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과 재물
본문 / 마 6:19-24
1. 세상과 돈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비행기나 열차 그리고 선박 등의 운송 수단에는 일등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석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반석보다 더 편안하고 수준 높은 대접을 받으면서 여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등석을 이용하는 사람은 당연히 돈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돈으로 대접받는 것을 사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대접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좋다’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돈만 있으면 일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어딜 가든 대접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자연히 한숨이 나오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돈이 힘이 되는 세상을 원망하게 됩니다. 왜 그런 원망이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돈 있는 자와의 극심한 차별을 몸으로 몸소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히 돈에 매이게 됩니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돈이 있어야 대접을 받고, 돈이 있어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보게 하고 결국 돈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제공하는 편안한 인생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돈으로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을 짊어진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는 것 자체로 인생이 종결된다면 어차피 한세상 살다 끝나는 것이니 돈이 제일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죽음이란 육신으로 사는 세상을 벗어나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이 영원한 고통의 세상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세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처럼 돈 많은 사람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헌금도 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공경하고 믿었는가를 보실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공경한 하나님의 백성만을 대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물론 우리의 눈에는 그러한 세상의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돈만 있으면 대접받으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실감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생명의 나라보다는 세상에 매이고 돈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상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보고 있으면 당연히 돈이 제일이겠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세상을 보게 되면 돈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제일이고, 예수님만이 귀한 보배로 우리의 마음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은 신자의 변화라고 하며, 이처럼 변화된 사람으로 모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참된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재물이 풍성해지는 것을 복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세상에서는 돈이 제일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천국과 돈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새로운 나라가 임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대와 욕구 그리고 우리의 소망과는 전혀 다른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질 새로운 나라가 기존의 세상과 어떻게 다른가를 예수님은 재물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유대인들이 신앙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구제, 기도, 금식이 외식으로 흘렀음을 책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기들의 의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 곧 의였고, 그 의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가 되며 그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의로운 자라는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바라보는 신앙세계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고 말씀하심으로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대단한 의로도 천국에 갈 수가 없고, 그들의 의보다 더 나은 다른 의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세상에 임한 새로운 나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나라는 인간의 것과 세상의 것은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추구하고 칭송하는 의나 그리고 인간이 귀하게 여기는 세상의 모든 것들도 새로운 나라에서는 버림받아 마땅한 쓸모없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인간이 모든 마음을 두고 있는 재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를 믿는 신자라면 재물에 대한 인식이 분명 달라져야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없으면 안되는 것이 재물이지만 천국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또한 재물이라는 것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에 존재하면서 예수님이 이루시는 새로운 나라에서 진심으로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서 보물로 인정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천국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돈 없이는 못산다는 것만 실감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실감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항상 돈에 끌리게 되고 돈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발각이 되어야 하고 그런 자신이야말로 천국에 해당되지 않는 더러운 존재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신에게서 멸망의 흔적을 보게 되고 자기를 구출할 분이 누구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신자가 교회로 모이는 것을 힘써야 하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묻혀 살 때는 잊고 있었고 보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를 교회에 나와 말씀 앞에 세워졌을 때 보게 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신자에게는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3. 보물과 마음
이것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보면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고 하십니다.
이 내용을 대개는 교회에 헌금을 하거나 구제와 같은 선한 일에 재물을 사용하는 것을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헌금이나 착한 일을 독려하기 위한 인간의 선동일 뿐,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이나 구제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라면, 결국 하늘에서도 재물이 보물로 간주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로 헌금을 하고 구제를 하는 그 마음이 하늘에 쌓는 보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인간의 의가 하늘에서 보물로 간주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역시 성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어야 하는가?’가 중점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물이 무엇인가?’가 중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이 향한 그것이 곧 보물이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는 예수님의 말씀들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3-14)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24절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고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미련한 말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웃었습니다.
세상에서 일등석에 앉아 대접받는 인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음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것이 소망인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리해서 과외 시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말이 현실을 보지 못하는 미련한 말로 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말씀을 현실과 동 떨어진 말로 듣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4. 두 주인
신자는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 천국까지 내것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세상은 소멸될 것에 불과하며 영원한 것은 천국임을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추구하면서 무엇이 진정한 보물인가를 증거하는 자로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돈이 있어야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자신을 살리기 때문에 그 은혜에만 머물기를 소원하고 힘쓸 뿐입니다. 죽은 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생명에 연합됨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그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두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됩니다. 신자는 이런 마음으로 달리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인해 새롭게 창조된 새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22절부터 보면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라고 말씀합니다.
눈이 성하다, 눈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을 보물로 바라보느냐로 구분됩니다. 그리스도께 마음이 향하고 그리스도를 보물로 본다면 그 눈은 성한 눈이고 따라서 온몸은 빛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빛의 길을 걸어가는 신자라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뿐 세상을 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된 사람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신자에게 빛의 길을 선포하고 빛의 밝은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만약 교회가 교회 부흥에 매달리고 교인들의 헌금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과 똑같이 재물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증거이고, 결국 어둠의 길로 달려가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면서 스스로 멸망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종은 주인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주인을 믿고 주인을 의지하면서 주인을 섬깁니다. 그런데 돈이 나를 지켜주고, 돈이 힘이고, 그래서 돈을 의지한다면 그에게 주인은 돈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힘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주인 되어 살려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런 인간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시고 다시금 우리의 주인이 되고자 하십니다. 과연 어떤 주인이 멸망에 처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지 주의 거룩하신 말씀 앞에서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인간이 돈만 추구하는 까닭과 또 그런 인생이 미련하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자의 변화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3.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된 교회에서는 재물의 풍성함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유대인들이 바라보던 신앙 세계는 어떠한 세계였습니까?
5. 신자가 교회에 모이는 것을 힘써야 하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들은 바리새인들이 반응은 무엇이고 또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오늘 말씀에서 신자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하며 그래서 어떤 삶을 사는 자라고 말씀합니까?
8. 신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9. 눈이 성하다 또는 눈이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며 또 눈이 성한 자의 삶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10. 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