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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본문 / 2: 1-13

 

1. 성령의 오심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과는 다르게 성령님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오심을 가볍게 다루게 된 이유는 아마 성령님을 체험과 능력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성령의 오심을 방언하게 하고, 병 고치는 능력을 부여하며, 믿음에 힘을 주어서 좀 더 열심을 내도록 하는 측면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에 비해 성령의 오심은 가볍게 치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에 대한 큰 오해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오순절 성령강림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당시 마가의 다락에 있던 120명의 신자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이 오셨을 때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2:2-3)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방언을 하게 된 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순절 성령강림 때 있었던 그러한 일들이 오늘날에도 신자가 성령을 받을 때마다 나타나야 하고, 체험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지금도 성령을 받을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머리에 임해야 하고, 특히 성령 받을 때 있었던 방언을 할 수 있어야 성령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성령을 받았을 때 오늘 본문과 동일한 체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성령 받은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체험이 있으면 성령 받은 것이고, 없으면 성령 받지 않은 것이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머리 위에 임하는 것과 방언을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 성령이 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은 배제해 놓고 그 뒤에 등장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만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로 인정하여 지금도 성령 받음의 증거로써 계속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의 오심과 함께 방언의 증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에 등장한 방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방언을 혀 꼬인 이상한 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지 몇 마디의 단어를 반복하는 것을 가지고 방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등장한 방언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라 각 나라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방언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방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2. 불의 혀와 방언의 의미

그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말씀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의 불의 의미는 심판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갈라졌다는 것은 나눠지고 분리됨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오심으로 사람은 성령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로 구분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령이 임한 자에게는 구원이, 성령이 임하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이 확증됨을 말씀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건질 것임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어떻게 불러 모으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방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를 말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많은 무리들은 제자들이 각기 자기들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으로 듣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방언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방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제자들이 각각 다른 나라말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제자들은 갈릴리사람으로서 갈릴리 말을 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다 나름대로 견해가 있어 해답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방언을 지금 대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방언을 한다는 사람들이 방언을 하면 그 말을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모두에게 각기 자기들의 언어로 들리는 방언이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언은 지금 이 시대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바벨탑 사건을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11:1-9)

우리도 알다시피 오늘날 지구상에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이 바벨탑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 인류는 모두 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서로 힘을 모아서 탑을 쌓아서 흩어짐을 면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은 인간의 힘을 모아 스스로 자신들을 보존해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었고, 하나님은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흩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서 이 언어의 벽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방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각기 다른 나라 사람들의 귀에 자기들의 언어로 들린 것입니다. 언어가 하나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말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특정 국가의 말을 다른 나라의 사람이 모두 알아듣는 것은, 현대 문명에서도 동시통역이라는 것으로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내용은 방언을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언을 통해 그들이 각각 듣게 되는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천하만국에서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듣게 된 내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큰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성령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성령님은 예수님의 보혜사, 즉 변호사이십니다. 그런 성령님이 말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룰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이 임하셔야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그 예수님에 대하여 그 당시 예루살렘에 모인 천하만국의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의 입술을 통해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창세 전의 그 비밀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하나님의 큰일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할 때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언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증거의 내용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복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증거되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나와 너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택함받은 자들에게만 이해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됨으로써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방언의 의미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말은 택함받은 사람만이 알고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화가 가능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 때 언어로 인해 혼잡하고 나뉘게 된 세상에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의미이며 방언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방언은 다른 나라 말로 했느냐 아니면 들려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방언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큰일인 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질은 놓치고 비본질만 붙잡고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진정한 방언

이처럼 성령이 오셔서 이 땅에서 제일 처음 하신 일은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고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받고, 그 말 아래 모이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임한 신자라면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을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성령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더 이상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며, 더 이상 성령의 음성을 못 듣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하게 됩니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고, 득이 되고, 자신을 높이고 내세울 수 있는, 한마디로 자기를 위한 말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을 높이고, 자기 입장에서 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불리할 수밖에 없는 데도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사람이며, 그 말을 이해하고 알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참된 진리이시며 생명이심을 증거 하는 것은, 세상이 반대한 사람을 좇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동일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며 불리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오신 분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깨닫게 됩니다. 물론 성령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옛사람의 사고방식에 의해 갈등과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그러한 갈등과 혼란까지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의 세계에 끝까지 붙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하늘나라 백성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참된 방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복음을 각각 다른 말로 하여 만국에서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듣게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른 나라 말로 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들의 입술을 통해 그들의 귀에 들려지게 되는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 복음의 내용이 오늘날은 진정한 방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듣고 알고 믿게 되는 자는 구원이고 반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자는 심판으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말하고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성령이 말 하심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된 것이며, 복음을 말할 수 있다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받은 자들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 즉 복음을 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하며 또 그 복음을 말할 때 우리 주님의 구원의 역사인 하나님의 큰일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날의 교회가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가볍게 다루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방언과 성경이 말씀하는 방언은 어떻게 다릅니까?

 

3. 령이 임할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보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바벨탑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인간의 의도와 하나님의 징벌은 무엇이며 또 오순절 성령강림과는 무슨 연관이 있다고 합니까?

 

5.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듣게 된 사람들이 들은 하나님의 큰일에 대한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복음의 내용의 특징은 무엇이며 또 그 복음을 듣게 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말하게 한 방언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

 

7. 성령이 오셔서 이 땅에서 제일 처음 하신 일은 무엇이며 또 그런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예수님의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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