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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본문 / 7: 7-12

 

1. 세상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성경

신자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신자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은혜의 세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신자가 은혜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님의 완전하심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가 이루어야 할 율법의 내용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의 세계에서는 율법에 의한 비판이 없습니다. 율법은 예수님께서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 있는 신자를 더 이상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라든가, 헌금을 하라든가 하는 말을 교회에서 많이 듣지만, 그것은 은혜의 세계 밖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세계 밖의 사람들은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율법을 실천해야 하는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행위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행위가 기준이 되어 열심히 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고, 게으른 사람은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 아래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명령하신 내용들을 자신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곧 신앙이었고, 지키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생각한다면 율법을 기준 해서 타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기준으로 한 비판을 초래할 뿐입니다. 즉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비판을 하지 않는 실천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말씀하는 것에 그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상식과 지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의 계시의 책으로써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과 지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7-8)는 말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과 지식으로 접근을 하게 되면 누구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의미로 보게 될 것입니다. 즉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에 중점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중점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위해 두드리는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를 강조하게 됩니다. 즉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에 의한 해석입니다.

신에 대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은, 인간의 정성은 신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다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 열심과 정성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본문을 보게 되면 결국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인간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는 뜻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남을 대접하는 것이 황금률인가?

하지만 오늘 본문 12절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는 말씀을 생각한다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기도에 대한 열심이나 태도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은 앞의 내용과 상관없는 별개의 구절이 아닙니다. 맨 앞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결론적인 말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12절의 내용과 연결하여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12절의 말씀을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황금처럼 고귀한 기독교의 윤리관이라고 해서 17세기쯤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을 대접하는 것이 기독교 최고의 윤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독교 최고의 윤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12절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기독교 최고의 윤리라면 비판에 대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유교나 불교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상을 바라거나 상대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남에게 잘하면 그것은 벌써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너도 남을 대접하라가 되는데 이 문구대로 내가 남을 대접하면 남도 나를 대접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남을 대접한다면 과연 그것을 순순한 대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과연 그런 수준의 것이겠습니까?

세상에서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하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손님은 잘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수준보다 더 낮은 것입니까? 사랑에 관한 기독교적인 원리는 남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든, 내가 어떤 취급을 받든 남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며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그런 사랑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을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를 윤리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3.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의 의미

앞서 말씀드리기를 신자는 예수 안에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즉 신자의 은혜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세계는 구하면 주고, 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지 않는 것은 은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란 구하지 않았는데도 아낌없이 베푸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구하고 찾는 자기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7-8)는 말씀을 하셨고, 또한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1-32)는 말씀을 하셨음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신자와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안 후에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세상의 것은 더 이상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한 예수 안의 신자가 세상의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세상의 것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밖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보시는 분이고, 따라서 원하고 필요한 것을 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예수 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인간을 보지 않으시고 무조건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원한 것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도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좋은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예수 안에 있는 신자의 기도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구해서 받으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받아 누리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4. 남을 대접하라

사람들이 뭔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세상의 것과 연관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좋은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라고 하여 성령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 베푸시는 좋은 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것이 아님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신자가 자신이 생각하던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말씀하는 남에게는 이웃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대접이라는 말도 손님을 접대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손님을 접대하는 것처럼 접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을 이해하려면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율법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의 불의함을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그 어떤 행위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를 소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참된 생명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를 보내신 이유였습니다. 그것을 대접이라는 말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접하고자 한 것은, 그들에게 생명이 되시는 분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생명을 배척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대접을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신자는 하나님을 자기 백성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으로 바라봅니다. 설령 자신의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도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 담겨 있음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은 세상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된 생명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이 자신을 참된 기쁨으로 인도해 간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대접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대접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자신의 정성과 열심을 모두 동원해서 하나님께 구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외면할 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좋은 것, 즉 성령을 주셔서 자기 소원을 고집하는 나로 인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게 합니다. 그럴 때 신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이고, 주안에의 삶이고, 신자답게 살아가는 신앙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자가 예수 안에, 은혜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2. 은혜의 세계 안에 있는 자와 은혜의 밖의 세계에 있는 자는 무엇이 다르며 또 은혜 밖의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초점은 무엇에 있다고 하십니까?

 

4.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오늘 말씀을 인간의 상식 수준에서 생각하면 어떤 해석과 어떤 결론 남는다고 합니까?

 

5.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기독교는 무엇이라 하며 또 그렇게만 이해하면 안 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신자들이 사는 은혜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또 그 은혜의 나라를 사는 자로 오늘날 우리가 구하는 기도는 우리로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7. 예수 밖에 있는 자와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떻게 다르고 또 예수 밖에 있는 자와 안에 있는 자의 기도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8.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것과 주 안에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접한 것은 무엇이며, 이스라엘은 그 대접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0.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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