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월 29일 / 마태복음 65. (마 10:11-15) 제자들의 전도

by 관리자 posted Mar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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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들의 전도

본문 / 10:11-15

 

1. 마케팅에 물든 전도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부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여러 가지 효과적인 수단과 방법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배우기 위해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이냐?’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방법이 교회 부흥에 효과적이냐?’를 물으면서 오로지 교회 부흥이라는 고지를 향해서 그냥 열심히 헉헉대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부흥이라고 하는 고지는 정상이 없습니다. 정상이다 싶으면 어느새 더 높아져 있는 것이 부흥이라는 고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 부흥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는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필수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도는 십자가의 도를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백성을 찾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 부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기 백성을 찾기 위한 예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에서 전도는 단지 교회 부흥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효과적인 전도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도입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는 목적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전도에도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실제로 시중에는 전도마케팅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것이 진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많은 사람을 교회로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뜻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뜻이라는 그럴듯한 선한 말로 인간의 욕망을 포장해 버리는 것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전도에서 돈은 필수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거의 당락여부가 돈을 얼마나 썼느냐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전도의 성공 여부도 돈을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달렸다고 여길 정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회사의 마케팅 전략 가운데 고객 감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객이 감동할 만한 정도의 서비스를 함으로써 자기 회사의 고정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곧 회사의 성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고객이 외면한다면 그 회사는 존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작은 구멍가게 하나 운영을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바로 이런 마케팅 전략이 바탕이 된 전도 기법을 복음을 전한다는 명목 아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전도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서 교회를 찾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러한 전도도 앞서 말한 대로 복음 전파나 교회 부흥이라는 명목 안에서 정당화되고 오히려 선전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입니다. 복음은 외면한 채 철저하게 마케팅 화 되어 있는 전도입니다.

지난주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10:9-10)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의 전도는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돈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돈을 쓰는 전도를 비판하면 흔히 일단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들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들의 자유지만 우리는 전해야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과연 이러한 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전도와 일치되는 것일까, 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만 합니다.

 

2. 평안을 비는 자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전도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생각하는 전도와는 전혀 다르고, 흔히 말하는 교회 부흥에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생소한 전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전도에는 사람의 환심을 산다거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한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14절부터 보면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14-15)고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매정하게 들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방식의 전도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전도일 수 없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전도와 예수님의 전도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도의 의미, 전도의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생각하는 전도의 의미나 전도의 목적은 물론 복음 전파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중심에는 교회 부흥이 자리하고 있고 또 전도를 했다고 하는 자기만족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도에 힘을 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성경적이고 또 사명감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교회라는 것을 선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전도에는 그 어느 것 하나 담겨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부터도 보면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0:11-12)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제자들은 평안을 비는 자, 즉 평안을 전하는 자로 보냄을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한 평안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집이 어려운 일이 없이 평탄하고 화평한 가정이 되게 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평안이 그런 의미라면 결국 예수님은 가정의 복을 빌어주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 됩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0:13)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평안을 빌라는 것은 단순히 이 집에 평안이 있기를라는 인사말을 하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한 평안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는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는 분으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귀신 들리고, 병이 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참된 생명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인간이 참된 생명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인간에게는 참 평안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후손 됨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죽음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는 인간에게는 참된 평안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귀신 들렸다는 것도 결국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삶에 평안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예수님은 생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명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방식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4-6)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징계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평안은 생명이신 예수님 자신을 뜻합니다. 죄와 저주에 갇혀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영원한 심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에게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곧 평안입니다. 사망의 두려움에서 해방이 되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평안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이 권능을 받은 것은 바로 예수님의 그 평안을 받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평안을 선물로 받은 자로 보냄을 받은 것이고, 따라서 제자들이 전할 것도 예수님에게 받은 평안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알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실상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산다면 평안을 빌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의 평안은 오직 돈이다라는 식으로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안정을 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불필요한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그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예수님과 단절된 이방인의 관계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14절의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0:14)는 말씀인 것입니다.

 

3. 전도는 구원이 아니라 나누는 작업

우리는 전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게 하는 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런 전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아무리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평안을 전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기하지 말고 두 번 세 번 찾아가서 계속 전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제자들의 말을 듣지도 않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지역을 통과했을 때 그 지역을 벗어나면 발의 먼지를 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방인의 부정과 자신이 상관없음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할 때 결코 바람직한 전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고 인간관계가 악화가 되면 전도의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도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면서 먼저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힘을 쓰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전도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전에 먼저 이웃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웃과의 불화가 옳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 이웃의 환심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전도를 말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제자들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즉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 부흥을 위해 제자를 보낸 것이 아니고 교회 부흥을 목적으로 한 전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서 평안을 받는 자와 그 평안을 받지 않는 자로 나누고 계신다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평안을 비는 것은 예수님이 평안이 되는 세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돈을 평안의 근거로 삼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러한 전도에 돈이 필요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자라면 신자인 우리에게 평안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세상처럼 돈이 평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평안이 되신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자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렇게 살면 됩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이 나의 뜻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낙심하고 염려하고 슬퍼하는 세상 속에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적고 또 없다고 해도 예수님 때문에 평안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전도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서 복을 받고, 그 복을 평안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것도 역시 신자가 아닌 이방인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세상에 보냄 받은 신자는 구별의 도구로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의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0:13)는 말씀도 제자가 전한 평안을 받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이 평안이 되는 세계를 사는 사람과 예수님이 평안이 되는 세계를 거절한 사람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별을 통해서 무엇이 심판에 속한 모습인가를 증거하고자 하시는 것이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돈 없이 사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돈 없는 인생은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자에게 무서운 것은 돈 없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영원히 비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비참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신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날마다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것 이것이 신자의 삶이고 또 신자의 평안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안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주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전도이며 신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이 말씀하는 전도와 인간이 생각하는 전도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2. 성경에서 귀신 들리고, 병이 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3. 생명이신 예수님이 생명이 없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방식은 어떤 방식이라고 말씀합니까?

 

4.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받은 권능은 무엇이라 하며 그런 제자들이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제자들이 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며 왜 그런 것이라 합니까?

 

6. 예수님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며 또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는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7. 오늘날 우리는 전도의 효과를 위해 먼저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까?

 

8.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보낸 주님의 뜻은 무엇이며 또 결국 그것은 무엇을 보여 주시는 것이라 합니까?

 

9. 오늘 말씀에서 신자의 삶과 신자의 평안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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