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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보냄 받은 제자의 삶

본문 / 10: 7-10

 

1. 특별한 삶이란 없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보내신 내용을 보면서, 신자가 한 가지 자기에 대해 확인해야 하는 것은 신자 역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제자들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이 곧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직접 보내신 것도 아니고 또한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받은 권능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은 외국으로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해당이 된다는 생각이 강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냄을 받고 천국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일을 우리가 사는 삶과는 다른 특별한 삶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처럼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지역으로 선교사로 가서 고생하면서 복음을 전하거나, 아니면 확성기 들고 거리로 나가서 천국 지옥을 외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전도를 하는 것을 보냄 받은 제자답게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특별하고 대단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사가 되거나 구제를 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야 보냄 받은 신자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일상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삶에서 신자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즉 보냄을 받은 신자이기 때문에 있어야 하는 특별하고 대단한 삶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신자가 가진 그것을 나타내는 자로 살게 하는 것이 신자를 보낸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일을 하면서 특별하게 살아야 그것이 보냄 받은 신자답게 사는 것이고 또 그것이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삶을 만들어서 신자답게 살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마귀의 유혹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냄을 받은 신자답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렇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고, 특별히 이웃에게 예수를 믿으라며 전도를 하거나 선한 삶을 살면서 신자다움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우리를 신자의 위치에서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천국이 가까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인 것입니까? 만약 그것이 제자들을 보내신 이유라면 예수님은 큰 실수를 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알지 못했기에 당연히 예수님의 죽으심이 자신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자체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것은 십자가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10:7)라고 말합니다. 즉 제자들이 전파할 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세례 요한이 증거한 말이었고, 예수님이 가장 처음 외치신 말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신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세상에 보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낚는다는 말의 의미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에 초점을 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다같이 회개해서 천국에 들어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회개는 우리의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 또한 우리가 회개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여기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회개하지 않은 자는 천국과 상관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천국관에는 맞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천국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또 하나님의 백성답게 규례를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천국은 회개와 상관없이 주어진 자기들의 당연한 몫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천국관은 잘못된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은 인간의 행위나 선과는 상관없이 회개하는 심령에게만 주어집니다. 회개하는 심령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아는 심령을 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세운 규례와 원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로움으로 여겼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자로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덮으시는 것으로 다가올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은 로마에게 핍박을 받고 지금의 형편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를 보내서 평안하고 복된 인생을 살게 해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기다리고 원하는 천국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천국이 가까웠음을 전파하라는 것은, 제자들을 예수님이 가져오신 천국을 보여주는 자로 보내셨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천국이 어떤 곳인가?’하는 것은 제자들이 갖춰야 할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가 세상에 어떤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3. 거저 받음과 거저 줌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8)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능력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이 함께 한 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권능은 무엇인 것입니까? 마태복음 8장에 보면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8:16-17)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처럼,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일들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저주에 갇힌 자기 백성을 건지시기 위한 사랑과 자비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저주에 갇히고 귀신에게 붙들려 있는 자기 백성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 권능이 함께 한 자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권능이 함께 한 제자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것도 저주에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참된 천국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 제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저 받았기 때문에 거저 주는 것입니다. 대개 이 말을 병 고치는 권능은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병을 고치고 그 대가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많이 이해합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로 병을 고치고 대가를 받으면 안된다는 것은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그러면 병 고치는 권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거저 받은 것이 없으니 거저 줄 것도 없는 것입니까?

예수님께 보냄 받은 모든 제자는 거저 받은 것이 있습니다. 보냄 받은 제자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냄 받은 모든 신자는 거저 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입니다.

신자는 우리를 저주에서 구출하시고 사망에서 건지시며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권능이 함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 권능은 한시도 신자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신자는 이 권능을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주어야 할 것도 이것밖에 없습니다. 나를 저주에서 건지시고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로 살아가면서 얻어야 할 내 이름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에게서 받은 크고 귀한 것을 내어놓으며 살아갈 뿐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전했더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디다라며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4. 가지지 말라

신자가 거저 받은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증거하는 것을 특별하고 대단한 삶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자는 모두 세상이 볼 때 특별하고 대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하면서 오히려 거저 받은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보면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10:9-10)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라면 제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다녀야 합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천국을 전파하면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쉽게 말해서 거지 나사로가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네 꼴을 보니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난다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보냅니다. 사람은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타인보다 더 나은 자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과 부요함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초라한 모습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공을 복이라고 말하면서, 전도에 복을 첨가하는 것은 결국 중요한 것은 부요하게 사는 것임을 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귀한 것은 예수님이 거저 주신 긍휼이고 자비하심입니다. 믿음이고 용서입니다. 예수님이 거저 주신 이것을 존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자라면 초라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초라한 형편에서도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자들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로 보내시는 것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나타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것이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거저 주신 것이 우리를 천국 백성 되게 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제자들이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예수님께 보냄을 받았다면 신자는 부요한 것이 복 받은 것이고, 더 나아지고 발전한 것이 믿음의 역사로 인정하는 세상의 사고방식과 맞서는 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긍휼도 자비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예수보다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예수를 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보냄 받은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신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보냄받은 자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오늘날의 신자들이 천국 복음을 전하라고 보냄받은 제자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합니까?

 

3.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믿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큰 실수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천국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어떻게 다르며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6.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무엇이며 또 그에 따른 예수님의 권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까?

 

7. 제자들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신자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모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자들을 세상의 기대와는 다르게 초라하게 보내시는 까닭은 무엇이며 또 그것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에서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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