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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음의 악한 생각

본문 / 9: 1- 8

 

1. 예수님으로 인한 충돌

유대인의 메시아사상은 다윗 왕국으로의 회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수백 년간 유대 사회에서 내려오던 메시아에 대한 사상이었기에 유대인은 메시아에 대한 다른 사상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메시아사상은 실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과는 충돌될 수밖에 없었고 커다란 갈등 관계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가 과연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오셨는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인간이 꿈꾸고 있는 가짜 예수가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지금 예수님이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2)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9:4)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능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만 믿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죄에 갇혀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은 나름대로 예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대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에게 있는 지식과 정보와 다른 이질적인 예수가 다가오게 되면 결국 충돌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 사회의 신앙은 아무런 문제 없이 평탄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앙하면 되었고 또 그것이 그들의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눈이 하나인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있다면 그들의 세상에서는 눈이 하나인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이 하나인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에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등장하여 눈이 하나인 것은 비정상이다. 눈이 두 개 있어야 정상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그들 세계에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눈이 두 개가 정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이 두 개여야 정상이라고 외치는 그 사람을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치부하고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소동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2)고 외칩니다. 그 말을 들은 헤롯왕과 예루살렘에 나타난 현상은 소동이었습니다.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눈에 보이는 헤롯은 왕이 아니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 즉 동방박사를 통한 첫 복음 전파의 현상이 바로 소동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2. 악한 생각

서기관들이 속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들 안에서 일어난 소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람이 감히 사람에게 죄 사함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중풍 병자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 속에 소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또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악한 생각으로 규정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의 생각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단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고 오신 분임을 몰랐다는 것이 악하다는 이유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고 또한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음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악한 생각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마가복음 2장과 누가복음 5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와 누가는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를 못하자 지붕을 뜯어내고 병자를 예수님께 달아 내렸다고 기록하는 반면에 마태는 그러한 내용은 언급하지를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만 말할 뿐입니다. 이것은 마태가 중풍 병자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까지 예수님께 나오고자 했던 중풍 병자의 그 믿음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한 그들의 믿음은 무엇인 것입니까?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자 사람들이 놀라며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8:27)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한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심으로써 재산에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떠나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순종케 하고 귀신도 쫓아내는 권세가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자신의 재산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이방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예수님에게 나오는 이유는 죄 사함이어야 하고 만약 다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당시에는 중풍 병을 고칠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이 없었습니다. 즉 불치병이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중풍으로 인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한다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태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한 것은 자신이 고침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죄 사함 받는 믿음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반면에 서기관들은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정성과 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받아주신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에 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중풍 병자와 다른 점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중풍 병자는 자신이 고침받기 위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건강하고 멀쩡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악한 생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3. 죄 사함의 권세

예수님은 악한 생각을 가진 서기관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9:5)라고 질문하십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시는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런 말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즉 불순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아무리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없으니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서기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말이 아니라 권능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5절과 같은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말로 여기느냐 아니면 권능으로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말로 여긴다면 듣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권능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분명히 순종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권능을 대하는 피조물의 합당한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에게 그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서 질문을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9: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의도라는 것은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9:6 )는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의 성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악한 생각을 가집니다. 말뿐인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시 중풍 병자에게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로 말씀합니다. 그러자 그가 그대로 합니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중풍 병자인 그가 자기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을 눈에 보이게끔 나타내신 것은, 앞에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9:6 )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서기관들은 죄 사함의 권능을 가지고 온 하나님의 아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열심으로 죄에 대한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남은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등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메시아는 죄 사함의 권능을 가지고 왔음을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세상과 충돌되는 이질적인 메시아, 즉 예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죄 사함의 권능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믿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우리의 귀에 들리는 말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또한 지식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냐 믿음이 아니냐의 증거는 어떤 사람으로 예수님께 나오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중풍 병자와 동일해야만 합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든 자가 되어서 모든 희망을 예수님에게 둔 사람으로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보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보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뿐입니다.

시편 14편에 보면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14:1-3)라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처럼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데, 인간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복을 누리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악한 생각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기의 선으로 무장되어 있는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생각이 악하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죄 사함의 권능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의 권능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선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할 목적으로 활동하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하는 일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선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선을 바라보는 것이 곧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능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예수님께 나와야 할 이유는 오직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로 인한 애통보다는 생존의 문제로 인해 더 애통해 합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권능이 있는 예수님보다는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예수를 원하게 됩니다. 이것이 악한 생각입니다.신자는 죄 사함의 권능 아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무한한 기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기쁨이 힘이고 위로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인간들에게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 동방박사를 통하여 처음으로 선포된 복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에게 소동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말미암아 서기관들에게 일어난 소동은 무엇이며 또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그를 데려온 자들에게서 본 믿음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에게서 본 악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6.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명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원하는 메시아와 또 그런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질적인 메시아는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8. 오늘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가지는 악한 생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날 사탄이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할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혹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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