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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

본문 / 고후 8: 1- 9

 

 

1. 은혜

우리는 지난주에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들은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무엇을 근심하며 살았습니까? 지난주에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이 되다가도 막상 우리의 한주간의 삶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세상 근심이 거의 다였을 것입니다. 그 많은 세상 근심 중에서 가장 큰 근심은 아마도 돈에 대한 근심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의 내용은 참으로 부담이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근심거리인 돈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돈이라고 하는 것은 목숨과도 같습니다. 돈이 없어 자살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뉴스를 통해 항상 듣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만큼 돈을 말하는 것은 목숨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세상에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연보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일어나서 바울사도를 향하여 마음이 활짝 열리고 얼마나 간절하게 사모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연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고린도교회에서는 가난한 교회를 위해 연보를 시작하였지만은 지지부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제 연보에 대해 바울이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연보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로서 예루살렘의 기근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인 동시에 또한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신령한 것을 공급받았기에 이방 교회에서 감사의 표시로 드려지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가 하나로 일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것이 연보를 주고받음 속에서 확인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고후8:1)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란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교회들입니다. 이 지역도 그 당시에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어려운 살림살이였고, 특히나 예수 믿는 자들은 더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란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2)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은혜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것을 은혜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내 마음만 기쁜 것이 아니라 환경도 좋아지고, 시련도 없어지고, 살림살이도 나아지는 것을 은혜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환난과 많은 시련은 그대로 있고 거기다가 극한 가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연보를 하였다는 것을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우리 생각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8:3-4)라고 하는 것입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한 것입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해 사도들에게 간절히 구한다고 합니다. 간절히 연보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연보란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목숨과 같게 여기는 돈을 누군가를 위해 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연보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런 은혜 받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4절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좀 더 확실해 집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전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고후8:4 / 표준새번역)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은 은혜로 되어 있는데 새 번역에서는 특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특전이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서 privilege(프리빌리지)라 하여 특전, 특권, 영광, 은혜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그런 연보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은혜이며 특전이기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가 더 많이 채워지고 가득한 것을 복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을 은혜와 복과 특권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아까워도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주인의 원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김으로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복이라 말씀함에도 우리가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가 원하는 복, 즉 내 주머니가 가득 채워지는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넉넉해야 많이 베풀 것이라고 하는 핑계를 만들어 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방송 설교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번성하고 창대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왜 우리가 헌금을 제대로 못하는가 하면 가난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넉넉하게 많이 할 수 있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 많은 헌금을 해서 큰일을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듣는 분들의 공감하고 동의하는 소리가 연발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걷자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연보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연보는 하나님을 믿음과 사랑함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믿음과 사랑 없이 하는 것은 은혜의 연보가 아니라 그냥 돈을 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부자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은 사실 믿음이 있는 은혜의 연보가 아니라 돈을 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부자가 돼서 돈을 많이 내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돈으로 일을 하시려고 하신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힘에 지나치게 헌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부자 몇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면 모든 일이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 방법은 은혜가 아닌 마귀가 제시하는 쉬운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다 준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은혜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로 일하신다는 것은 인간의 예측이나 가능성을 부인시키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은혜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보를 하여도 은혜로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은혜가 아닌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은혜가 아닌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받고,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헌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혹 오는 저주가 있다면 그 저주까지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신이 헌금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 저주가 오고 또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고 나면 듣는 성도들은 자꾸 하지 말자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복음을 듣고서 헌금을 하기는 하는데 전에 하는 것보다 솔직히 더 많이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기적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그 전에 믿음으로 하지 않을 때보다도 헌금을 더 하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을 통해 은혜로 나타난 연보의 모습이 어떤지 보시기를 바랍니다. 극한 가난 가운데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 연보하는 은혜의 특전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청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들의 연보가 금액으로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돈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헌금은 쓰다가 남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극히 가난한 가운데서 드리는 헌금은 바로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또 자신을 사도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돈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일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헌금이야기만 나오면 전부 돈으로 환산을 합니다. 부자가 와서 목돈을 하면 좋겠다든지 아니면 내가 부자가 되어서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은혜가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린 것이 연보입니다.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 연보한 돈은 돈이 아니라 은혜이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제대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여호와의 대적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젖먹이와 어린아이를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돈과 물량공세로 나오는데 이쪽에서는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심을 통해 이 세상이 지금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는 자들이 힘을 다하고 힘에 지나치게 해 보았자 금액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헌금은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로 일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3. 은혜 받은 성도

그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금이 아닌 것에 대해 하나님은 뭐라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이사야서 1장입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10-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돔과 고모라라는 이름을 붙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수한 재물과 분향하는 것에 대하여 질린다고 하십니다. 형식주의와 율법주의 그리고 습관적 타성에 젖어 영적 불감증에 빠져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많이 갖다 바친다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서 2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2:12-14)고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돌아오면 혹시 하나님께서 마음과 뜻을 돌이켜 복을 주셔서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이 복이요 은혜요 특전인 것입니다. 이것을 돈을 드림이 아니라 자신을 드림인 것입니다. 이것이 연보가 은혜요 특전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 계속하여 이 은혜를 성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한 연보를 계속 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은혜를 성취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8:7)고 합니다. 고린도교회에 모든 것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에도 풍성 하라는 것은 연보에 풍성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상대적으로 다른 교회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다 풍성하면서도 연보에 인색한 고린도교회에게 연보에 풍성하라고 하는 것은 은혜에 풍성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고후8:8)고 합니다. 이것이 명령은 아니기에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명령이 아닙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연보는 자발적으로 드림으로서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증거 할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간절함, 즉 앞서 말한 마게도냐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고린도 교회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랑의 진실함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보를 함으로서 자신들의 그 사랑의 진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드리는 것이 은혜요 연보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어디에서 나타났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이 은혜를 모르면 오늘 연보가 은혜요 특전이라는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은혜란 예수님이 부요하시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이십니다. 가장 부요하신 분이 가장 가난하여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가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고린도후서 6장에 보면 우리를 향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볼 때에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이 은혜를 알고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미 부요하기에 줄 것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예원의 모든 가족들 가운데 늘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하는 연보를 통해 확인되고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이 마게도냐에 주신 은혜와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3. 연보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은 돈이 아니라 은혜를 연보를 원하신 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5. 하나님이 은혜로 일하심을 나타내고 보여주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6. 바울이 디도를 권하여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고린도교회의 사랑의 진실함이 어떻게 나타났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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