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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앞에서의 우리의 자랑

본문 /  고후11:16-27


1. 세상 자랑과 배설물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문명이 더욱 더 기계화되고, 과학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취업난이 모든 나라들의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심지어는 박사라는 학위를 가지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느 회사에서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고 구인광고를 냈는데 그곳에 취업하겠다고 이력서를 들고 찾아 온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가 아는 인류대학교 졸업자는 물론 심지어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히 요즘의 취업이란 고시를 패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기 위하여서는 자격증, 외모, 추천서 등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추고도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서 자신의 이력서에다 자신의 약함과 연약함을 적어놓는다면 과연 누가 그런 사람을 채용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고는 그런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자랑거리는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가득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바리새인이며, 엄격한 율법의 교육을 받아서 율법에 대한 열심과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는 흠이 없을 정도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그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바울의 그 자랑거리들이 도리어 예수님을 핍박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임을 알았기에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일체의 자랑거리들은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바울의 그 자랑거리로는 구원을 만들지 못합니다. 바울의 그 자랑거리로는 믿음을 만들지 못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그 자랑거리들을 의지하며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함을 자랑합니다. 자신이 약함을 알기에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자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나 능력을 가지고 비교하고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에 다시 그런 배설물로 여긴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자랑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육체를 따라 외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바울사도를 향하여서는 육체를 따라 행하고 어리석고 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회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정말 약한 모습으로 증거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증거 하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고 말씀합니다. 누군가 교회 일을 하거나 바울처럼 전도를 많이 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전도해서 열매가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은 당연히 바울사도를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게 될까봐서, 바울 자신의 말과 지혜로 전도되었다고 할까봐서 두렵고 떨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가려지고 자신이 드러날까 봐, 예수님보다는 자신에게 주목할까봐 두렵고 떠는 자가 진짜 주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로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내 한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하고 또 내가 한 일을 그들이 모를까봐 두렵고 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와서는 외모를 자랑하였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란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도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11:20)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희생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생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런 바울은 배척하고 거짓 선생들은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울사도 식으로 자신의 약함이나 자랑하고 연약하고 두렵고 떠는 모습으로 나오면 도리어 깔보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연약함으로 증거 하니 능력도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이런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힘없고 약하면 밟아버리고, 힘 있는 자에게는 굽실거리는 곳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강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차의 크기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큰 교회 목회자는 그래도 대접받지만 작은 교회나 시골교회 목회자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교회의 크기가 목회자의 크기와 영력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과 교회가 구별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불신자들이 볼 때는 교회는 하나의 사업처럼 생각해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그런 세상의 기준과 시각과는 달라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고린도 성도들과 같은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일 뿐입니다.


2. 바울의 자랑

그러나 바울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바울의 삶은 세상과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외모를 자랑하는 이유는,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울사도가 증거 하는 복음조차 틀렸다고 말하고 또 고린도 성도들이 그렇게 여기기에 자신의 어리석은 자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고후11:16-17)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만일 어리석다고 하여도 조금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말한다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여기서 자신이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비록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용납하는 어리석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른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자신이 배설물로 여겨 버린 어리석은 자랑을 하기는 하지만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말없이 끌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죽기까지 복음을 증거 하였다고 하여도 주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을 때에 많이 섭섭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이기에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행한 의롭다고 여기거나 착하다고 여기는 것은 은근히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실수하고 잘못한 것은 남에게 전가시키거나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자랑을 하고 있는지 들통이 나자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바울이 자신이 배설물로 여겨 버린 어리석은 것들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출신배경입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고후11:22-23) 히브리인이라는 것은 어디에 자신의 가문이 기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질 때에 유다지파와 함께한 유일한 지파가 베냐민 지파입니다. 나머지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따라 갔지만 베냐민 지파만은 하나님이 그 정통성을 인정하는 유다지파와 함께 한 것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육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구원이 유대인으로 나오기에 자신의 출신과 혈통과 가문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누구보다도 더 정통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입을 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누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수고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바울사도는 자신의 수고가 어떤 사도들보다 많지만 그러나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겸손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이기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수고를 다 하였어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임을, 아니 죄인 중의 괴수임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이 바울사도인 것입니다.


3. 입을 닫음

바울이 이렇게 자신이 배설물로 여긴 자신의 배경과 수고를 나열하면서 자랑하는 것은 바로 어리석은 자랑거리들을 늘어놓는 자들의 입을 막고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의 말씀처럼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도구로 바울사도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세상의 자랑거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랑하는 재미로 사는데 그것을 무너뜨려버리니 갑자기 무력감이 몰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아가는 새로운 기쁨과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참다운 기쁨을 알아가기보다는 어차피 무엇을 해도 죄인데 그냥 대충 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 자랑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재미조차 없어진 때에 거짓 선생들이 와서 외모를 자랑하는 재미를 더하여 주니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용납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듣고서 무력감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정말 복음을 듣고 기뻐한 사람이라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이기에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를 위하여 나의 기쁨과 만족과 나의 자랑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면 왜 무력감에 빠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진정으로 바르게 들었다면 그 복음을 들은 기쁨이 얼마나 크고 감격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봉사를 해도 더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력감에 빠져있든지 아니면 나는 그래도 무언가 잘 한다고 생각하든지 간에 우리가 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제 바울사도가 자신의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하는 그리스도 앞에서 수고한 것을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런 어리석은 자랑 앞에서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것인지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을 일겠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이 많은 수고들은 사도행전에서 절반도 알려지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 수고 앞에 우리는 무슨 자랑을 하겠습니까? 바울이 수고한 내용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우리와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까? 우리가 과연 예수님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까? 우리가 과연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아 보았습니까? 아니면 위협을 당하여 보았습니까? 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앞에서조차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무슨 자랑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섭섭함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렇게 수고한 바울사도 앞에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이런 수고조차 그리스도 앞에서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저 입을 닫고 회개해야만 하는 존재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이런 바울의 고백과 신앙 앞에 우리 생각과 마음 가운데 가득한 어리석은 자랑거리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뿐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한 일을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 보다는 혹 주를 바라보지 않고 나 자신을 바라볼까 두려워 할 수 있는 신앙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은밀히 보시는 다시 오실 주께서 다 갚아주시리라 믿으며 오늘도 또 앞으로의 남은 날들도 우리 주 앞에 그런 신앙과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바울이 자신의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도리어 약함을 자랑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거할 때에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날 우리가 고린도 성도들처럼 어리석은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4.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는 세상의 자랑을 오늘 다시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바울의 자랑의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복음을 들은 고린도 성도들이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우리가 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앞에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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