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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본문 / 고후 6:14- 7: 1

 

 

1. 인간의 의

지난주의 말씀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마음을 넓히라고 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사도가 바른 복음을 전하고 떠난 후에 외모를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바울사도처럼 늘 환난과 핍박과 매 맞음을 당하고 만물의 찌끼 같은 대우를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며 바울을 향하여 불의를 행하고 속이고 해롭게 하는 자라고 하는 말에 고린도교회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전한 복음조차 곡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린도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의 말에 흔들리는 것은, 그들의 속이 거짓 사도들의 전하는 가짜 복음에 매력을 느낀 까닭입니다. 예수 잘 믿어 천국도 가고 세상에서 복도 받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욕망들이 모두에게 들어 있는 것이 범죄 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 욕망이라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침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넓게 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한마디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 멍에를 함께 매지 말아야 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불신자와 결혼이나 사업을 함께 하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바로 위의 말씀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의 행위의 결국이 고린도 교인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사로잡고 자고하다고 뺨을 칠지라도 용납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하면서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 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이란 성령이 임한 성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말씀의 요점은 결코 이 둘은 하나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반드시 분리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분리가 일어나 그들과 구분되어진 것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하는 분들 중에는 다니시던 교회에서 무엇이 아닌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건 아니라고 여겨 많은 갈등을 하다가 저희 교회를 찾아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함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나누며 우리 교회가 뭔가 큰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자체가 얼마나 자기 의가 가득한 것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얻은 거룩함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일에 대해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일을 거들어 드린 것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애굽에서 구별하여 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인 그 백성이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거저 자신의 신세나 고쳤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출애굽기 5장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합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나타나셨기에 삼일 길을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여호와가 누구관대 하면서 종들이 게을러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고 하면서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여전한 수대로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생이 더 심하여진 것입니다. 그때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 앞으로 지나갈 때에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출애굽기 5장입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5:21) 모세와 아론이 나타남으로 더 고생하게 되었으니 여호와께 모세와 아론을 일러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왔다면 고생을 시키지 말아야지 더 고생을 시키니 모세와 아론을 벌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의 간구는 이렇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출5:22-23)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전에 가라고 하실 때에 제가 못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 만들기 위하여 일하시고 계시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신 그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출애굽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 재앙이 쏟아지고 마지막 열 번째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서 출애굽을 합니다. 그런데 홍해 바다 앞에서 또 다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망할 때에 모세가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십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건넜지만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는 수장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한 것도 잠깐입니다. 3일 만에 물이 없다고 광야에서는 다시 원망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일부러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기 위한 것이고, 사람의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오늘 본문에 바울사도가 인용한 말씀만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26장 그리고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두루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행하시는 것은,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먼저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6:17-18) 이 말씀도 구약의 이사야서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서 스스로 부정한 죄에서 분리하여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잠시 잠간 개혁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곧 우상과 연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분리되어 나오지를 못하였습니다. 다시 16절을 보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고 합니다. 이 말씀도 예레미야 31장 1절에서 나옵니다. 예레미야 31장은 새 언약을 말씀하고 있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 만들기의 완성은 결국 새 언약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백성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8절에서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성취력이 있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되리라고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직설법으로 말씀하시든 명령문으로 말씀하시든 모든 말씀은 다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하신 바를 친히 이루어내시는 방식으로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손 댈 수 없는 것이기에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분리시키시는 것인데 아무도 스스로 분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에 딱 달라붙어서 그저 고생이나 면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떨어져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8절 끝의 말씀을 보면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 하십니다.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기에 그렇게 고집스러운 죄인들을 결국 분리시키셔서 자기 백성을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을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심과 피 흘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의 자녀가 된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스스로를 죄와 사망에서 분리시켜 나왔다고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분리시키고, 그리스도 안에 넣어두신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고 합니다. 그래서 거룩함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 두루마기를 빠는 자

그런데 이 거룩함을 거부하고 스스로 거룩하여 지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였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나라가 약하고 남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율법을 보니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머리가 되지 못하고 꼬리가 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철저하게 세상과 분리시키며 율법을 지킨 것입니다.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세칙과 부칙까지 만들어가며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분리시켜서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을 거룩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율법을 알고서도 지키지 못하는 유대인으로서 세리와 창기와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거룩하지 못한 자 정도가 아니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보고서고 율법을 어기는 자라고 세리와 창기와 어울리면서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보고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너희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기는 자들이었지만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님께서 그 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는 나올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분리시켜 내셔서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와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의분을 가지고 스스로 개혁하여 나왔습니까? 만약 전자라면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의 용서 앞에 자신의 의를 부인하면서 주님이 주신 그 의를 인하여 찬송할 뿐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신종 바리새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나는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존교회가 잘못되었는데도 잘못 된 것도 모르는데 나는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욕을 먹을까봐 또는 그렇게 교회를 나가면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나오지도 못하는데 나는 복음을 위하여 용감하게 그 교회를 박차고 나왔다고 자랑한다면 또 다른 바리새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 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의 다른 교회 사람들은 복음도 모르지만 우리는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하늘을 우러러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입은 사람은 이제 그 거룩함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단번에 주어진 거룩임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라는 새 언약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거룩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거룩하게 한 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란 용서받은 세리와 창기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거룩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계22:14) 라고 합니다. 이 두루마기는 주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세마포 옷입니다. 그 거룩하게 하신 옷에 무엇으로 더렵혀져 있는 것입니까? 바로 자기 의로 더럽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렇게 자기 의로 더럽혀진 것을 빠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함께 나눈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이 되어 나의 의로 더럽혀진 주님이 주신 의의 세마포인 두루마기를 빨아 깨끗하고 거룩하게 세울 수 있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떤 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으려 했던 것과 그에 따른 반응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불신앙의 이스라엘 가운데 두루 행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새 언약대로 이루시는 과정 가운데 부각되어 지는 두 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5. 거룩함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바리새인들의 거룩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룩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7. 참 거룩을 얻은 자들은 무엇을 알며 또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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