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월 19일 / 마태복음 67. (마10:24-33) 제자로 산다는 것

by 관리자 posted Apr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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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로 산다는 것

본문 / 10:24-33

 

1. 현실감이 없는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신자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비장한 각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마치 전쟁 중에 목숨을 건 작전에 투입되어 머리털을 뽑거나 또는 손발톱을 깎아 유품으로 남기고 유서까지 쓰면서 죽음을 각오한 군인과 같은 그런 심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말씀한 신앙의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길은 비장한 각오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나 해당이 되는 것처럼 여길 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평화로운 지역에서 생활하는 신자에게는 별로 해당이 안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 생활에 충실하면 되고 착하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곧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는 말씀이 과연 현실감 있는 내용으로 다가올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당시 제자들이 몸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몸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천국 복음만을 전하는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가르치시고 당부하신 후에 보내봐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겠습니까?

말씀을 하시려면 차라리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신 뒤에 비로소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들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하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너무 시기상조의 말씀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믿음에 선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시는 길은 십자가의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 죽음의 길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자신들이 가는 길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보면서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본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9:34)며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를 받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2. 자신을 먼저 파악하라

이러한 모습은 우리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를 세상에 보냄 받은 자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보냄 받은 자의 신앙생활은 죽음이나 고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나와도 나의 재미를 위해서 나오는 것이 거의 전부이지 복음 때문에 나온다고 말하기도 사실 낯 뜨거울 정도입니다.

복음 때문에 나를 포기할 마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복음 그까짓 것은 언제든지 외면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생존이 중요하지 복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순순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님의 십자가로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말도 하고 있지만, 언제든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기고 고통이 오게 되면 기쁨과 감사의 말은 사라지고 대신 원망을 쏟아 놓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평생 교회 다녀주고 예수 믿어 줄 테니까 제발 내 인생만 편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죽음도 각오하고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이슬람 지역에 가서 선교할 테니까 베드로가 설교할 때 수천 명이 회개하는 그런 역사를 맛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먼저 파악을 해야만 합니다. 비록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이 신자라고는 말하지만, 우리는 애당초 보냄 받은 신자의 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오직 내 인생, 내 길에만 모든 마음을 집중을 한 채 살아가는 그런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자신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보냄 받은 신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나 각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 같은 자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한 의문을 먼저 이끌어 내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잘 훈련된 정예용사를 전쟁에 투입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형편없고 수준 낮은 사람들을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복음을 안고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돈 버느라고 정신 팔려있고, 예수보다는 세상을 보고 자식을 보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복음을 위한 정예용사가 되라는 뜻인 것입니까? 아무것도,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 자신이 있습니까?

 

3.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

오늘 본문에 보면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10:24-25)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보낸 자를 향한 예수님의 확고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자신이 가신 길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을 했다면 세상을 토대로 하여 세워놓은 자기 인생의 포부와 계획은 모두 접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인생의 포부와 계획은 복음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다만 세상을 토대로 한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말씀합니다.

제자는 선생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선생의 사람으로 여김 받습니다. 제자가 선생보다 높아서 선생이 제자의 사람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바알세불이라는 비방을 받습니다. 따라서 선생을 향한 비방은 선생의 사람인 제자들이 받을 몫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가신 길 그리고 그 길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일들은 보냄 받은 제자들이 당해야 할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붙들어 가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시작이 귀신의 왕, 즉 바알세불이라는 비방과 미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신자가 받아야 할 고난과 핍박을 모두 짊어지고 죽으신 것처럼 착각합니다. 즉 고난과 핍박은 예수님이 홀로 짊어지셨고, 신자는 세상의 편한 길로 인도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신자를 예수님이 가신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여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신자가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0:26)고 하여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자리에 앉아서 그들의 규례로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자로 정죄하여 핍박하고 죽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님과 동일한 대접을 받으면서 이단의 괴수를 따르는 자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받게 되겠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앞에서 모든 감추었던 것들이 드러나는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신자로 산다는 것

그래서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10:27)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는 세상에서 드러나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가가 드러남으로써 누가 멸망의 자식인가가 증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생명의 복음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길로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복음의 말에 대한 결과를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대해 반대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보다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로 사는 것은 예수님이 내게 알리시고 알게 하신 그 복된 소식을 주저 없이 내어놓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를 계산을 하면서 복음을 내어놓는 것을 주저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자로 사는 것보다는 그냥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사는 것을 원합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신자로 사는 것은 아예 포기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 육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참새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으로 되어진 일이고,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의 하찮은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과 염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인생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이미 예수님께 붙들려 있는 상태이고,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우리를 이끌어 가고자 하시는 길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자기 인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복음조차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신자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보장받기 위해 예수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의 길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종교의 길일뿐이며, 그 길에는 하늘의 생명은 없습니다. 다만 기독교라는 종교의 세계에 머물다가 지옥의 심판을 받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복, 그런 것이 없는 생명의 길은 분명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자를 그 길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 붙들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으신다면 우리가 원하는 인생은 내려놓으시고 예수님이 이끌어 가시는 인생에 시선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마음이 속상하십니까?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니고 복음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부인하십시오. 하지만 예수님은 택한 자기 백성을 붙든 손을 놓지 않으시고 기어코 십자가의 길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드러나게 하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을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신자는 절대로 홀로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면서 한발 한발 가게 하십니다. 복음은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과 동일하게 비방을 받게도 하고 욕을 받게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세상이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도 그런 반응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가 믿을 것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자에게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를 두려움이 없는 담대한 자가 되게 해서 이 세상에 보냄 받은 신자로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려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주를 부르며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복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신자인 우리가 왜 먼저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까?

 

4.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을 주님이 가신 길로 데려가시겠다고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파악을 했다면 제자 된 우리에게서 어떤 반응이 드러납니까?

 

5. 오늘 본문에 제자가 스승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심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신자가 세상에서 드러나야 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또 그런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가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세상의 신자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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