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09,919
오늘 : 185
어제 : 286

페이지뷰

전체 : 78,733,594
오늘 : 854
어제 : 1,883
조회 수 17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그들은 믿음으로

본문 / 11:32-34

 

1. 인간과 믿음

우리가 함께 나누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했거나 또는 결과에 도달한 사람들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믿음을 반성하고 각성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합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이렇게 살았고 또 이런 일을 했는데 나는 뭔가? 나도 믿음에 열심을 내서 그런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의 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인간이 자신의 각오와 결심에 대해 끝까지 충실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굳건한 각오와 결심을 세웠다 할지라도 결국 자신에게 편하고 좋은 길을 택하여 가는 것이 인간이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각오와 결심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믿음으로 살기를 각오하라라든가 또는 믿음에 열심을 내서 충성할 것을 결심하라는 말들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순간에 , 그렇구나 내가 너무 게을렀구나 이제 믿음에 열심을 내자라는 결심을 하고 각오를 새롭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믿음의 삶은 인간의 결심과 각오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항상 허공을 울리는 공허한 말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인류 역사상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스스로의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완벽히 성취한 자가 있다면 분명 인간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믿음을 계발하며 열심을 내라는 말도 얼마든지 타당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그러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 받는 아브라함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살았습니까? 그들 모두 인간의 연약함을 보이면서 믿음에 실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이 놓지 않으시고 붙들면서 다스려 왔기 때문에 믿음의 열매가 있게 된 것 뿐인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서 보여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인 것이지 아브라함과 모세의 각오와 결심 그리고 열심 등은 전혀 보탬이 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믿음의 사람들로 불리는 인물들을 보면서 열심을 내야겠다는 자기 각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결국 성경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될 것이고 또 한 번 허공을 두드리는 공허한 자기 결심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2. 믿음의 선진들

오늘 본문 역시 다른 본문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이 믿음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들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그들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32절의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11:32)라는 구절을 보면 어김없이 믿음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해서 그 일을 다 말하기에 시간에 부족할 정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33절 이하의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11:33-34)라는 말씀을 통해 이들이 한 일들을 보면, 그야말로 믿음의 영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일을 했음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믿음의 영웅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질적으로는 믿음의 영웅이지만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그들은 믿음의 영웅으로 등장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을 모두 무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그들이 한 일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말씀은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11:33-34)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능력과 힘으로 이루어낸 업적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일들을 이루어 낸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한없이 연약하고 무지하며 모든 불의 가운데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붙들어 놓는 것이고, 하나님께 붙들린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의의 길로 갈 수 있게 된 것이지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각오와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믿음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인간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기드온을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실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미디안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긴 하지마는 성경에 보면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6:27)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드온을 큰 용사여라 하시며 사사로 부르셨을 때는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6:15)라는 말로서 부르심을 회피하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사사기 636절 이하에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다면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땅에는 있지 않는 표징을 보여줄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하시자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고 이슬이 땅에만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드온을 믿음의 용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의 나약함과 의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사인 바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락의 당시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에게 붙들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야빈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등장한 사사가 드보라라고 하는 여자 사사입니다.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하나님께서 야빈을 네 손에 붙였으니 군사를 이끌고 가라는 여호와의 명을 전합니다.

그러자 바락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4:8)고 하는 남자로서는 참으로 약해빠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믿음의 영웅다운 모습이겠습니까? 이러한 바락을 세워서 하나님을 일을 하신다는 것은 애당초 바락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갖고 계시지 않음을 전제로 하여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삼손은 어떻습니까? 삼손이란 이름을 생각하면 힘이 장사로서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인 용사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는 여자 때문에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알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등 온갖 고생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블레셋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인생을 끝낸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생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를 믿음의 영웅으로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입다는 이스라엘을 위해 암몬 족속과 전쟁을 하기는 하지만, 그 전쟁은 순수하게 이스라엘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장로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입다를 자신들의 장으로 삼겠다고 함으로써 결국 그들의 장이 될 목적으로 전쟁에 나서게 된 것 뿐입니다. 또한 입다는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면 맨 처음 자신을 영접한 자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허세를 부립니다. 그 결과 결국 자신의 딸이 희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다 역시 믿음의 영웅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윗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의 자리에 있을 때 왕의 권세를 이용하여 남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자신을 위해 충성 헌신하는 부하인 우리야를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알았기에 눈물로 회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이 자신이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사무엘 역시 믿음으로 강한 용사와 같은 면모만을 보인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는데,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을 때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 올 혼란을 염려하며 슬퍼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무엘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을 본다면 그 역시 인간의 나약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한 가지 결론은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성취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하신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사람에게 맡겨서 실천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모든 일을 성취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나약한 사람들을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말씀 드린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에는 도무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 한순간도 하나님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없음을 알게 되고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통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어느 한구석 개입되지 않으심이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자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동원하시는 것으로 알게 되며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인간의 본질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힘과 열심이라는 것은 들어있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일만한 인간의 힘은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인간은 나약함과 믿음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로만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에 인간이 할 일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이 있다면 할 것이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끝까지 인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욕망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위대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부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것입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완성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완성의 세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입니다. 나의 힘은 불필요하고 다만 예수님의 공로와 의만 높이면 되는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열심이 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행함을 바라보면서 나는 부족하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히 채워졌음을 생각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2 2022 4월 3일 / 히브리서 70. (히 12:14)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관리자 2022.04.03 212
591 2022 3월 27일 / 히브리서 69. (히 12:9-13) 하나님의 징계의 유익 관리자 2022.03.27 236
590 2022 3월 13일 / 히브리서 68. (히 12:4-8)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심 관리자 2022.03.13 238
589 2022 3월 6일 / 히브리서 67, (히 12:3)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관리자 2022.03.06 174
588 2022 2월 27일 / 히브리서 66. (히 12:12-2) 온전케 하시는 이 관리자 2022.02.27 180
587 2022 2월 20일 / 히브리서 65. (히 12:1-2) 예수를 바라보자 관리자 2022.02.20 229
586 2022 2월 13일 / 히브리서 64. (히 11:39-40) 더 좋은 것 관리자 2022.02.13 222
585 2022 2월 6일 / 히브리서 63.(히11:35-38) 믿음과 고난 관리자 2022.02.06 183
» 2022 1월 30일 / 히브리서 62. (히 11:32-34) 그들은 믿음으로 관리자 2022.01.30 170
583 2022 1월 23일 / 히브리서 61. (히 11:31) 믿음으로 라합은 관리자 2022.01.23 191
582 2022 1월 16일 / 히브리서 60. (히 11:30) 믿음과 여리고 관리자 2022.01.16 162
581 2022 1월 9일 / 히브리서 59. (히 11:29) 믿음으로 홍해를 관리자 2022.01.09 181
580 2022 2022년 1월 2일 / 신년감사예배 / (마:15-12-14) 함께 세워져 가느니라 관리자 2022.01.02 210
579 12월 26일 / 성탄예배 / (눅 1:26-38) 은혜를 받은 자여 관리자 2021.12.26 150
578 12월 19일 / 히브리서 58. (히 11:28) 믿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정함 관리자 2021.12.19 103
577 12월 12일 / 히브리서 57. (히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관리자 2021.12.12 128
576 12월 5일 / 히브리서 56.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관리자 2021.12.05 115
575 11월 28일 / 히브리서 55. (히 11:23)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관리자 2021.11.28 160
574 11월 21일 / 추수감사 / (신16:16) 이스라엘의 3대절기 관리자 2021.11.21 330
573 11월 14일 / 히브리서 54.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관리자 2021.11.14 151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