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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의 지혜와 순결

본문 / 10:16-23

 

1. 전도는 택한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일

마태복음 10장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접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조금 당황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도에 대한 상식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식대로 한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아서라도 많은 돈을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물품을 구입하고 또 집집마다 구입한 물품들을 나눠주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을 영접도 아니하고 천국 복음의 말을 듣지도 않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도 말씀합니다. 이런 식의 태도는 사람들의 반감을 살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오게 하는 효과 있는 전도가 되지도 못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나오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전도는 오늘날 교회의 전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교회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교회를 위한 전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전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전도가 된다면 결국 교회를 키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전도로 전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전도를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에 관심을 둔 인간이 고안해 낸 인간의 전도일 뿐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8-39)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택하여 예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그 누구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나누었던 5절부터의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6)는 말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때문에 될수록 많은 사람을 교회로 나오게 해서 예수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고 전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소위 전도를 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그 일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형편과 어떤 상황에서도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2. 양을 이리 가운데로

먼저 지금까지 살펴본 1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이 예수님에게 보냄 받은 전도자로서의 사명과 그 사역의 정신과 관계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 본문의 내용은 전도자가 세상에서 받을 대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어떤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전도자로서의 바른길을 가도록 권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자신이 처한 육신의 현실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혹 중동 지역으로 가서 기독교를 전한다거나 불교 집안에 시집가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위의 말씀이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핍박이 없고 오히려 편안한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어졌다는 말씀은 사실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은, 보냄 받은 제자들은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회에 넘김을 받고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하며 예수님으로 인해서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는 일까지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는 말씀으로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사실 제자들이 받을 고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받으실 고난을 말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어지는 24절부터 보면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10:24-25)고 합니다. 여기 보면 보냄 받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것들은 모두 예수님이 당하실 일을 미리 예고하신 것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1:28)라고 하여 세상은 예수님을 원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곳으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이야말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 것과 같은 것으로 보시는 것이 예수님의 시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나 자신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신자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잘난 나로 존재하는 것에 몰두할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도 예수님이 복이 되어주고 성공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자 됨은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신자 됨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이끄시는 신자 됨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이 물음에 우리는 삶으로 답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부터 보면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10:17-18)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채찍질을 한다는 사람들은 회당의 지도자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인 힘과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보냄 받은 제자들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단절된 관계에 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을 의지하여 사는 길에 있지 않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은 사람들을 사귀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힘 있는 사람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보냄을 받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신자는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21절에 보면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0:21)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가족이란 이 땅에서 맺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관계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자식은 그런 아비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족관계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족관계까지도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신자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기는 어떤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또 그것들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에게 보냄 받은 신자라는 관계는 사람의 힘이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가족의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으로 인한 생명입니다.

 

3. 지혜롭고 순결하라

세상을 살기 위해서라면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힘 있는 사람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 또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관계도 생명의 길에는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그 누구도 의지할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합니까? 그것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는 말씀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제자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시는 것이라면 차라리 사자와 독수리처럼 강하고 용맹해져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래야 이리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신자는 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순결의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수록 우리가 원하는 믿음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가 자신의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을 우리가 원하는 모든 소망을 받아주시고 들어주시는 분으로 말하는 것은 모두 엉터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19절부터 보면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10:19-20)고 말씀합니다. 신자가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하게 되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로 인해 나빠질 수 있는 인간관계까지 계산을 하고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며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할 때에 지혜롭게 처신을 잘하고 분별을 하면서도 복음의 순결함을 지키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뱀은 창세기 3장에 보면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3:1 )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간교하다는 말이 사무엘상 23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삼상23:22 )라고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할 때에 사람들이 다윗을 평가하기를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뱀이 간교하다는 말이나 사무엘상의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단어가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단어이지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말할 때에는 간교하다고 하지만, 다윗을 말할 때는 지혜롭다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서 다윗이 심히 간교하더라고 표현하면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얼마나 간교한지 나중에 다 드러나기는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12:9 )고 하여 창세기의 뱀이라고 지칭되는 피조물이 용 곧 마귀 사단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 뱀의 특징이 천하를 꾀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옛 뱀 곧 마귀, , 사단으로 불리는 이 피조물이 무엇으로 사람과 천하를 꾀는 것입니까? 바로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뱀은 혀가 갈라진 짐승입니다. 한마디로 갈라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순결하게 인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갖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옛 뱀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가 간교한 것이기에 제자들은 그런 뱀의 지혜가 아닌 순결한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 순결한 지혜란 비둘기 같아야 합니다. 이것은 노아가 세상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을 때 까마귀와 달리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서 노아가 알고자 하는 것을 알려준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자는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을 말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순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세상에 보낸 신자를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신자는 자신을 위한 자기 말이 아니라 성령이 말씀하게 하신 것을 말하는 자로 존재하면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해야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비록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하게 본다고 해도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10:23)고 말씀합니다. 신자는 인자가 오리라는 약속 안에 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곧 신자가 지혜 있고 순결한 자로 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으로 인해서 매를 맞고 고난을 받는 그런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활의 주나 하늘의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세상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치고 아니하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세상에서의 신자의 핍박은 꼭 매를 맞는 것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 무시 받는 그것이 곧 핍박이고 신자가 당하는 괴로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는 지혜와 순결로 존재하면 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을 붙들고 인자가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살아가면 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날 우리가 하는 전도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까?

 

2.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뜻을 무엇이라고 또 그러기 위해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을 삼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마치 가족관계까지도 무너뜨리는 말씀을 하신 의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신자가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8. 예수님의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지혜와 순결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9. 오늘날 복음으로 인해 신자가 받는 핍박과 괴로움은 무엇이라고 합니?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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