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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30

본문 / 3: 1

 

1. 성경의 관심사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증이 클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을 것이고, 이러한 열망 때문인지 꿈에서 예수님을 봤다고 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오늘날에 이 땅에 오셨다면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대대로 남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현장을 구경하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찍었을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도 찍은 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극적인 장면은 더욱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찍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예수님이 현대 문명의 시대에 오시지 않은 것이 어쩌면 조금은 아쉽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 앞에서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글을 몇 자 쓰신 것 외에는 글이나 책을 쓰신 일이 없습니다. 또한 초상을 그려두지 않으셨고, 예수님을 위한 기념교회나 생가터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장사 되었지만 무덤조차 오늘날까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3년간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이라도 예수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놨으면 하는 바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러한 흔적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러한 흔적들을 남기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이러한 흔적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위인으로 추앙되는 인물들이 사용하던 유품이 있으면 보물처럼 취급을 하는 것이고 또 그 위인들이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생가라고 하면서 보존을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30세가 넘어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기까지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3:1)라고 말하는 것처럼 30세까지의 시간은 언급하지 않은 채 공적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그 때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적 형편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이후 4백 년간 선지자가 등장하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또한 로마의 지배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고, 비로소 예수님도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이 남기신 것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성경은 30세가 되기 전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2:40)고 하는 기록하고 있고 그리고 41절부터는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유월절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에서 선생들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이러한 기록 외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생활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요즘 어른들이 볼 때 예의 바르고 착한 모범학생이었는지 아니면 말썽쟁이였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언급되지 않는 예수님의 30년 세월에 대해 구구한 억측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령 예수님이 10대에 인도에 가서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는 설들이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도에 가서 부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예수님 가르침 가운데 불교의 불경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예수님의 모습이 궁금한 것처럼 예수님의 30세가 되기까지의 생애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위인이나 영웅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추앙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의 생활에 대해 세상에 알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다만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신 그리스도만 알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예수님이 대한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흔적들이 세상에 남아 있다면 사람들은 그 흔적들을 가지고 많은 말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가령 목수의 아들로 지내면서 어렵게 사셨던 생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면 사람들은 그런 흔적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메시아로서의 꿈을 키웠다는 식의 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눈에 보이는 흔적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얼마든지 그러한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들에게 어떤 흔적이 주어진다면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에 대한 어떤 흔적도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가 사망에서 건짐 받고 생명에 이르는 일에 보탬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30세가 되기까지의 생애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전파하신 말씀이 중요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원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를 우리가 모두 다 알아야 구원의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3년의 생애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충분히 알 수 있기에 성경은 3년의 생애만을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3년의 이 생애만으로 충분하기에 다른 흔적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30년 생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모든 죄를 용서 받음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기쁨과 복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신 권능으로 죽는 길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바뀐 것은 오직 예수님의 권능인 것이지 그들이 예수님과 직접 동행을 했고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흔적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떡과 잔을 나누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회상하고 그분이 지금도 자신들에게 함께 하시고 자신들 또한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흔적을 남기셨을 뿐이지 썩어 없어질 유품이나 흔적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30년 생애의 흔적이 있고 또 다른 유품이 남겨져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그 흔적과 유품을 통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잊어버리고 남겨진 흔적이나 유품을 거룩하게 취급하며 거기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될 것입니다. 즉 우상으로 섬기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품이란 죽음으로서 끝을 맞이하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영원토록 살아계시고, 죽은 육신조차도 부활하셔서 그대로 하늘로 가신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30년 생애나 세상에 사셨던 흔적이나 유품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믿겠다는 인간의 불신앙에 불과할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리 함께 한다고 소리쳐도 믿지 못하고 미심쩍어하면서 보이는 것이 곁에 있기를 원하는 불신앙이 결국 눈에 보이는 흔적을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거짓된 옷을 입고 등장하는 방언이나 병 고침에 매료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흔적을 눈으로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믿겠다는 이런 발상이 바로 불신앙이며 인간의 악한 발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적인 체험도 어떤 흔적도 아닙니다. 성경을 몇 번을 읽고, 금식기도를 몇 번하고 또 몇 명을 전도했고 하는 것들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의 전부를 온전히 고난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신 그분께 맡길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하늘로 가시고, 지금도 함께 한다고 하지만 전혀 볼 수 없는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내 인생을 간섭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신뢰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4:9-11)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빌립에게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먼저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이 사실을 믿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목격하고 체험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즉 비록 하나님이 눈앞에 나타나신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는 것보다 믿음이 먼저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인하여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참된 증거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의와 생명에 거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쉬지 않고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해서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의 30년 생애를 모른다고 해도 3년의 생애가 우리를 의와 진리로 이끌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30년의 생애에 관심을 두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세상에 남기신 흔적은 전혀 없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흔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만이 의의 공로가 됨을 고백하는 신자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고, 인간의 망함을 바라보면서 모든 소원을 예수님에게 두는 신자들이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신 그 모든 일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세상에서 달리 흔적을 구하지도 보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과연 자신에게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흔적이 있는가를 살피며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가를 점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에게는 방언을 하고 병 고침을 받는 것보다 더 능력이 있는 확고한 흔적이 있는데 다른 눈에 보이는 것을 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참된 흔적은 생명의 흔적이기 때문에 그 흔적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곧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신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30년의 생애가 있어야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는 것이 증거되는 것이 아니고, 병에 걸려서 곧 죽을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흔적과 증거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으로 오셨고, 그분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흔적과 분명한 증거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선함을 바라보며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고 지옥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 내가 죽어야 할 멸망의 자식입니다. 내가 지옥 가야 마땅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도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물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 흔적을 남기시지 않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본문의 시작인 그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3. 우리가 성경에 없는 예수님이 30세가 되기까지의 생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만약에 예수님에 대한 흔적이 세상이 많이 남아 있을 경우 어떤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합니까?

 

5.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였던 제자들의 변화는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까?

 

6. 사람들이 예수님의 30년 생애나 또 예수님이 세상에 사셨던 흔적이나 유품이 없는 것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까?

 

7. 오늘날 신자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눈에 보이는 것보다 믿음이 먼저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9.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남기신 흔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지금도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신다는 분명한 증거는 무엇이라고 합니까?주안에서 참된 이스라엘은 어떤 자라고 말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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