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자의 초막절
본문 / 신16:13-17
1. 이스라엘의 절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즉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 중에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초막절은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추수절기로서 장막절이라고도 하며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절기를 지키는 방법은 레위기 23장에 보면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레23:39-44)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오늘 본문과 레위기를 통하여 초막절을 왜 지키며 어떻게 지키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추수 감사의 뜻이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읽은 43절에 보면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3:43)는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것을 대대에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한 후에 광야 생활을 한 것을 대대에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유월절도 칠칠절도 출애굽과 관련이 되어 있듯이 초막절도 출애굽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즉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나온 백성인지를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를 통하여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할례를 행한 자들이 참여하는 것이지만 칠칠절과 초막절은 모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에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데 오늘 본문을 보아도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잔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객과 고아와 과부처럼 살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출애굽 시켜 주시고 또한 약속의 땅에 거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이렇게 하려면 즉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빈손으로 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부터 보면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16:16-17)고 합니다.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한해의 마지막 농산물을 수확하였기에 이제 내년 여름 곡식 나기까지 저장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두어 저장한다고 해서 수장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내년에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16:15)고 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고 또 복을 주실 것이기에 수확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를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2. 삼대 절기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러한 유월절과 칠칠절를 제대로 지켰는지 이스라엘의 역속 속에서 살펴보면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유월절을 보면 역대하 35장에 “16. 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령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제단에 드렸으며 17. 그 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이어서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18.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19.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대하35:16-19)고 하여 유월절은 요시야 왕 때 제대로 지켰는데 사무엘로부터 이렇게 지킨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초막절은 어떻겠습니까? 초막절은 사무엘이 아니라 아예 여호수아까지 소급하여 올라갑니다. 모세 때는 출애굽 이후 어쩔 수 없이 초막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초막만이 아니라 광야에서 산 기간은 장막에서 산 것입니다.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만 텐트를 치면서 초막은 함께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고서는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단지 여호수아 때까지 언급하는 것은 여호수아 때에 초막절을 잘 지켰다기보다는 아직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보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사람이 거주가 안정적이고 편하면 옮기기를 싫어합니다. 물론 요즘은 캠핑이니 차박이니 해서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도 휴가 가서 며칠은 텐트에 지낼 수 있겠지만 곧 집이 좋다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집 짓고 살면서는 초막절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 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8:13-18)고 합니다.
언제 초막절을 제대로 지켰습니까? 17절 이하에 보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와서 제대로 지켰다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율법서를 낭독하니 초막절에 대한 말씀이 나왔고 마침 그때가 초막절 절기이기에 초막절을 지켰는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행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만족하며 그 땅에 붙어서 위에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다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초막절의 의미를 새롭게 하여 주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물론 초막절을 잘 지킨다고 지켰습니다. 특히 초막절에는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에서 제사할 때에 전제처럼 부어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약 율법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만 후대에 유대인들이 추가하여 장로의 유전처럼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7-39)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희가 초막절을 잘 지킨다고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에 부어도 그것이 농사의 풍요로움과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을 보내셔야 생수가 흐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의 초막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상징합니다. 그다음 절기인 칠칠절, 즉 오순절은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 보내신 것입니다. 십자가 전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을 지시를 받아 사셨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오히려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 성령이 임하신 것이 바로 종말의 현상이며 이미 추수가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초막절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추수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곡과 가라지를 영원하게 완전하게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에는 완전하고 영원한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장절이라는 의미가 새롭습니다.
수장절은 곡식만 거두어 저장할 뿐 아니라 이 초막절에는 포도도 수확하여 저장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신16:13)라고 합니다.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수장한 후에 일주일간 이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수장절에 알곡과 가라지를 어떻게 분리하고 추수하는지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36-43)고 합니다. 초막절과 연결이 된다는 것이 이런 말씀입니다. 바로 타작마당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 틀에 대한 말씀을 한 곳 더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14:17-20)고 합니다.
이 말씀 바로 앞의 14절부터도 보면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14:14-16)고 하여 이 역시 마지막 추수인데 곡식을 추수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 20절은 포도를 수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의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대한 내용이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3. 남은 절기
그러므로 이제 유월절,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속의 은혜를 맛보고 또 칠칠절,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우리를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우리 주의 은혜로 성령이 임한 자는 이제 마지막 남은 절기인 초막절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삶의 자세는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살든 또 어느 곳에 살든 간에 그곳은 영원한 집이 아니라 떠나야만 하는 임시 거주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런 집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임시 처소인 장막(초막)도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장막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10)고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장막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다시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1-4)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이 다 신실하고 참되기에 반드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무너질 장막에 산다는 것을 아시고 이제 다시는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영광의 몸이신 예수님을 소망하면서 저녁에 주무실 때에 누워 자는 집도 자기 몸도 무너질 장막임을 아시고 편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자의 남은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하셨고 또 하나 하나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대로 이루실 하나님만을 믿으며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자들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를 것처럼 살지 마시고 하루 하루의 삶이 나그네와 같이 고달프다 할지라도 분명한 우리 본향, 우리의 장막이 있음을 알고 믿기에 잘 버티시고 견디시며 앞에 있는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초막절을 지키게 하신 의미는 무엇 때문입니까?
2.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어떻게 지키라 하셨으며 또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것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4.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은 까닭과 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후에 초막절을 지킨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합니까?
5.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은 어떻게 지켰으며 또 그 모습을 보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이스라엘이 지켰던 3대 절기가 오늘날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까?
7. 주의 은혜로 사는 신자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산다고 합니까?
8. 오늘날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초막(장막)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주로 말미암아 주의 자녀된 신자의 남은 소망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