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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알지 못하는 자와 아는 자

본문 / 16: 1- 4

 

1. 알지 못함

오늘 본문 2절부터 보면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16:2-3)는 말씀을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는 신자를 죽이고 핍박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행하는 일들이 과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지를 생각해봐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를 죽이고 핍박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여겼던 그들처럼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만 할 것입니다.

유대인이 신자를 죽이고 핍박을 한 것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이고 옳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아는 것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배척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신앙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진리 싸움이라는 것을 많이 합니다. 서로가 아는 것을 가지고 내 것이 옳음을 증명하는 싸움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면 어떤 논리에 대해서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 곧 신앙을 지키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든 뭐든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말하는 나 역시 태어날 때부터 진리를 아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기 전에는 우리 역시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고,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으로 주장하며 잘못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때가 되매 부르셔서 진리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로 인해서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임을 안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앎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악한 자에 대해서도 기다리시고 때가 되면 부르신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복음을 알고 진리를 깨달은 신자라 할지라도 나는 복음을 아니까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척하고 심판하자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비록 복음을 안다고 할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까지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기독교 신앙

신자가 복음을 알았다고 해서 남을 심판할 권한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알게 하셨다면 그 복음을 나누라는 하나님의 뜻이 주어진 것이고 또 그 복음을 나누어야 할 자들은 복음을 모르는 자들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혀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으로 주장하는 자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잘못된 진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척을 하되 잘못된 것을 말하는 사람까지 배척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진리를 모르던 상태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진리를 모르는 나를 배척하셨다면 지금 우리가 과연 복음을 아는 신자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안다면 복음을 제대로 아는 신자가 보일 것은 기다리고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옳고 그름을 가려서 옳은 것만 남기고 그른 것은 몽땅 없애버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무시한 죄인들까지도 부르시고 신자 삼으셔서 하나하나 고쳐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뿐입니다. 내가 복음을 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예수님의 피로 의인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인이 의인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복음을 모르는 자가 있다고 할 때 그 앞에서 너는 죄인이고 나는 의인이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자라면 그것은 바리새인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죄를 알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고 또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할 뿐입니다. 복음을 안다고 해서 자신이 정당해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복음이며 다만 머릿속에만 머무는 복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칫 복음을 안다고 하는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같은 이해를 가지고 소위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면서 잘난 것이 없다며 자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모르는 자 앞에서는 그런 죄인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마치 복음을 안다는 것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을 다스리고 지배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그것은 그에게 내가 알게 된 모습을 나눠 주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설령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대하신 것처럼 기다리고 참으며 기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며 기독교의 참된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진정으로 아는 것

신자는 틀린 자들을 가려내어서 그들을 쳐부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신자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나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였는데 어떤 존재로 되어졌는가를 깊이 생각할 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항상 의인의 입장에서 또 옳다는 입장에서 틀린 것을 구분하고 틀린 것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심판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셔서 맡기신 일이 무엇입니까? 틀리고 잘못된 사람을 가려내서 몽땅 심판하라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세상에서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 하는 자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신자를 미워한다면 미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되 미워하지 않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을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할 곳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나 자신을 정당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나누어 줘야 할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오래 참고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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