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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신앙      

본문 /  요17: 7- 8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들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나누신 가장 깊은 내용들이며 동시에 제자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 제자들 앞에서 행하셔서 오늘까지 남기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역을 완성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이 복음이 이방에게도 전파되어야 하는데 그 사명을 감당할 자들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들을 정리시키는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향한 핵심적인 신앙의 강조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앙의 핵심

제자들을 향한 신앙 핵심의 첫 번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신적 기원의 신앙을 그 기초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신앙은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 윤리나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신앙의 핵심으로 붙잡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강조점은, 이 일을 이루시고 완성시키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 하반절에 나오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로 믿었사옵니다"라는 말씀처럼 일을 시작하고 성취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로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핵심은 두 가지로서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것과 그 아버지께서 우리가 믿는 신앙의 근거자이시고 창시자이시고 주권자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 모든 일을 진행시키시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랜 신앙생활로 제법 깊은 경지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에도 이 두 가지 문제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죄 문제만 해도 죄라는 것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착한일 나쁜 일로 나눠지지만, 하나님을 근거로 정의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모든 것이 죄이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죄란, 하나님 편을 들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모든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없이 홀로 하는 모든 일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란, 그가 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죄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무엇을 행하고 저지르는 것으로 증명하기보다 훨씬 근원적인 의미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한 것을 묘사할 때에 도덕성과 윤리성을 잃었다든가, 착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롯이 두 딸과 또는 유다는 자기 며느리와 관계를 가지는 내용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라는 인간은 하나님을 위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며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는 무지한 벌레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같은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안에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기적인 존재들이기에 우리는 자신이 죄인일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하며 자기올무에 빠져 스스로 속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선을 묻기 전에 하나님을 알며 또 그 하나님께서 천지와 나를 만드셨음을 아는가를 묻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많은 시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 또 쉽게 믿으려 하여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떤 계획과 어떤 간섭을 하고 계시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시험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결단코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향한 뜻과 계획들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실 나머지 일이 대해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자들을 보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맡기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그 일들을 세상에 나가서 전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고 큰 일 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나같이 뛰어나지도, 훌륭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며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저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다 믿었고 내가 저들에게 알게 한 말씀이 아버지가 내게 주신 말씀인 줄을 이제 알고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줄을 믿었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보고도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며 갔다가 거기서 주님을 다시 만나 깨어지고 만 것처럼 제자들은 세상의 호구지책이나 활동을 위해 준비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은 세상에서 어떤 능력이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저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알았고,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라는 두 가지를 가지고 전 세계와 역사를 새롭게 뒤집어엎는 근거로 삼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놀라운 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양적이지 않고 생명적입니다. 얼마나 많은 양의 시간과 예배와 헌금을 드렸는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살아있고 신령과 진정이 배어있어 생명이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뭔가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어 그것을 때우기 위해 마치 우리 신앙을 대차 대조표를 만들어 그것에 맞춰 운영하는 것은 아닌가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2. 생명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이란 결코 그렇게 주고받고, 오고 가는 거래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간절한 중심과 정성이 들어가며 삶 전체로 드려지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귀신 들린 자녀를 데려 왔지만 제자들은 쫓지 못하고 예수님은 쫓아내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고 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14-20) 여기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다는 말씀을 하시며 겨자씨 비유를 말합니다. 아주 작은 소량의 예를 위해 겨자씨 비유를 든 것인데 그것이 서량이지만 생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영생이고 영생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최고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작은 씨와 같은 소량이라도 생명이 있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커도 생명이 없는 돌과 같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돌을 심고 거기다 아무리 많은 영양분과 물을 주어도 생명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생명을 제자들에게 심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 생명만 심어 놓으면 마침내 크기 때문입니다. 싹이 나고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법입니다. 이 생명이 곧 영생이요 믿음입니다. 이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 생명이 완성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심기 위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심었으며 마침내 우리에게도 그 생명을 심으셨습니다. 생명은 아무리 딱딱한 땅도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에게 심겨진 생명은 거칠고 험한 세상 속에서도 자라며 열매 맺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칙은 사망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씨는 사장되지 않고 언제나 이깁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그런 우리가 이제부터 싸워야 할 신앙의 싸움이 무엇인지가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찐대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0-15)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놀라운 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 복을 받을 때에는 이 복을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을 갖고 있지 않을 때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복을 자기가 훔쳐 받아내고는 형이 죽이려 하자 도망가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꾸짖어야 마땅한 때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잘못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시며 붙잡아 놓고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하실 것이며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일을 해내시고야 말겠다는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잘못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야 말 것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은 과연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압니다. 우리의 무지와 완악함과 미련함과 실패와 절망마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랑과 목적하신 것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자책감과 절망감에 흔들릴 때도 많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계획에서 취소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삼년을 함께 하면서도 실수와 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주님께서는 꼭 한 가지만은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주님을 보내셨으며, 이제 어떤 시험과 절망에 빠진다 해도 우리를 반드시 꺼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놓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들도 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마다 잘못한 것이 생각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잘못 한 것들이 많아 주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나를 용납하시고, 이런 나를 위해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셨다는 말씀을 근거로 이렇게 다시 섭니다. 그 말씀이 없다면 저는 설 근거가 없는 자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아니고는 기독교 신앙마저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치장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신앙이 얼마나 자기의 의를 확인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증명하려는 방향으로 나가려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 우스워 보이고, 지적할 것이 있어 보이거든 우리는 아직도 신앙을 제대로 모르는 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성도의 견인

봄에 싹이 나는 나무들 중 제일 늦게 싹이 나는 나무가 대추나무랍니다. 거의 유월이 가까워야 싹이 나기에 잘 모르면 나무가 죽은 줄로 오해하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열매를 맺는 것도 역시 대추나무랍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등은 대추나무보다 먼저 싹이 나고 꽃도 피지만 그리고는 끝입니다. 나중에 개나리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입니다. 신앙도 이렇게 꽃부터 확 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보면 우스운 것입니다. 저 나무는 왜 꽃은 고사하고 싹도 안 나나 하지만 문제는 생명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생명 외에는 우리를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신앙에 있어 생명 외의 것은 모두가 자기를 치장하는 데에 사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장으로 남을 심판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남을 공격하거나 심판할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을 이용해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며 우월감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사실 생명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거의 넘어지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하도 넘어져서 좌절과 절망하는 오합지졸과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이 같은 우리를 보장하시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영원히 넘어뜨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는 말씀으로 이 일에 대해 우리에게 큰 힘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는 전부가 과거형으로 쓰여 졌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이미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입니다. 이것을 예언적 과거라 하여 하나님의 작정을 아무도 취소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1-32)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그 계획들을 하나라도 보류하시거나 취소하신 적이 없이 다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열정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는 일까지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최고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하나님이 사랑해 주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작하셨고 이제 남은 일은 시작하신 일에 비하면 쉬운 것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취소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최고의 근거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5-19)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을 이미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고 합니다. 이런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시와 지혜의 정신을 가져 하나님 알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깊이와 높이를 더 풍성하게 알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향할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자기를 증명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 안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모르니까 우리들의 신앙이 영적으로 매말라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저 엄청난 것들이 우리의 소유며, 소망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더 많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실감이 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그래서 보이고 들리며 느껴진다면 우리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신앙의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세상의 유혹 가운데서 만나는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시험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이 겨자씨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알리시려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4.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최고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가 믿는 자임에도 지향해야 할 삶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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