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5,688,734
오늘 : 7,363
어제 : 10,770

페이지뷰

전체 : 86,292,171
오늘 : 22,476
어제 : 115,706
조회 수 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포도나무와 가지

본문 / 15: 1- 6

 

1. 참 포도나무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하나님은 농부로, 신자는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는데 왜 참 포도나무라고 하시는 것이겠습니까? 그냥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라고 하시는 것은 결국 다른 포도나무와 비교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포도나무로 비유되는 것이 예수님뿐이라면 굳이 참 포도나무라는 말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포도나무이면서도 참되지 못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하기 위해서 참 포도나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포도나무를 염두에 두시고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에 보면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2:21)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심은 귀한 포도나무라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방인을 악하다고 말할 때는 그들의 행동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인을 많이 하거나, 도적질만 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그것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1:21)라는 말로서 이방인의 악함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방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이 이방인처럼 살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를 위해 살아가고 자기 영광을 얻기 위해서 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실체

이러한 이스라엘에서 보여진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기들의 열심과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을 자기들의 편으로 붙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아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붙드는 힘을 신앙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열심히 지키고 행하는 것이 신앙이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게으른 것이고 신앙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에 보면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어떤 행위가 있게 되면 그 모든 것은 열심히 행한 자기들의 공로로 돌렸던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믿었던 것이 결국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의를 쌓고자 했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심으신 귀한 포도나무로 살아가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다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 보시기에 포도나무로 살아갈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 포도나무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체임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열매 맺는 삶

그러면 오늘 본문 4절부터 보면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15:4-6)고 말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은 실패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열매를 맺어내는 가지가 되라고 독촉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아셔야만 합니다. 사람들을 모아다가 자기만 천국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천국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마태복음 23장에서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3-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모양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농부로 비유하십니다. 농부는 나무를 가꾸고 기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가꾸고 기르신다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이것은 분명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농부란 가꾸고 기른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열매를 기다리고 원하는 농부의 심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가꾸고 기르는 것에 대해 가르치기보다는 열매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 그리고 헌금 등등의 행위라는 것을 열매로 생각하고 그것을 맺어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이방 포도나무의 가지로 살아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매를 맺는 일에 실패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5절에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자연히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지일 뿐입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지는 다만 나무에 붙어있음으로써 나무에 의해 열매가 맺히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접붙이셨습니다. 따라서 접붙임 받은 가지답게 사는 것은 내 스스로 열매를 맺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님으로 되어질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신자가 주안에 있으면 주님에 의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자연히 나무 되신 주님의 것이 가지인 우리에게 열매로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열매로든 오직 주님만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지가 된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인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2025 요한복음 96. (요 15:1-6) 포도나무와 가지 관리자 2025.12.14 2
876 2025 12월 14일 / 마태복음 51. (마 7:24-29) 두 종류의 기초 관리자 2025.12.14 2
875 2025 12월 7일 / 요한복음 95. (요 14:25-31) 보혜사 성령 관리자 2025.12.07 96
874 2025 12월 7일 / 마태복음 50. (마 7:21-23) 두 종류의 행함 관리자 2025.12.07 99
873 2025 11월 30일 / 마태복음 49. (마 7:156-20)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관리자 2025.11.30 172
872 2025 11월 23일 / 요한복음 94. (요 14:18-24) 고아와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함 본문 / 요14:18-24 관리자 2025.11.23 150
871 2025 11월 23일 / 마태복음 48.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5.11.23 152
870 2025 11월 16일 / 추수감사주일 / (수12:1-24) 신자의 감사 관리자 2025.11.16 156
869 2025 11월 9일 / 요한복음 93. (요 14:16-17) 진리의 영 관리자 2025.11.09 169
868 2025 11월 9일 / 마태복음 47. (마 7:7-12)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5.11.09 137
867 2025 11월 2일 / 요한복음 92. (요 14:12-15) 믿음에 의한 기도 관리자 2025.11.02 179
866 2025 11월 2일 / 마태복음 46. (마 7:-6) 비판하지 말라 관리자 2025.11.02 192
865 2025 10월 26일 / 마태복음 45. (마 6:25-34)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관리자 2025.10.26 203
864 2025 10월 22일 / 신명기 40. (신 20:1-9) 신자의 두려움 관리자 2025.10.26 178
863 2025 10월 19일 / 요한복음 91. (요 14:12-14) 신자의 기도 관리자 2025.10.23 185
862 2025 10월 19일 / 마태복음 44. (마 6:19-24) 하나님과 재물 관리자 2025.10.19 189
861 2025 10월 12일 / 요한복음 90. (요 14:7-12) 나를 본 자는 관리자 2025.10.12 190
860 2025 10월 12일 / 마태복음 43. (마 6:16-18) 참된 금식 관리자 2025.10.12 194
859 2025 10월 5일 / 마태복음 42. (마 6:13) 나라와 권세와 영광 관리자 2025.10.05 172
858 2025 10월 1일 / 신명기 38. (신 19:1-13)  하나님의 도피성 관리자 2025.10.05 21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4 Next
/ 44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