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월 30일 / 마태복음 49. (마 7:156-20)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by 관리자 posted Nov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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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본문 / 7:15-20

 

1. 믿음은 쉽지가 않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옥의 간수에게 전한 말로서 전도를 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고 말하며 또 13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고 합니다. 이 구절들도 전도를 할 때 많이 사용되는 내용들입니다.

대개는 이러한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해서 누구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선포해 버립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구원은 참으로 쉽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로 시인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데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난주 말씀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 마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했는데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길이 뭐가 어렵다고 예수님은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시는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람이 주 예수를 믿는 것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그리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쉽다 어렵다는 말의 기준은 인간의 실천에 있습니다. 즉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쉽다 어렵다의 구분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들이 우리 생각에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나는 예수를 믿는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입으로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걸림돌은 인간의 행함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행함은 믿음의 걸림돌이 아니라 믿음과 함께 등장해야 할 필수적인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말씀을 실천하도록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믿음과 행함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여겨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말씀을 실천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종교적인 삶의 실천이 아니고 도덕적인 선의 실천도 아닙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였던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용서는 놀라운 은총으로 신자에게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믿음의 걸림돌인 행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것입니다.

 

2. 거짓 선지자

이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좁은 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했는데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이 아닐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곧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 말씀을 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구세주로 지칭하는 문선명이나 박태선 그리고 신천지의 이만희 같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그것이 전부라면 거짓 선지자에 대한 문제는 그리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다니고 목사로부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이단이고 사이비며 거짓 선지자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문선명이나 박태선 그리고 이만희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옷을 입고 지극히 선하고 의로운 자로 다가오는 사람입니다. 누가 봐도 참된 신앙인으로 보이는 외적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쉽게 그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누가 거짓 선지자인가?’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이는 거짓 선지자를 삼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거짓 선지자이겠습니까? 이것은 전하는 복음의 내용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다고 말씀하셨으니만큼 전해지는 복음이 신자를 좁은 문으로 인도한다면 그는 참된 선지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문이 아닌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복음이라면 그것은 거짓 복음이고 그리고 그 거짓 복음을 전하는 그 또한 거짓 선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거짓 복음의 특징은 사람들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말로 가득하고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말로 넘칩니다. 그래서 누구나 수용하고 따르고자 하는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빠진 복음입니다.

죄가 빠진 거짓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보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교회를 잘 다니고 기도하고 헌신하며 어려운 생활에서도 십일조를 잘하는 자신을 보게 합니다. 또한 성경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는 자신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말은 하면서도 자신을 지옥 갈 존재로는 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인간을 지옥 갈 존재로 선포합니다. 멸망이라는 비참한 자리까지 인간을 밀어 넣고 그 자리에서 십자가에 피 흘리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는가?’를 묻습니다. 복음은 신자로 하여금 십자가 앞에서 아무것도 할 말이 없는 자로 만듭니다. 세상의 복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할 말은 나 같은 자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 마디밖에 없음을 알게 합니다. 이러한 복음이 좁은 문이고 이 복음을 전하는 그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선지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보면 거짓 선지자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7:15)고 말씀합니다. 즉 거짓 선지자는 양을 노략질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을 노략질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양으로부터 신뢰는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종교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쓰게 되고, 양들이 꺼려하는 말은 하지 않고 대신 양을 기쁘게 하고 웃을 수 있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러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고 멀리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듣기를 즐겨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무엇이 진심으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참된 복음이며, 나로 하여금 세상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복음인가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복음에 대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3. 열매로 알리라

복음은 그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한다고 해서 다 선지자가 아니라 드러나는 그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통해서 제대로 분별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7:16-18)고 말씀하시면서 열매가 그가 누구인가를 증거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읍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 생각하는 신앙의 이치와 상식에 맞는 말로 사람을 선동하는 것이 됩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좋은 나무에게서 자연히 맺어집니다. 즉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좋은 나무에게서는 당연히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못된 나무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소리친다면 그것은 가시나무에게 포도를 맺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네가 포도를 맺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거짓 선지자의 말입니다.

복음은 다릅니다. 못된 나무로 하여금 네가 못된 나무임을 알라고 합니다. 즉 자신은 스스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못된 나무임을 알게 하여 자신에 대해 그 어떤 가능성도 두지 않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좋은 나무에게서만 가능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좋은 나무인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로 변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못된 나무에게 좋은 나무가 되라고 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거짓 선지가가 말하는 열매는 종교 행위와 인간의 도덕과 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아름다운 열매로 규정하고, 그 열매로 자신이 좋은 나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 복음에는 그 어느 한 부분도 인간을 거스리는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선한 행위에 대한 결단을 하게 하고 또한 선에 대한 실천을 통해서 자기 확인까지 하게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아름다운 열매는 종교적 행위도, 도덕적 실천도, 신비한 능력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서 부인되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서 종교적인 행위와 도덕적인 실천들이 부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7:22-23)는 말씀을 통해서 신비하게 보이는 능력도 부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처럼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5:22-23)라고 합니다. 이처럼 성령에 의해 맺어지는 열매가 아름다운 열매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열매는 못된 나무인 우리가 맺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가능한 것은 로마서 11장의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11:17)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못된 나무인 우리를 꺾으셔서 좋은 나무에게 접붙이신 것입니다. 그럴 때 좋은 나무로 인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은 못된 나무인 우리를 꺾어서 좋은 나무에 접붙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하심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못된 나를 붙들고 있는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스스로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용서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 복음이며,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 맺어지는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이 열매로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계시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구원이 쉽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구원이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입니까?

 

4.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기 위한 첫 번째 요소는 무엇이며 또 그런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 가득하고 어떤 내용은 없다고 합니까?

 

5. 죄가 빠진 거짓 복음의 가르침의 내용은 어떤 것이고, 죄를 말하는 참된 복음의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짓 선지자의 목적은 무엇이며 또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오늘 본문의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의 비유에서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과 바른 복음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8. 사람들이 바른 복음보다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더 따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못된 나무인 우리는 결단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된 까닭은 무엇이며 또 그로 인해 알게 된 참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삶을 살게 한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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