감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들이 믿음만 있으면 해결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음을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게 되고 또 병이 들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혹시 해결되고 나을 수도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혹시나 이러한 말을 하는 제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믿음으로 믿고 하면 되는 것인데 그런 믿음이 없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몰랐다면 저 역시 믿음으로 합시다. 믿으면 다 됩니다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말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어떤 일을 하게 하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일종의 믿음만능론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해결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믿음을 거의 이런 식으로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또 교인들은 그런 잘못된 믿음을 진짜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으로 인정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만 나오면 믿습니다라는 말을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믿음을 모르실까봐 외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굳이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을 보여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하는 속셈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믿음에 대한 오해이며 또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2. 겨자씨 만한 믿음도 없는 자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17:6)고 말합니다.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지 뽕나무로 하여금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는 말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믿음이야 말로 크고 위대한 믿음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보면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믿음에 대하여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11: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내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다 된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앞에서 믿으면 다 된다는 말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과 다른 말을 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는 말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이 없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 그렇지를 못합니다. 사람은 현재의 조건과 형편 그리고 자신에게 구축된 상식과 모든 것을 동원하여 결과를 계산을 합니다.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지 땅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구축되어 있는 상식이고 과학이며 또한 지금껏 보고 체험한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오늘 말씀처럼 전혀 의심이 없이 떨어지는 비를 향해 위로 올라가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체험으로는 산이 바다에 던져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미 체험과 상식을 통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즉 마음에 의심이 없는 믿음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믿음이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뽕나무에게 바다에 심기어라라고 말을 하면 뽕나무가 순종할 것이지만 그런데 과연 그런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뽕나무에게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는 말도 꺼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해봐야 미친 사람이라는 조롱만 받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뽕나무에게 바다에 심기어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결국은 우리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이었고 오늘 우리들인 것입니다.

 

 

 

3. 말씀하시는 이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부터 보면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17:3-4)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5절보면 제자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17:5)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용서를 받고 또 다시 죄를 짓고 다시 회개하는 일이 일곱 번 반복된다고 해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곱이라는 횟수로 고정된 용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용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형제가 나에게 계속해서 죄를 범한다고 해도 신자에게서 나올 것은 용서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오늘 본문 6절부터의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6-10)의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이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러한 용서를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더하여 주시어서 예수님이 말씀한 용서를 실천하게 해주십시오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너희들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는 의미로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6절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도 믿음이 없는 자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다만 그 믿음을 뜨겁게 만들고 부지런한 믿음이 되게 하면 능력이 나타날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참된 믿음에서 벗어난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의 주체를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신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주체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 10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17:10)는 말씀처럼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나님 앞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체를 자기 자신에게 두는 사람에게는 이런 고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자신이 행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 행함에 대한 보상을 하나님께 기대하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결코 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의 명대로 할 뿐이고 따라서 주인에게 사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을 부라 부르며,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자신이 행한 것을 내어 놓고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이미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장사꾼의 속셈과 다를 바 없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에 다스림을 받는 신자는 자기 행함을 바라보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아예 자기 행함으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복음을 증거하고, 은혜를 나누고,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내가 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나는 주인의 말씀에 순종되고 있을 뿐이고, 순종하게 되는 것도 믿음의 능력일 뿐이다는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신자란 바로 이런 사람이고, 인간을 이러한 신자로 바꾸어 놓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능력은 뽕나무를 바다에 심기우게 하고, 산을 바다에 던지는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산이 바다에 던져지는 능력을 체험했다고 해서 인간이 달라지고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하늘에 속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의 사람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크고 놀라운 능력과 기적은 자기만을 바라보는 완악한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능력에 붙들려서 기적을 누리며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그렇게 우리를 붙드시고 또 그렇게 인도하사 하나님의 창세 전의 계획대로 이루시고 성취하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우리 하나님만을 높이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가진 믿음에 대한 생각과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에 대한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2. 인간들이 기대하는 믿음의 능력은 무엇이며 또 그 기대로 인한 부작용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또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믿음에 대한 오해는 무엇입니까?

4. 뽕나무가 바다에 심기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하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 말씀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우리가 믿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6.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믿음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을 하는 자와 악한 종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의 결론인 믿음의 능력이 그 어떤 기적보다도 위대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3 2024 요한계시록 56. (계 16:8-11) 회개하지 아니하는 인간들 관리자 2024.04.21 3
732 9월 9일 1부 / 하나님의 열심으로 중매하는 중매자 관리자 2012.09.09 1616
731 9월 9일 / 마가복음 19. (막3;20-30) 사하심이 없는 성령 모독죄 관리자 2018.09.09 100
730 9월 8일 / 마가복음 68. (막 12:1-12) 주인되기 원하는 악한 농부들 관리자 2019.09.07 83
729 9월 7일 / 사도행전34. (행8:26-40) 빌립을 통로로 하는 성령의 전도 관리자 2014.09.06 332
728 9월 6일 / 로마서 3. (롬1:8-13) 같은믿음과 소망을 가진 자들의 삶 관리자 2015.09.05 437
727 9월 6일 / 갈라디아서 20. (갈 5:16-18) 성령을 따라 행하라 관리자 2020.09.06 110
726 9월 5일 / 히브리서44. (히 11: 1-3)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관리자 2021.09.11 212
725 9월 4일 2부 / 주의 성찬에 담겨진 의미 2 관리자 2011.09.03 1909
724 9월 4일 / 로마서 51. (롬9:1-5) 바울의 큰 근심과 신자의 복 관리자 2016.09.03 260
723 2023 9월 3일 / 요한복음 15. (요 3:22-30) 요한의 기쁨 관리자 2023.09.03 12
722 2023 9월 3일 / 요한계시록 27. (계 7:4-8) 인 맞은 관리자 2023.09.03 8
» 9월 3일 / 믿음 2. (눅17:1-10)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와 진실 관리자 2017.09.02 153
720 9월 3일 / 마가복음 18. (막 3:13-19) 제자를 부르시는 뜻과 목적 관리자 2018.09.01 152
719 9월 30일 1부 / 교회를 위한 염려 때문에 하는 바울의 자랑 관리자 2012.09.26 1769
718 9월 30일 / 마가복음 22. (막4:1-9) 농부의 일하심과 그 결과 관리자 2018.09.29 99
717 9월 2일 2부 / 육신적인 자랑과 주 안에서의 자랑 관리자 2012.09.02 1539
716 9월 29일 / 야고보서21.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283 관리자 2013.10.06 10359
715 9월 29일 / 마가복음 71.(막 12:28-34) 서기관의 지혜와 신자의 삶 관리자 2019.09.29 113
714 9월 28일 / 사도행전37. (행9:19-31)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함 관리자 2014.09.26 60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