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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바울의 자랑

본문 / 15:14-21

 

 

 1. 헛된 인생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연월일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날의 좋지 않았던 것들은 털어버리고 좋은 것만 남겨서 새해를 그리고 새로운 달을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고, 날짜가 바뀌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애를 쓰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옛날에도 있어왔던 일들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애를 써와도 인간이 행한 일들이란 헛되고 헛되며 헛된 것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헛되지 아니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무너지고 불에 타고 흔적 없이 사라져도 남겨지는 것들이 헛되지 아니한 일입니다. 그럼 그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만이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언약하신 것들을 이루어내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헛된 것들뿐이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15:17)라고 하여 바울사도가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과연 무엇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행한 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랑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인간의 자랑에 대해서는 모두 다 죄악임을 선포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하면서부터 인간은 자기를 치장하고 자랑하는 일에 사로 잡혀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하여도 자기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12장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보면 지나가는 것과 영원한 것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 그래서 헛된 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인간 한 평생의 일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그 죄안에 다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지금까지 이 정욕에서 참으로 자유 한 자가 있습니까? 자기를 죽어 마땅한 자로 시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자랑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사도는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 자랑거리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바울의 자랑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15:14-15)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로마교회는 이미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선함이 가득하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미 로마서 1장에서도 보면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15)고 하여 바울 사도는 로마에서 복음을 들음으로 예수 믿는 로마 교회에 다시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 것처럼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하게 대강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왜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한 것입니까? 그 당시 로마교회는 복음을 받고서 여러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면 당하지 아니할 일들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인한 핍박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위로할 수가 있겠습니까? 복음으로 인하여 집안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고생했으니 이제 곧 세상에서 높아질 것이라고 성공할 것이라고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시 복음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최고의 기쁨이요 소망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들을 때는 알겠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을 들은 우리들이 사는 이곳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고 말하고 사는 모든 환경이 적자생존의 세계이지 은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모이기를 힘써야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날마다 모인 것은 교회성장이나 헌금 많이 거두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날마다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모여야 하는 것은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모이지 아니하고 잘 살아가는 분들은 믿음이 엄청 좋거나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는데도 느끼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섰다고 자랑하지 말고 주의 말씀 앞에 나를 세워 항상 점검하고 은혜로 새롭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15:16-17)라고 합니다. 바울도 이런 은혜를 입었는데 바울이 받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고 일군이 된 것이 은혜입니다. 그 전에는 마귀의 종이요 마귀의 일군이었는데 이제 예수님의 일군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은혜이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이 이방의 사도가 되어서 이방인 중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찾아내는 일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받으실 만하게 하려한다고 합니다. 제사장이란 구약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흠 없고 정결한 짐승의 피를 흘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피 흘림을 인하여 자기들이 죽어야 하는데 대신 피 흘리신 희생을 통하여 자기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번제(매일 드리는 제사)가 드려지는 것입니다(29장 참조). 매일 피를 흘려야하는 것입니다. 그 제사장의 직무를 이제 바울사도가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제사장이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옴은 바울사도의 의도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이방인들도 주를 찬송하고 주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그 언약의 말씀을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열방이 함께 주를 찬송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6장에 보면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18-21)고 합니다.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문자적인 성취를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지금도 붙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운동이 시오니즘입니다. 그 시오니즘의 일환으로 지금의 예루살렘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취란, 지금의 시간과 공간인 예루살렘의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22절에 보면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22)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지으실 나라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그 제사장의 일을 바울사도가 은혜로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15:18)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인 것입니다. 그 일을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그 뜻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시기 위하여 바울사도에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난 일 외에는 자기의 그 어떤 것을 감히 말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3. 전도자의 기쁨과 감사

그런 바울이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15:19-20)고 합니다.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즉 복음 전함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쓴 것은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사도의 관심은 자기가 개척한 교회의 교세의 확장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증거 되고 이방인 가운데서도 복음을 믿는 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서 구약에서 언약한 그 일들의 성취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서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사야 52장의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52:15)고 하는 말씀을 인용하여 오늘 본문 21절에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15:21)고 말씀합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그 하나님의 일을 인하여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던 일인 것입니다. 유대인이었던 자기 자신도 주의 소식을 받기는 하였지만 깨닫지 못하였던 내용입니다.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기에게 주어지고 그것은 또한 이방인들을 주께로 돌이키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심에 대하여 그 복음의 위력과 능력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의 뜻을 완벽하게 이루고 계시는지 알면 알수록 더욱 감격할 수밖에 없고 그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자랑이 있습니까? 나에게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말할 무엇이 있습니까? 혹 그 자랑이라는 것이 다 세상의 헛된 것들에 대한 자랑은 아닙니까? 그러한 허탄한 자랑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다 악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외에는 달리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고, 매 맞음이 있고 죽기까지 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포기되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4:3)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멍에를 멘 자와 복음 전하는 일에 바울사도와 함께 힘쓰던 부녀자들과 그 외의 많은 동역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자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의 것들로 자랑하는 자들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할 수 있는 자들로 세워졌습니다. 그런 우리가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자랑하며 사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세상의 부러울만한 곳에 우리 이름이 없더라도 또 세상에 누구를 만나든 딱히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이 없더라도 우리가 복음을 알고 또 그 복음을 믿고 나누는 일에 참여케 된 자라는 것을 알고 믿는 자라면 우리는 그 크신 일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은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자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살도록 허락하시는 모든 날 가운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인간의 자랑은 무엇이며 또 그런 자랑들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2. 이미 복음을 듣고 믿는 자 되었음에도 다시 복음을 전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초대 교회가 모이기에 힘쓰며 한 일은 무엇이며 왜 그래야 한다고 합니까?

4. 예수님의 종이 되고 일군이 된 것이 왜 은혜가 되는 것입니까?

5. 사도 바울이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6. 복음의 제사장 된 바울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7. 오늘날 예수 믿고 있는 우리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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