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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신자의 믿음과 신자의 기도

본문 /  18: 1- 8

 

1. 끈질긴 기도

믿음과 기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의 생각은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야고보서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5:15)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역사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그렇기에 믿음과 기도에 대해 좀 더 성경적인 바른 이해를 가져야만 합니다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8:1)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은 지금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마지막에 보면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하)고 하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대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해석할 때 오늘 본문의 과부처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들어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믿음으로 설교를 합니다‘믿음이 과연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과 고민은 하지도 않은 채 인간의 욕망과 잘 연결되는 말을 골라내서 사용해 버리는 것입니다이로 인해 성경은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진리와도 상관없게 되어 버립니다다만 인간이 자기 욕망을 위해 자기 편리한 대로 이용하고 난도질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하지만 오늘 본문은 끈질긴 기도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사실 끈질긴 기도라는 말 자체가 성경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말이고 따라서 끈질기게 기도하면 마지못해 기도를 응답한다고 하는 하나님도 성경과 상관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님에 지나지 않습니다도리어 인간의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에 뜻에 대한 도전입니다‘하나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것이 끈질긴 기도의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야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꺽고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끈질긴 기도입니다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끈질긴 기도에 견디지 못하고 뜻을 꺾으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신실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그런 하나님은 인간의 고집에 끌려가는 이상한 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래서 끈질긴 기도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가짜 기도일 뿐이지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자의 기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마지막 때의 신자

앞에 있는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심판을 말씀하시며 그 때가 이르면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며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밤에 누워 있는 것과 맷돌을 돌리고 있는 것은 동일한 것 같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 다름의 가치가 인자가 오셨을 때 데려감을 얻고 버려둠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인자가 오셨을 때 누가 구원을 받는가와 연결되며 또한 구원은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믿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데려감을 얻고 버려둠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이 참된 믿음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오늘 본문의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 이야기를 통해 가르쳐주십니다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이 믿음이냐?의 문제는 앞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외적인 행동으로는 규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물론 믿음과 외적인 행동이 전혀 무관하다고 할순 없지만 외적인 행동을 믿음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해야 합니다이것은 데려감을 얻고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의 외적인 행동에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삶이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인자의 올 때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비춰 보자면 인자의 올 때를 믿고 기다리는 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믿음과 삶이 동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따라서 ‘무엇이 참된 믿음이냐?라고 물을 때 답은 분명합니다인자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그런데 왜 마지막 때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고 기도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그것은 마지막 때의 심판이라는 형편이 신자로 하여금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도마지막 때란 신자가 낙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형편에 대한 눈이 떠져야 하는 것입니다성경에서 신자가 낙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은 환경적인 문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즉 어려운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되는 요인으로 인해 낙심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낙심을 환경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게 되면환경에 따라 낙심하는 사람이 있고낙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그러면 성경은 모든 신자를 향한 보편적인 진리로 다가가지를 못합니다형편과 처지에 따라 낙심에 해당되는 사람이 있고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심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나는 낙심을 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결국 오늘 본문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뜻이 될 뿐입니다.

 

3. 과부의 호소

오늘 본문을 보면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가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합니다그러나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따라서 가진 것이 없고 힘도 없는 과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그래도 과부는 계속 찾아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를 합니다그러자 재판장은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18:4-5)는 반응을 보입니다재판장은 과부의 정성에 감동이 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과부가 자신을 번거롭게 하기에 그 원한을 풀어 준다고 할 뿐입니다그리고 7절에 보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18:7)라는 말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을 빗대어 말씀을 하고 있지만그렇다고 재판장이 자신을 번거롭게 하니까 과부의 청을 들어 준 것처럼하나님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번거롭게 할 정도로 기도를 하면 들어 주신다고 해 버리면결국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장과 같은 수준으로 해석해버리는 큰 우를 범하게 됩니다그래서 7절에서 ‘하물며’라고 말하는 것은 불의한 재판장도 이렇게 할진대 하나님은 그보다 더 하지 않으시겠느냐는 뜻입니다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두려워 아니하고사람도 무시하는 이 불의한 재판장도 거절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과부가 호소하고 있는 원한 문제입니다과부는 재판장에게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합니다불의한 재판장은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번거롭게 하기에 원한을 풀어 준다고 합니다이상한 것은 불의한 재판장이 단지 과부가 번거롭게 한다고 해서 그 청을 들어 줄 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결국 중요한 것은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원한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불의한 재판관을 찾는 이 과부의 원한이 정당한 것이기에 재판장을 번거롭게 해도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원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이처럼 정당한 원한 문제에 대해서는 불의한 재판장이라고 해도 거절하지를 못하는데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정당한 원한을 외면할 리가 있겠느냐는 의미의 말씀인 것입니다그러므로 본문의 중심은 끈질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는 원한에 있습니다하지만 이 원한은 나 개인이 세상에 대해 또는 누군가에 대해 갖고 있는 원한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그것은 정당한 원한이 아닙니다만약 하나님이 우리 개인의 원한을 풀어 주시는 분이라면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세계는 매일같이 복수혈전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그런데 그러한 원한을 빼버리게 되면 도대체 우리에게 있는 원한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그것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죽인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감으로써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한입니다세상은 예수님을 싫어합니다물론 예수님을 사랑을 실천한 분으로 여기고 그 사랑을 배우자는 의미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의 의미를 이야기하면 세상은 예수님을 거부해 버립니다왜냐하면 십자가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면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볼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주의 복음을 가진 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그 고난이야 말로 신자에게는 원한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바로 이 원한을 하나님께 호소한다면 하나님이 그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원한을 풀어주신다는 것은 마지막 때 세상을 심판하심으로써 무엇이 진리이고 생명인가를 선명하게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그때가 되면 어리석게 보였던 믿음과 복음이 참된 지혜로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신자는 바로 그 때를 기다리고 소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그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4. 믿음의 삶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이웃들은 노아를 어리석은 자로만 여겼을 것입니다그러한 이웃들에게 하나님은 아무런 징벌도 하지 않습니다노아는 조롱 속에서 방주를 만들었을 뿐이고이웃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자신들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노아의 원한을 어떻게 풀어 주셨습니까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원한을 풀어주셨습니다세상이 조롱했던 방주가 생명이었음이 드러나는 심판을 통해 풀어주신 것입니다인자가 올 때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인자가 오실 때 드러나는 것이고그 때가 곧 하나님이 신자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신자는 인자가 오실 그 때를 기다리며 현실 가운데서 낙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신자는 오늘 본문의 원한을 가진 과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복음을 알아주지도 또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지금의 현실입니다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 때문에 나아진 것이 있으며 또 우리의 믿음을 세상이 알아주기는 합니까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높임 받게 하시고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이뤄주십니까결코 아닐 것입니다오히려 예수를 믿었지만 세상일은 실패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조롱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믿는 자에게는 이러한 원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그런데도 원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무시하시는 것처럼 힘든 현실에 방치해 두고 계십니다이것 때문에 신자가 낙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자가 오신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믿음에 의한 기다림입니다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막연히 기다린 것이 아니라 말씀은 성취된다는 믿음으로 기다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항상 기도하라는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기도는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인자가 오시는 것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그렇게 보면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인자의 오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원한을 반드시 풀어 주십니다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영광을 얻게 하고힘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자를 세상에 다시 보내시는 것으로 풀어 주십니다인자가 오시는 그 때가 되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야 말로 생명이며 가장 지혜로운 일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신자는 그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따라서 현재의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고 인자의 오심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이런 점에서 인자의 오심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는 신자의 기도와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의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이유는 세상의 현실이 노아의 때처럼 저마다 자기 인생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믿는다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인생을 위해 살 뿐입니다인자의 올 것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 역시 자기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원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복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일 뿐인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은 신자를 노아처럼 살게 합니다세상을 보고 세상 속에서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신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노아처럼 사는 것입니다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실 세상을 보게 하며 또한 이 세상의 결국이 어떠한가도 보게 합니다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 신뢰하게 하고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실이 힘들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이루실 그 때를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결국 믿음은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고보이는 헛된 현실이 아닌 보이지 않는 참된 현실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합니다우리의 본성은 세상과 친밀해지고 싶은데 믿음은 우리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가려 합니다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민감한데 믿음은 보이는 것은 모두 사라질 것에 불과할 뿐이고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 참된 세계임을 쉬지 않고 증거합니다그래서 신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를 때까지 낙망치 않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은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분명한 지금까지 해 온 내 중심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기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해야할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우리가 가진 믿음과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속히 증거될 그 날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그런 우리는 보이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오직 주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소망하는 자로 기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이런 복된 은혜와 기도의 삶이 예원가족들의 신앙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끈질긴 기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릅니까?

2인자의 때에 버려둠과 데려감을 당하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인자의 때에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낙심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릅니까?

5. 과부의 간청과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대해 잘못된 해석은 어떤 우를 범한다고 합니까?

6.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간청을 들어준 까닭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원한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은 노아의 원한과 신자들의 원한을 어떻게 풀어 주신다고 하십니까?

9.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0. 믿음이 있는 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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