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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

본문 / 11: 1- 2 

 

 

1. 바라는 것들의 실상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와 생각과 결단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주에 함께 나누었던 에베소서 2장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사고와 이해와 상식에서 벗어나 계신 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사고와 이해로도 얼마든지 믿을 수 있는 예수님이라면 굳이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자신의 이해와 사고로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바로 그러한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모두 인간의 이해와 사고에 부합된 것이고,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믿음을 말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은 참된 믿음이 증거됨으로써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참된 믿음을 오늘 본문에서는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먼저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바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과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세상을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한 것입니다. 세상과 하늘을 동시에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을 바란다면 다른 쪽을 향한 관심은 자연히 희미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믿는 자들을 향하여 골로새서 3장에 보면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1-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위엣 것인 하늘의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면, 그 바라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는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의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의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바라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바라는 이 세상의 것은 이미 실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 없이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이 부자가 되는 것이라면, 부자라는 그 실상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자라는 실상이 존재하고 내 눈에 확실하게 보임으로 말미암아 부자라는 것에 마음이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 바라는 것의 실상 역시 세상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자식을 둔 부모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그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가지고 내 자식도 잘됐으면 하는 욕망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바라는 것이 세상의 것이라면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라는 것이 하늘에 속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것은 실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과연 하늘의 것의 실상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호화아파트는 실상으로 존재하지만, 천국은 실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고 우리에게 확인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믿는자라고 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천국은 좋은 나라일 것이다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할 뿐 그 실상을 알 수가 없으니 천국에 대한 소망이 세상의 것보다 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하늘의 것의 실상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주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믿음은 신자가 바라는 하늘의 것의 실상을 가졌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그 믿음이 있는 신자로 하여금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을 소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신자는 하늘의 실상을 가졌기에 하늘의 것을 알 수 있고 또 보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마지막 때에 하늘나라에 거하게 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는 말씀처럼 희미하게 보는 자로 살아갈 뿐인 것입니다.

 

 

2.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세상의 것으로 얼마든지 증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의 속한 것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증거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적 시각,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 증거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하늘의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는 오직 믿음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있다면 이미 증거를 가졌고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음을 뜻하기 때문에 달리 육신의 눈에 확인되는 증거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확신되는 것이기에 이 또한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도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없고, 병 고침도 증거가 될 수 없고, 귀신 축사도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증거로 삼아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확보하고자 한다면 그 역시 믿음이 없는 자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면, 믿음이 있는 신자는 세상의 것을 증거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실상과 증거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자가 되는 것이 복 받은 것이고 또 믿음이 좋은 증거라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짜인 것이고, 자식이 잘되고 성공한 것이 복이고 믿음이 좋은 증거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짜인 것입니다. 그리고 안수 받고 기도해서 병이 낫고 또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증거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증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믿음이라면, 믿음이 있는 신자는 눈에 보이는 증거물들이 전혀 없다고 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현재의 삶이 어떤 형편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그 형편에 흔들리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의 전부로 바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이 등장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을 증거물로 내세우는 모든 것이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고 그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병이 낫고, 방언을 하는 그러한 것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증거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 병이 낫고, 방언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병나음이 지금도 그대로 반복되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즉 여기저기서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독사에게 물려도 죽지 않고, 독을 마셔도 멀쩡한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는 그러한 것이 없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 역시도 믿음이어야만 합니다. 즉 믿음이 주어짐으로써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모두가 세상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신자가 바라며 살아가는 하늘의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들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세상에서 겪는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다고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의 전부라면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다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치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것이 내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그 배후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또 그것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붙드신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맡기는 겸손으로 나오게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마음을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두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고로 크게 다친 상황에서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는 애원만 있을 뿐인 것입니다.

 

 

3. 믿음으로 말미암아

윤리와 도덕적인 삶을 믿음의 증거로 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눈에 보이는 행함을 믿음의 증거로 내세워서 자기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 역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 참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증거는 믿음과 상관없이 세상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생각들은 마태복음 5장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는 말씀을 잊고 살게 하는 듯합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윤리와 도덕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윤리와 도덕도 천국 앞에서는 쓸모없는 것이고, 믿음과 상관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사람들 보다 뭔가 더 윤리적이어야 하고 또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이 예수 믿는자 답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라는 것은, 그들 보다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무지하기에 믿음을 우리가 증명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게 됨으로 내가 괜찮은 신앙인으로 인정 받고 또 그렇게 인정 받음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를 증명하는 수단도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며 또 그리스도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신자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바라보게 함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의의 자리인 것입니다. 나의 행함이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생명임을 알게 되는 이것이야 말로 믿음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가 있는 자가 하늘의 것을 바라게 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세상의 그 무엇도 증거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실상과 증거인 믿음이 그의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믿음으로 과연 무엇을 하려 합니까?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나 또는 나의 믿음이 어떠함을 증명하려는 수단으로만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가 이 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로 보이지 않지만 알게 하시고 바라게 하시고 소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믿음으로만 하늘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셔서 오늘도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늘 소망으로 가득찬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오늘날 교회에서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라는 것들이 이 땅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은 신자들에게 어떤 삶으로 인도한다고 합니까?

5.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에 대한 믿음의 능력과 거짓 믿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6.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합니까?

8. 윤리와 도덕적인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려고 하는 자들의 착각은 무엇입니까?

9.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는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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