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월 4일 / 마태복음 22.(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

by 관리자 posted May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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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긍휼이 여기는 자

본문 / 5: 7

 

1. 오직 생명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여기기에는 곤란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는데 그 말씀이 세상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는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의미의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잠언서 17장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는 말을 합니다. 이 말씀 역시 집안의 화목을 말하는 듯 한 말씀입니다.

잠언 11장에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11:15)는 말씀도 보면 부모 자식 사이라도 보증은 서면 안 된다고 하는 세상의 조언과 흡사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의 그러한 내용을 세상이 말하는 조언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서 신자들 사이에 보증을 서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처세술쯤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라는 말씀도 아마 우리의 귀에 생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긍휼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분명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그러한 뜻으로 풀이가 되어 있으니 긍휼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인 우리는 어떤 의미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만약 우리도 긍휼이라는 의미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뜻으로 생각하신다면 우리 또한 성경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고 한낱 종교의 경전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을 가르치기에 좋은 책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입으로만 생명의 말씀이라고 떠든다고 해서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가 성경을 생명의 말씀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야말로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이 담겨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생명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증거함으로 드러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생명을 중심으로 한 해석과 증거에는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은 결코 담겨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세상의 복이나 교회의 부흥과 연관된 말들이나 또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 만들기와 같은 말들은 생명의 말씀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고 목표로 하며 행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어야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신자는 매우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제멋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항상 성경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고 그리고 자신이 이해하고 또 전하는 말씀의 내용이 십자가의 생명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오직 생명 되신 예수님만이 증거되고 높임 받는 것인가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긍휼은 무엇인가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불쌍히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긍휼은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의 특성이라고 할 수 없고, 천국의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은 오직 신자만이 베풀 수 있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긍휼을 알고 긍휼을 받은 적이 있어야 동일한 긍휼을 베풀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신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도덕이라면 그 말씀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하지만 도덕이 아니고,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부름 받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의미의 긍휼은 예수님에게는 긍휼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인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긍휼은 무엇입니까? 힘들게 살아가는우리의 인생을 편안한 삶으로 바꾸어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던 대개가 사는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힘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신자라면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를 편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하신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는 분명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입니다. 죄 용서 없는 신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신 것으로 믿는다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을 긍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을 왜 외면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부족을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을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보완해 가면 점차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약점은 있으나 그 약점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약점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치명적 결함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존재이고 그 결함은 고칠 수도 없고 보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과 다른 사고입니다. 세상은 조금만 고치고 보완하면 쓸만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고, 성경은 도무지 보완하고 고칠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 사용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간은 폐기처분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면 조금만 고치고 보완하면 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치명적 결함을 바라보며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볼 뿐인 것입니다. 그럴 때 나 같은 존재를 폐기 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결함을 가려주시고 온전한 인간으로 선언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인간은 몇 가지 허물만 고치고 약점을 보완하면 쓸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성화가 바로 이런 수준의 것이 많습니다.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부족을 보충하고, 허물과 약점을 고쳐 감으로써 더욱 쓸만한 인간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화가 하나님의 긍휼을 부인하는 것이고 도덕적 인간에게 가치를 두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은 고치고 보완하면 되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속에서부터 쉬지 않고 시기, 질투, 분노, 음란, 사기, 궤휼, 탐욕, 죄악이 솟아 나오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나이가 들어서 인생의 연륜이 쌓였다고 해서 그 양이 줄거나 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질적으로 확실히 구별될 만큼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설사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상태를 계속해서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서는 더럽고 악한 것들이 장소와 시간과 환경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나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옵니다. 그것들이 밖에서 들어간 것도 아니요 외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서도 아닌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이것은 고치고 보완하면 되는 약점이 아니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치명적 결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입니다.

 

3. 긍휼히 여김이란

이것이 인간이라면 이러한 인간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긍휼은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베푸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신자는 바로 그 영원한 사랑과 자비를 받은 사람이고, 그러한 신자에게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한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알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이웃을 긍휼이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긴다고 해 봐야 긍휼 아닌 긍휼, 즉 다른 긍휼이 나올 뿐입니다.

하나님은 치명적 결함이 있는 인간을 하나님과 같은 거룩의 반열에 놓고자 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인간의 모든 결함을 가려주시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누가 뭐래도 온전한 자로 일컬음 받는 것입니다. 이 감사와 기쁨이 있는 것이 신자고, 이 신자야말로 이웃을 긍휼이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신자가 세상을 볼 때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입니까? 큰 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입니까? 물론 고통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도 불쌍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알고 예수님의 피의 은혜만을 소망하는 신자라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그들이 불쌍한 사람입니까?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긍휼이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고 있다면 그래도 불쌍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눈에는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매를 맞으며 고난을 겪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내 놓아야 했던 사도들이 불쌍하게 보입니까? 그들은 결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편히 살아가는 부자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자에게는 이러한 시각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신자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그러한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 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들이 신자의 눈에는 불쌍하게 여겨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신자인 자신이 세상에서 무엇을 증거해야 하는가가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에 갇힌 세상 속에서 생명이 되는 것을 내어놓고 증거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곧 긍휼히 여기는 것이고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것은 신자가 아니고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서는 긍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을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 그 마지막이 비참한 존재라는 시각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점과 허물을 보완하고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에게 차별을 두게 될 뿐입니다. 쓸만한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으로 구분하게 되고 자신의 얄팍한 도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열심이고 노력인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되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넘치는 복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넘치는 복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감사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시각으로는 이웃의 불쌍함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불쌍함도 보지 못하는데 이웃의 불쌍함을 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긍휼히 여기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과 이웃의 불쌍함을 바라볼 수 있고, 그래서 나의 얄팍한 동정심으로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그들도 주님의 긍휼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긍휼이 우리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성경을 인간을 가르치기 위한 좋은 책으로 여긴다는 것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2. 신자가 성경을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대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3. 세상에서 베푸는 긍휼은 왜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4. 성경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5. 세상은 왜 하나님의 긍휼을 외면한다고 말씀하며 그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세상이 보는 인간과 성경이 보는 인간은 어떻게 다르다고 말씀합니까?

 

7. 교회에서 말씀하는 성화는 무엇이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은 부작용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8.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신자에게 어떤 존재가 가장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합니까?

 

9. 오늘 본문 말씀의 신자가 긍휼이 여긴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 긍휼이 여기는 신자가 누리게 되는 긍휼이 여김을 받는 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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