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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본문 / 7: 1- 8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7:1-8)

 

1. 종교성과 진리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구축되어 있는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신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도 우리의 종교적 본성으로 구축되어 있는 종교적인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상식과 지식에 맞는 예수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라고 주장하게 될 뿐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참된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아주 생소한 내용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오히려 참된 예수를 예수가 아닌 것으로 거부하고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인간의 상식과 지식을 무너뜨리면서 과연 세상에서 볼 수 없고 하늘에 속한 참된 것이 무엇이며 또 인간의 상식과 지식으로 만날 수 없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세상 속에서 항상 우리에게 생소하고 낯선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늘에 속한 진리를 알았다면 그것은 자기 상식과 지식이 무너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러한 내용인 것입니다.

 

2. 사람의 계명과 전통 그리고 믿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에 몇몇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습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항의를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에게 있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먹는다는 것은 거룩을 지키기 위한 신앙이었고 전통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눈에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부정해지는 것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전통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7:5)라고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항의에 대해 오늘 본문 6절부터 보면 예수님은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7:6-9)고 답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크냐 아니면 사람의 계명과 전통이 크냐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무너져야만 할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 반대로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크신 계명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는 교회에서 흘러 내려오는 전통을 마치 하늘에 속한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지키는 것이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나 수요일 예배 그리고 여러 가지 헌금이나 직분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배 시간을 정해주신 적이 없고, 헌금의 종류 또한 제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러한 것들은 교회의 형편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내려온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전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는 마치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척도와 기준인양 여기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을 신앙이 좋은 것으로 판단한다거나, 헌금을 잘하는 것 또한 좋은 신앙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좋으니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또 헌금에도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듣기에도 그럴듯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우리의 종교적인 상식의 한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성의 상식은 열심은 곧 신앙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사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대한 열망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않고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심은 있습니다. 또한 헌금도 그렇게 믿음을 따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믿음에 의한 것이라면 자신이 행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척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4-27)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의 척도는 반석이냐 아니면 모래냐 하는 것으로 분별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석 위에 낮은 건물을 지은 사람보다는 높은 건물을 지은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어떤 일이든 그것이 반석이 기초가 되어 되어진 일이라면 신앙이라고 말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반석 위의 크기로 신앙의 척도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자체가 바로 반석 위에 서 있지 못한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차원에서 어떤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신앙을 구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크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외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생각할 때는 어떠합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먹는 것이 정결한 것이고 거룩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왜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 즉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어야 정결한 것이고 거룩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계명과 전통에서 우리가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과 전통이 바리새인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손을 씻고 먹어야 거룩하다는 계명과 전통이 없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계명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이 모습이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들과는 다르지만 그러한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새벽기도입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하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새벽기도라는 전통이 없는 유대인들에게는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예배당을 찾는 것을 신앙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들이 정한 시간에 기도하면 될 뿐이고 또 그렇게 정한 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전통대로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들도 신앙이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계명과 전통이 다를 뿐이지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중요시하고 신앙화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러한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 것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엇이고 또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지킨다는 것을 그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또한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 그리고 구역예배도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다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그런 내용이 없으니 하나님의 계명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성경에 없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킨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에는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다른 점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보게 하시고 내가 곧 멸망의 자식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이 어떠한가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그 전통을 잘 지키고 실천하는 자신을 하나님의 계명처럼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하고 신앙이 있는 자로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혀 다른 바라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의 의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오직 하늘의 의를 세우기 위해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인 반면에,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인간의 의를 굳게 세우며 신앙이 있는 나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은 나는 죄인입니다는 고백을 하게 하지만,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나는 신앙이 좋다고 하는 교만으로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또 의지하지도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계명과 전통은 다 무너뜨리고 없애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하나님을 믿는 방식으로 삼고 그리고 그 방식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새벽기도와 같은 전통대로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어떤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방식과 척도로 삼는다면 그것이 바로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방식은 버리고 대신 사람의 방식을 취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의 거룩함과 의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시고 대신 하늘에서 한 의를 보내셔서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를 우리의 의로 여겨주시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방식을 싫어합니다. 우리들은 사람의 계명과 전통 속에서 자신도 신앙이 있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도 있고 그래서 자신과 같은 열심이 없는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 은혜와 복도 자신이 은혜 받을만하고 또 복도 받을만해서 받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구원하십니다.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열심히 한 사람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하사 같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되어서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상식에 맞는 구원 방식을 만들어서 구원은 받지만 열심에 따른 상급은 다르다고 하는 사람의 구원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계명과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크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 아래서는 뭘 해도 죄인이라는 결론만이 남습니다. 그러한 결론 앞에서는 힘들게 일한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방식 안에서는 열심히 한 것만큼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재미와 보람이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복도 받는다고 하니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좋은 방식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미없는 하나님의 방식보다는 재밌는 사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의 계명과 전통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이라고 고집하며 스스로를 마치 신앙 좋은 사람처럼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고 인간의 방법을 고집하는 목이 곧은 인간의 실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람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에 순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무엇을 해도 나를 의로운 자로 만들 수 있는 의의 행위는 없습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행함만이 의로울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사람의 것은 다 무너지고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십자가로만 감사하는 그 사람이 바로 신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로 말미암은 이러한 신앙과 감사가 넘치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간이 가진 종교성은 어떤 일을 하며 또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일을 합니까?

2.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합니까?

3. 오늘날 우리들이 가진 전통은 무엇이며 또 그것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4. 마태복음에서 말씀하는 신앙의 척도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척도는 무엇이 다릅니까?

5.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어야 정결한 것이고 거룩한 믿음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에는 동일한 것은 무엇이며 또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7.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지적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의 구원 방식과 사람의 구원 방식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9.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10. 하나님이 앞에 목이 곧은 인간이 만든 대표적 인간의 구원 방식은 무엇입니까?

11.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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