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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백부장의 믿음과 예수님

본문 / 8: 5-13

 

1. 천국이 원하는 믿음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천국이 모든 믿음을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천국이 원하는 믿음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천국이 원하는 믿음이 따로 있다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에베소서 2장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있는 반면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믿음도 있습니다. 이 두 믿음 중에 천국이 원하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믿음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믿음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인지에 대해서 분간을 못합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천국에 합당한 믿음으로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의 중심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있습니다. 나 아닌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삶의 중심에 둔다고 해도, 그것은 자식이 자신의 몸에서 나온 분신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믿음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믿음에 대해 생각할 때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믿음이 있는 반면에, 천국에서 통용되는 믿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입은 이야기가 바로 천국에서 통용되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을 더러운 자로 인식을 하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은 깨끗함을 요구할 자격도 없음을 알고 원하시면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둡니다. 이것은 설사 예수님께서 자신을 깨끗케 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로 예수님을 찾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가능하지 않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이며 은혜인 것입니다. 천국은 이러한 믿음을 원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가 산상설교 다음에 나병환자 이야기를 등장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깨끗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산상설교를 통해서 인간의 깨끗함은 결코 율법의 실천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만 되는 일임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과 이방인 백부장

그런 나병환자 이야기 다음에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증거하는 믿음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하인의 중풍병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에게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8:7)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구약의 시각에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찾아가시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에만 계셨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방인의 집을 찾아가셔서 하인의 병을 고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지 구원에 차별이 없다는 의미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우리에게도 구원이 주어졌다는 뜻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즉, 자신들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졌던 구약의 이스라엘이 곧 오늘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실체는 보지 못한 채 단지 주어지는 혜택에만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그 대상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이방인에게 주어졌음을 증거하면서 이스라엘이 굳게 믿고 있는 믿음이 천국이 원하는 믿음이 아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탄생한 예수님을 가장 처음 경배한 사람이 멀리서 온 동방박사로 나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양을 치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가장 먼저 경배합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에서 이방인인 동방박사를 가장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사람으로 등장시키고, 오히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는 존재로 등장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믿음이 아님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에서도 명확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백부장에 대해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8:10)는 말씀을 하시면서 11절부터 보면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8:11-12)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비해 이방인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울며 이를 갈아야 하는 저주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손으로서 천국에 앉아있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뒤바뀌게 됩니다. 본 자손들이 오히려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갈 것이고, 이방인이 오히려 천국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식의 믿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고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이어야 천국에 앉게 된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즉 천국은 이스라엘식의 믿음이 아니라 백부장의 믿음을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백부장의 믿음이 과연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아니면 모두가 이스라엘식의 믿음으로 간주될 것이고, 결국 아무리 스스로를 천국에 앉은 자로 굳게 믿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본 자손인 이스라엘처럼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3. 믿음의 차이

그러면 도대체 이스라엘과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먼저 외적으로만 본다면 이스라엘의 믿음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은 정말 칭찬할 만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러한 열심히 담긴 믿음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에게는 이스라엘과 같은 믿음의 열심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물론 백부장에게도 믿음의 삶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믿음의 삶을 소개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것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교회 봉사를 하며 선하게 사는 외형적 모습만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예수님께 칭찬 받은 이유도 같은 시각에서만 생각합니다.

백부장은 말 그대로 부하 백 명을 둔 로마군대의 장교입니다.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본인의 병이 아니라 하인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직접 찾습니다. 그는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입니다. 얼마든지 강압적으로 자기 집으로 와서 병을 고쳐 보라고 명령할 수 있는 처지인데도 겸손하게 집까지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만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개 백부장 이야기를 우리의 믿음도 백부장을 닮아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야 하며 또 주님은 말씀으로만 어떤 병이든지 낫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식의 믿음입니다. 즉 백부장 같이 행동해야 예수님에게 인정받고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백부장의 그러한 면을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8절부터 있는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8:8-9)라는 말을 들으시고 그 믿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직접 오실 필요 없이 말씀만으로도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알았음을 뜻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는 말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가 상관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고, 종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당시 불치병으로 여겼던 나병까지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종속되어 있음을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백부장의 믿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믿음의 중심에는 율법을 실천하는 자기 자신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백부장의 믿음의 차이입니다.

 

4. 백부장의 믿음인가?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과연 백부장의 믿음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부장과 같은 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백부장과 동일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백부장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았기에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부장이 알고 있는 예수님이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뜻에 자신을 맡겼다면,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에 자신을 맡기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예수님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은 이미 다스려진 상태이고,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서 자신의 의나 힘에 대한 기대도 다스려진 상태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존재하시는 것으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 있음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히 실천하는 자신의 존재에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자신이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믿음이 증거되고 구원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지금도 성경을 실천함으로써 믿음이 증거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식의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가 성경을 실천함으로써 믿음이 증거된다고 여기는 것은, 믿음의 증거물에 대해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한 대로 대개는 믿음의 증거물을 신자의 실천, 행함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증거물은 신자 자신입니다. 성령이 주어지는 것도, 신자를 믿음의 증거물, 즉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여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입니다. 신자가 믿음의 증거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자에게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긍휼입니다. 긍휼을 담아서 긍휼을 증거하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 토기장이의 뜻입니다. 신자는 이 뜻에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야기는 하인의 병이 고침받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는 백부장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로 얻어지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천국이 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지식이 우리를 신자로 살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믿음에는 어떤 믿음이 있으며 또 사람들이 자신에 믿음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지난주 나병 환자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천국이 원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3. 태가 산상설교 뒤에 나병 환자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이방인인 백부장의 구원을 차별이 없는 구원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까닭은 무엇이며 또 마태가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위치를 완전히 바꿔 말씀하심으로 무엇을 가르치시려 한다고 합니까?

 

6. 늘 본문의 백부장에 대해 기록되지 않은 내용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오늘 본문의 백부장을 보고 해석하는 이스라엘식 믿음은 무엇입니까?

 

8. 이스라엘과 오늘 본분의 백부장의 믿음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지난 시간의 나병 환자와 오늘 본문의 백부장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이스라엘식 믿음은 무엇이고,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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