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본문 / 마 1: 1
1. 다른 세계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에 있게 된 것은 하늘에 속한 참된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세상에는 생명은 없었습니다. 오직 죄로 인한 사망만 있었을 뿐이고 따라서 비참에 처한 것이 세상의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그러한 현실을 깨닫지를 못하였고 자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돈만 있으면 배부르게 먹으면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하기에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만을 고대하고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은 돈 없는 현실은 고통스럽게 여기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사망에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세상을 인생의 전부로 여긴 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이 없는 세상에 생명이 있게 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예수님이 세상의 새롭고 유일한 희망이 되었으며 또 유일한 복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의 충만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배워서 암기하고 있는 수준에서의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은 교회를 조금만 출석하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신자가 무엇으로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세상의 전부를 얻은 것보다 더 큰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바로 생명의 충만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고 그리고 오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서 육신이 배부름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배부르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돈 없는 사람들은 헐벗고 추운 고통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믿음이 이러한 형편을 뒤바꿔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알게 된 사람은 다른 배부름을 얻게 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배부름이 아니라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배부름을 맛보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배부름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르게 알게 해줄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부터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을 보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돈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승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기쁨이며 복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복을 기대하면서 마태복음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의 것이 없이 예수님만으로도 얼마든지 복된 삶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랑하는 신자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언약의 성취자 예수님
오늘부터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계보’라는 말은 족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혈통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는가를 말하고 알려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혈통으로서의 족보는 신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을 따라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은 곧 인간의 혈통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족보를 나열하는 것으로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것이겠습니까? 일단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성경이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들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언급한 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께서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메시아 언약과 또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메시아 언약의 당사자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자손이라는 것임을 밝히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구원과 연결하여 생각합니다. 즉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나를 구원하기 위함이고, 고난을 받으신 것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감사하자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신앙적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자기 구원과 연결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창세기 13장에 보면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5-16)고 하는 이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자손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고 하여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는 ‘네 자손’이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네 자손’인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사람인데 어떻게 예수님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겠다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예수님께 주신 자기 백성을 찾으시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 또한 자기 백성으로 세상으로부터 구출하여 예수께 속한 자로 만들기 위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인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의 의미도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2)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 약속을 이루실 분이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은 주님이 왕이 되시는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 나라를 자기 백성으로 채우심으로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마태복음에서의 예수님의 모든 일은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것으로 연결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의 이유입니다. 자기 백성 찾으시는 것이 전도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3. 신자의 삶
앞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자기 구원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자신을 위한 예수님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예수님을 자기 구원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인해서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예수님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들이 결국 삶의 모든 일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분이라고만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날 위한 예수님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른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힘 있고 견고한 자로 만들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를 세우고자 오셨고 그 나라를 자기 백성으로 채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라면 세상에서 자신이 견고하게 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그 나라의 복과 영광과 기쁨을 증거하는 삶의 길을 가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발견한 신자라고 할 수 있고, 예수님께 부름받은 신자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있는 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은 약속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믿음을 언급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온통 세상에서 자신이 견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축복과 개인적 성공에 목을 매고 예수님을 찾는 것이야말로 약속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님과는 전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확보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은 온통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세계를 확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신자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오직 그 세계만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세상에 오시고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그렇게 초대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받으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속한 자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이러한 신자의 참된 본질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신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되면 결국 우리는 한낱 교회의 교인으로 전락할 뿐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과 생명의 충만 또한 우리와는 상관없는 얘기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마태복음을 함께 나누어 가면서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로만 채워져 가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채워져 있던 모든 세상의 헛된 것들은 하나씩 비워져 가고 그 자리는 예수님으로 인한 하늘의 생명으로 충만해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자는 참으로 영광된 존재입니다. 지금은 이 영광이 가려져 있지만 그러나 주께서 만물을 심판하시는 심판자로 또 권세자로 오실 때 신자는 그 영광을 알게 되고 또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이 영광을 거절하였지만 주안에서 신자인 우리는 이 영광의 약속이 큰 소망으로 우리의 심령 속에 굳건히 자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세상의 현실은 무엇이며 또 그 현실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하는 고백은 어떤 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합니까?
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4.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5. 마태가 마태복음의 시작을 예수님의 족보로 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럼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된 기독교 신앙의 착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주신 언약인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그것이 예수님의 오심과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8.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와 또 그것이 예수님의 오심과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9.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오신 목적과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어떻게 다릅니까?
10.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신자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11. 신자가 초대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어떤 세계라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