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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

본문 / 22: 6- 7

 

1. 속히

사람은 자기 일상생활에서 내일 해도 될 일과 오늘 해야 할 일을 구분하며 살아갑니다. 만약에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삶에서 만나는 많은 일들로 말미암아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뜻이기에 오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반면에 내일 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일에 비해 뒤로 미루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가 꼭 시간적인 여유를 따져서 판단되지만은 않습니다. 가령 고등학교 1학년에게 있어서 대학입시는 3년 후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시 준비를 3년 후에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생각으로 고등학교 3년을 보낸 학생이라면 결국 시험 날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며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에게 있어서 3년 후에 있을 대학입시에 대한 준비는 바로 오늘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3년의 모든 것은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고, 대학입시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3년이란 시간적 여유 때문에 마음을 놓거나 내일 내일 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오늘 그의 할 일은 공부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를 들고자 말씀드린 것이지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오늘 해야 할 일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목표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을 위한 일이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로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삶의 그 어떤 문제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우선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사는 일을 믿음보다 앞세워 버리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고 말씀합니다. 여기 속히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재림하시는 사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히'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 많은 사람들은 큰 공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속히'라는 말에 맞지 않게 그리스도는 아직까지 오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연도가 주후 90년에서 95년 사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900여 년 훨씬 전에 속히 오신다는 말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속히 오신다는 분이 1900여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도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알고 있을 뿐이지, 사실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재림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 뭔가 느긋한 여유를 갖게 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잘 못 믿었으면 내일 더 잘믿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결국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히 오신다는 것을 시간적인 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을 시간적인 의미로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시간적인 의식이란 역사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요 개념이지 하나님의 의식과 개념은 아님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묵시 세계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요한계시록 설교의 처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속히 오신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속히'가 언제를 말하는 것이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오시느냐가 아니라, 오셨을 때 누가 과연 어린 양의 신부로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오늘 오시든 내일 오시든 아니면 다시 천년 후에 오시든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은 생명에 거할 자와 심판에 거할 자로 구분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오시느냐보다는 오셨을 때 누가 생명에 거하게 되고, 누가 심판에 거하게 되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6-8)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오심도 반드시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러므로 속히의 시기가 아닌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실 사건이라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그 날에 생명수 샘물에 값없이 참여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왜 아직 안오시는가?'가 아니라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얻을 자가 누구냐에 있는 것입니다.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얻을 자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성령으로 인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에 의해서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얻을 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실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참으로 필요하고 귀한 것은 믿음이지 그리스도가 오실 날을 아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말씀하는 '속히'에 대해서는 시기가 아닌 이미 그리스도가 오신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야 할 말씀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속히 오신다는 것이 오늘이든 내일이든 주님이 오셨으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믿음이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믿음 없는 자로 선다면 그가 바로 불과 유황불에 참여할 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속히 오신다는 말씀 앞에서 신자가 긴장해야 할 것은 '나는 오늘도 믿음으로 살았는가?'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점검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신자들인 것입니다.

 

2. 지키는 자

오늘 본문 7절에서 말하기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고 말합니다. 결국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고 살아가는 신자에게는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드러나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진실로 복 있는 자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세상 모두가 복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책이 예언의 말씀이란 천사가 요한에게 보여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천사가 요한에게 보여준 모든 것의 중점은 어린 양이 그 중심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산다는 것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복 있는 자란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해서 복으로 실감하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힘도 안 되고, 도움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믿음은 결코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힘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은 돈이고 권력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믿음은 전혀 다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보고 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임을 알기에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이 신자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힘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신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만을 믿고 살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세상 속에 있던 교회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현실에서 끝까지 이기는 자 즉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남겨진 자들인 것입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22:6)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보면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미 되어진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꼭 되어지고야 말 일이라면 '언제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지금 바로 내 앞에 일어난 일로 여기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이라면 신자에게는 믿음으로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이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은 믿음을 뒤로 미루고 내일부터 믿음으로 살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할 것입니다. 어차피 예수님이 오늘 오시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은 믿음은 보류하고 내일부터 오늘 못한 믿음 생활까지 보충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주님이 오시기 전에 믿음으로 산다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부터 믿음으로 살자'라는 사람의 마음이 내일이 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아마도 내일 내일 하다가 끝나버리고 말 인생일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일 신자로 살려고 하지 말시고, 오늘을 신자로 살아가시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사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일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믿음이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3. 종들의 삶

계시록 1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1:1)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시작부터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계시록은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종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택함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속히 되어질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사와 요한을 사용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천사와 요한을 통해서 세상에 속히 되어질 일을 미리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언제냐?'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속히 되어질 일 앞에서 어떤 자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 이들이 바로 복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말씀을 지키는 자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세상을 통해서 그리스도만을 믿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란 세상에 마음 뺏기지 않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압니다. 세상 때문에 수시로 마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힘쓰는 신자라면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해서 애통해 하면서 그리스도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닌 믿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이미 본 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 되어졌을 때 무엇을 우리의 생명으로 드러날 것인가를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르게 인도할 것입니다. 세상을 본다면 믿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믿음이 필요함보다 돈이 더 필요함을 절실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서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고 산다면 필요한 것은 세상 그 무엇도 아니고 오직 어린 양이 흘리신 피를 믿는 믿음일 뿐입니다. 믿음으로 산 신자만이 주님이 오셨을 때 생명수 샘물이라는 열매를 맺은 자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22: 6- 7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

1. 우리의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의 순서는 무엇으로 판단 되어져야 한다고 합니까?

 

2. 오늘 말씀에 속히 오신다는 말씀에 성도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까닭과 그러므로 말미암아 신자에게 생기는 불신앙적 삶은 무엇이라고 합니?

 

3. 계시록의 말씀을 인간의 개념과 관점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에 속히 오신다는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성경이 중요하게 말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속히 오심을 성경의 개념으로 믿게 될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6.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원의 말씀을 지킨다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오늘 본문에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음에도 신자들이 복으로 실감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의 현실에서 신자에게 이기는 삶이란 결국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9. ‘내일부터 믿음으로 살자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10.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본 자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어떠한 삶이라고 말씀 합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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