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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본문 / 고전 10: 1-13

 

1.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가 우리의 평생을 올림픽에 곧 나갈 선수처럼 절제하며 훈련하여도 다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이 받은 몇 가지 은사를 가지고 모두 다 받은 것처럼, 신앙에 있어서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지적하기 위해 본보기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본보기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까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음행과 원망과 불신과 교만함의 본보기를 말씀하며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본보기 앞에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고 점검되어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고 합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하여 이중 부정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강한 긍정으로서 꼭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어떠하였는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기 위해 시작부터도 엄청난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에서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생략하면서 이미 출애굽 이후의 기적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홍해 건너고,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한 것으로 알지만 성경에서는 홍해 바다를 건너기 전에 이미 구름기둥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애굽 군대의 추격을 구름과 흑암이 밤새도록 격리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진영은 밤이 낮처럼 밝았습니다. 그동안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건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구름과 바다 속을 지난 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세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에게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신 것입니다. 다 함께 신령한 식물, 즉 하늘로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반석에서 신령한 음료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출애굽을 한 사람은 모두 다 그 기적을 맛보고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60만 명의 장정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단 두 명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사람들 중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2. 자기 구원중심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어떻게 하시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천국에 들여보내시려고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놀라운 내용입니다. 지난주에 바울도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2장에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모든 사람이란, 새 언약 안에서 택함 받은 사람들을 말씀합니다. 즉 모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도 유대인들이 들으면 기절할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아는 구원은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할례를 받아야 하며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너무나 싫은 나머지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서 심판하실 때 구원 받은 자의 수도 오직 8명뿐입니다. 가족 수로는 한 가족에 불과합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그리고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다’고 하셨지만 그들은 도무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엘리야 때에 3년 6개월의 가뭄 속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시돈 지역의 사렙다 과부 한 사람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씀과 엘리사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아람 군대의 나아만 한 사람만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언덕에서 밀어뜨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열심히 전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원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고 하는 사람에게도 오늘 이 말씀은 기분 나쁜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전도를 할 때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다수결로 가결하는 곳이 아닙니다. 민심이나 여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의 구원중심으로 생각하면 이런 말씀은 단 한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담 되는 말씀은 넘어가고, 좋은 것만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고, 고린도 교인들이고,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광야에서 다 엎드려지게 하였다고 말씀드리면 당장 마음에 생각하기를 그러면 광야에서 죽은 사람은 천국가지 못하고 다 지옥 간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싫어하시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다 멸망되었다고 그들이 지옥 간 것은 아니라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인 모세와 아론도 광야에서 죽은 것으로 보아서는 그들도 천국에 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도 구원은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기 구원중심입니다. 그렇게 자기 구원중심으로 가게 되면 오늘 본문 말씀도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본보기와 경계로 기록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게 되면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렇게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7-10) 여기 말씀처럼 우상숭배하지 말자. 간음하지 말자. 주를 시험하지 말자. 원망하지 말자고 하는 결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고 하면 모세의 율법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본보기가 되고 경계가 되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3. 본보기와 경계

세상에서 본보기와 경계는 과거의 역사를 보고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고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과 국가도 과거의 역사를 보고서 고친 사람도 없고 국가가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자기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 역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욕심을 버리는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다 망해도 우리나라는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종교적인 욕구로 바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다른 교회는 구원받지 못해도, 나와 우리 교회는 구원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간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있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1-4)고 합니다.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이 자기들을 구원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신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떤 형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이 우상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고, 왜 하나님을 찾습니까?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세상의 복이 되든지, 구원이 되든지, 사후의 천국이 되든지, 상급이 되든지 간에 모두가 우상인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기준은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자기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16:22)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자가 아니라, 내 자신이 바로 우상숭배자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만 두고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간음에 대해서도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여인에 이끌려 그들의 신들을 제사하는 축제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뒤는 먹고 마시고 뛰어놉니다. 앞에서 살펴 본 금송아지를 만들고서도 거기서 한 짓이 음행입니다. 모든 우상숭배는 거의 다 음행과 연결이 됩니다. 우상숭배가 신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라면, 음행이란 자기의 몸의 쾌락을 위하기에 우상숭배와 음행은 결국 다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란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로 모였다고 하면서 자기 몸만 챙기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와 음행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상숭배와 음행의 본보기를 보면 그 안에 다른 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얼굴이 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주를 시험하고 원망한 것은 광야에서 늘 하든 일이었습니다. 길이 좋지 않다고, 만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기가 없다고, 늘 원망한 것입니다. 그 원망과 불평은 언제나 애굽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먹던 고기, 마늘 파 부추 수박 외 등이 맛있었다고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는 것이 참으로 생명의 길인데 그 길이 늘 싫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원망과 불평이 어디에 있습니까? 애굽을 그리워하고, 애굽식으로 살려고 하니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실력으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택하신 자에게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 신명기 8장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여기 보면 우리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우리를 낮추시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우리로 주리게도 하시고,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하신 것이라 합니다. 이 길이 바로 우리가 피할 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감사하게 만드시고 그만을 사랑하게 만드시는 것이 바로 우리의 피할 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던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실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서 2장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는 말씀처럼 ‘자기를 비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비우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 방법을 알아도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 능력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비우기 위해 지금도 일하십니다. 여러 가지 나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동원하여 이 낮추시고 비우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만들어지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를 통해 우리 모습을 깨달아 더욱 더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런 일하심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낮아지고 비워져 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는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권면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하나님과 오늘 본문에서 보는 하나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광야에서 죽은 자들의 구원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자기구원중심으로 성경을 보게 될 때 잘못 이해하게 되는 오늘 본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5. 우상숭배와 음행과 원망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바른 이해는 무엇입니까?

6. 모든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만나는 우리의 피할 길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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