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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본문 / 19: 1- 5

 

1. 신자의 찬양

오늘 본문에 보면 '할렐루야'라는 말이 몇 번 나옵니다. 아마 우리들에게도 할렐루야라는 용어는 아주 친숙한 말일 것입니다. 교회가 많이 쓰는 용어이고 또 교인들끼리 만나면 '할렐루야'라는 말로서 인사를 대신하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서로 인사하면서 '할렐루야'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 여호와를 찬양합시다'라는 의미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란 말은 누가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당연히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일을 체험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 동일하게 일어난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극히 개인적인 사건, 즉 장사가 잘된다거나,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등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한다면 그 삶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은 단지 할렐루야를 불러주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에게 있어서 동일하게 일어난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신자들의 구속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해당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죄에서 해방되고 산자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신자에게 있어서 동일한 체험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건 안에서 찬양을 한다면 어느 한 사람도 제외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설령 어느 누구는 하는 일이 잘되고 반면에 어느 누구는 실패했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는 동일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자의 찬양인 것입니다.

 

2. 찬양의 제목

그러면 무엇을 찬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절과 3절 그리고 4절과 6절에서 '할렐루야'라는 말이 등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9:1)라고 말합니다. 할렐루야, 즉 하늘에서 들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는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는 것에 대한 찬양입니다.

결국 이렇게 볼 때 할렐루야라는 것은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아는 신자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할렐루야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에 참여된 신자들만이 할 수 있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1-2)고 시작하는 모세의 노래와 그리고 이어서 미리암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이 노래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살아난 것 자체가 기뻐서 노래한 것이 아니라 홍해 사건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홍해에서 애굽 군사를 물리친 것은 하나님이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이 친히 용사가 되어서 애굽 군사를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 1절에서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는 찬양 소리와 홍해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노래하는 이스라엘의 노래가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심으로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원의 사건에 참여된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에서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자신들의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19:2)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늘의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을 향한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체험했다면 그들은 적어도 바벨론의 심판을 기뻐할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바벨론을 의지하지 않고 산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울고 애통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혜택을 입으며 살았던 자들입니다. 땅의 임금들, 바벨론의 사치 때문에 이득을 챙겼던 상인들, 그리고 상인들의 무역 때문에 득을 봤던 배를 부리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바벨론의 심판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울고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바벨론이 무너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슬플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심판에 대해서 울고 애통해 할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심판을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찬양할 부류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이것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지금 현재 우리에게 있는 삶에서 우리를 생각해 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바벨론이 맷돌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처럼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바벨론 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모든 것, 즉 그들이 사치하고 즐거움을 누렸던 모든 것도 다 함께 사라지고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이것은 결국 장차 이 세상에 어떠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잘 알 것입니다.

바벨론이 보이지 않고 바벨론과 함께 사람들이 즐기고 누렸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장차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임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 심판을 미리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을 영원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 아래 사라질 것으로 보고 사는 것이 신자입니다. 따라서 심판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에게는 세상 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판 속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면 그리고 신자가 이 믿음으로 산다면 그 증거는 세상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3. 찬양의 삶

그렇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증거되고 나타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는 세상의 것을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 있는 세상의 것이 내 손에서 사라질 때 울고 애통해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구원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삶을 보인다면 그가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보고 사는 자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신자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할렐루야는 신자의 입술이 아니라 그 삶에서 불려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삶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그 영광과 능력을 노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땅에서의 삶으로 증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의 부르는 찬양이 진정한 찬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건지시는 그 능력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드리십니까? 그것을 우리의 삶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울고 애통하며 살아가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포기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움 때문에 애통해하고 운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고 사는 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의 일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해 애통해하고 실망해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고 해도 찬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할렐루야'는 여러분의 입술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증거 되어져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우리의 삶에서 보여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아는 자의 몫입니다. 구원이 여호와의 능력에 있음을 알기에 세상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고백 되어지는 말을 믿지 마시고, 다시 한번 자기의 삶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무엇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확인하시고 하늘에서 허다한 무리가 불렀던 '할렐루야'가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불려지기를 바랍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할렐루야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할렐루야라고 찬양할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3. 진정한 신자의 찬양은 무엇이며 왜 그런 것입니까?

 

4.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에 하는 찬양과 오늘 본문의 찬양이 그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5.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한 자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말씀합니까?

 

6. 오늘 본문에서 같은 바벨론의 심판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자들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자들이라 합니까?

 

8. 하나님이 신자의 믿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하시는 일은 무엇이며 또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합니까?

 

9. 구원 받은 신자의 찬양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까?

 

10.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고 사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는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11.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찬양하는 삶은 어떤 삶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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