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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들이 받은 권능

본문 / 10: 1- 6

 

1. 자기 주관에 매몰된 현실

나름대로 신앙이 있다고 하는 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아무리 착하게 보이는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교리체계나 성경 사고에 대한 다른 시각을 내어놓으면 곧장 방어태세로 돌입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띄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소통 불능의 암담함을 느끼곤 하고, 이런 느낌이 있을 때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던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던 때에 그 대상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그들에게 구축되어 있는 신앙체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체계는 그 어떤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다고 해도 끄덕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체계를 벗어나는 것은 곧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상대로 그들의 신앙체계와는 전혀 다른,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신앙체계는 모두 엉터리이고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도 아니며, 그들 스스로는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야말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만한 충격적인 말씀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앙체계를 부수고 나온다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분노와 함께 공격적인 대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소통 불능이라는 벽에 부딪히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성경 지식에 대해 설명을 하고 성경의 바른 의미가 무엇인가를 전하면 수긍을 하고 인정을 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 체계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기존의 지식에 문제가 있고 허점이 있으며 성경의 의미에 맞지 않다는 것을 수긍을 하고 인정하였으면서도 왜 잘못된 체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 동안의 자신의 신앙이 부인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신앙체계 안에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해온 그 모든 세월이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진리에 매몰되어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자기 주관에 매몰되어 살아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 자신을 생각해 봐도 제 안에 참으로 많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관념의 찌끼들로 인해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이 방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의 권능이 내 속에 밀려들어 오면서 내 안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관념의 찌끼들이 밀려가고 다만 생명이 되는 진리의 말씀만 투명하고 깨끗하게 남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율법적 체계를 따라 자신들의 행함과 체험을 끼워 맞추어 놓고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가 이러한 유대교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능력이 아니라 권능

이러한 현실에서 신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같은 일원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이 결코 아닙니다. 나와 같은 신앙체계와 같은 교리 안에 안주하면서 교회만 나와 주면 되는 종교인을 양산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서 천국이 가까웠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뒤의 내용들을 보면 천국이 가까웠음을 전파하는 자로 보냄을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고 심각한 문제를 동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뒤의 16절의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는 말씀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실감있게 다가오지 않고 또 22절의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22)는 말씀도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부딪히는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내용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말씀한 것과 같은 현실을 우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성령을 받은 자고 세상에 보냄 받은 천국 복음을 전파할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신자가 처할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사람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생명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줘야 할 신자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앞에 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0:1)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전파하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권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내용들과 부합해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다니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외치고, 또한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보여주는데 왜 그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 그 같은 권능을 받아서 많은 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를 한다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는커녕 많은 인기를 끌 것입니다. 수많은 불치병 환자가 몰려들면서 서로 예수 믿겠다고 자청을 할 것이고, 우리와 같은 교회를 다니겠다고 등록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리 가운데 보낸 것 같다고 하시고,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1절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초월적인 능력자로 만들어서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제자들을 능력자로 만들어서 보낸 것이라면, 오늘날 예수님께 보냄 받은 제자로 일컬어지는 신자도 그와 같은 능력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주신 능력은 8절의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8)는 말씀처럼 문둥이도 깨끗하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님과 동일한 초월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오늘날 이런 능력을 받은 자가 과연 누구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1절의 말씀은 오늘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인 것입니까? 즉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만 해당되는 능력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 나와는 상관이 없는 단지 2천 년 전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듣고 있을 뿐입니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귀신 들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받은 제자들이 왜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한 것입니까?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한 권능의 의미가 능력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고 말합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는 말씀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일은 단지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마음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청하라고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모든 병과 약한 자를 고치시는 권능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한 권능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권능을 받은 신자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신자는 예수님께 권능을 받은 사람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리는 권능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고사하고 가벼운 병조차 낫게 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보내신 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신 권능의 근본 목적은 귀신들려 고생하고 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현실로부터 구출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그러한 권능을 주신 것은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의 일을 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일은 자기 백성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으로 하여금 긍휼의 주로 오신 예수님이 참된 목자가 되심을 발견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불쌍히 여김받아야 할 존재로 바라보고 긍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소망을 두는 자기 백성을 찾는 일을 위해 제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권능을 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제자들을 자기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을 하는 자로 보내시기 위해 예수님과 같은 마음, 즉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주신 권능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예수님의 불쌍히 여겨주시는 긍휼의 마음을 안다면 그는 당연히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권능을 받지 않고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권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고 설쳐 대봐야 결국 자기 일에 매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들이 보이지 않고 자기 배를 부르게 해줄 이용대상으로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참된 제자는 오직 예수님이 주신 권능에 의해서 탄생 됩니다. 제자의 능력과 자질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권능에 의해서 예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그 권능에 의해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6)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시각에서는 잃어버린 자는 이방인이고 사마리아 사람들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잃어버린 자로 말씀합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체계가 그들을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체계 안에서 자신을 불쌍한 자로 보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잃어버린 자임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이제 누가 불쌍한 자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예수님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긍휼로 인해서 사망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긴 바 된 것이 놀라운 기적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신자는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권능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 때나 오늘날이나 신앙적 대화를 할 때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이 기존의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문제를 인정하고 복음을 듣고 옳다고 하면서도 결국 잘못된 신앙의 체계로 되돌아가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그것이 신자인 우리의 현실인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권능과 다른 의미의 권능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것은 무엇을 위해서라고 하며 또 그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결국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예수님이 허락하신 권능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가 사람들을 바라 보는 시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합니까?

 

8.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체계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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