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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사역과 교회

본문 / 4:23-25

 

1. 교회의 오해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행하실 예수님의 사역을 집약해 놓은 것입니다. 즉 앞으로 행해질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복음 전파와 함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증거 하시는 것이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오늘날의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행하는 것이 곧 교회다운 것이고 교회가 세워진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으니까, 교회도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전도)해야 하고 또 병자와 연약한 자들 또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교회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교회다운 교회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사역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교회로써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을 쓰고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병자들을 고치지는 못할지언정 병자처럼 연약한 자들을 돕는 일에 부지런하다면 그것처럼 교회다운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그보다 더 나아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들은 장차 예수님의 피로 세워질 교회가 그대로 답습해야 할 모본으로 제시된 것들이 아닙니다. 장차 교회는 내가 행한 대로 가르치는 일과 복음 전파와 병자와 연약한 자를 고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교회로서의 할 일을 보여주는 의미로서의 사역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와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의 존재 이유와 또 교회가 할 일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연약한 자를 돕는 것에 둔다면 그러한 일을 잘하는가 또는 잘하지 못하는가가 기준이 되어서 교회다움이 평가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결코 그러한 것으로 평가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교회에는 가르치는 것이 있어야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자와 연약한 자를 돕는 일도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찾는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해서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만을 좇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학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역시 교회가 아니라 단지 선교 단체일 뿐입니다.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또한 세상의 구제단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이러한 용도로 세상에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2.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당시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였습니다. 그 당시 회당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이 낭독되었고 유대인들은 그 율법대로 준수하며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확고히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율법을 실천하는 열심이었습니다. 율법만 잘 실천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회당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셨다면 과연 그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율법으로 구축된 유대인들의 신앙체제를 무너뜨리시면서 율법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리는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그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연구한 유대인들이 찾은 영생의 길이 바로 율법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성경을 바르게 아는 자는 그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몰랐기에 율법을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유대인들의 율법 실천을 헛된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회개하라고 외치신 것도, 회개는 율법을 실천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라고만 여겼던 유대인들의 생각을 무너뜨리면서, 천국은 율법을 실천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실천하는 자신의 행위조차 부인하고 생명의 길로 오신 예수님을 좇는 자들의 나라임을 말씀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천국 복음 역시 단순히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길이 되시는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좇게 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 일로 인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쳐주시는 분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의 육신의 병을 고쳐주기 위한 분으로 오셨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한 일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5:24)고 말합니다. 예수님에게 나아온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귀신 들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인해 주어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가까이하셨던 세리나 창기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는 해당되지 않은 자들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오직 율법을 잘 실천하는 자신들의 몫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와 연약한 자들을 고쳐주심으로써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였음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병 고침 또한 유대인의 율법 체제를 무너뜨리는 행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는 인간이 구축하고 있는 구원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구원에 대한 통념과 상식 등이 모두 부인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4:25)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고치셨던 모든 사역은 예수님을 좇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고 통로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뜻입니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은 병 고침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좇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한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제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차 그들은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인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시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3. 교회의 할 일

따라서 교회가 할 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교회가 가져야 할 목표입니다. 교회가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나 약자를 돕는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자의 생명 되시는 분임을 선포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좇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며 통로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약한 자를 돕는 그 모든 일들을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교회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일들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온 수리아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나와 예수님을 좇습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병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좇은 것은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리아와 요단강 건너편 먼 거리에서까지 예수님을 좇은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멀리서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가벼운 병이어도 그러한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고, 예수님이 자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좇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좇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좇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매우 곤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좇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서 무엇을 예수님을 좇는 증거로 분별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간절함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나의 선행과 도덕과 양심과 착함 신앙생활 모든 것을 동원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이 이를 수 없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간절함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길이 없음을 알기에 예수님을 신뢰하며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병들고 귀신들린 자처럼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실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에 관한한 우리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은혜로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셔서 그 계획된 목적지에 우리를 기필코 세우시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고 신뢰라면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할 것이고, 지금 자신이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여 있든지 그 모든 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필연적 과정 중의 하나임을 알기에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좇고 있는 신앙입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무지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기복이 있을 수 있지만 주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은혜로 나를 지키고 인도하셔서 그 계획된 목적지에 기필코 세우시고야 만다는 것을 믿는 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자기 백성을 이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뜻과 계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이러한 뜻과 계획안에서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며, 병자와 연약한 자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에 어떤 목적을 두면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교회로 만들겠다든지, 민주적인 교회로 만들겠다든지,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등의 목적을 가지게 되면 결국 예수님을 좇는 믿음의 길을 가도록 돕는 교회 본연의 일은 잊어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 내게 될 뿐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마음에 든다고 해서 교회다운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선호하고 바라는 것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즉 각기 다른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선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사회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교회는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상에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좇는 믿음의 길을 가도록 돕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을 굳게 세우고자 하는 것이 참된 교회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오해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교회의 사역의 오해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모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표와 목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당시 유대 회당에서의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이며 또 그 유대 회당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것이라면 그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는 책이며 또 그런 성경을 바르게 알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다고 합니까?

 

6.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에서 제일 먼저 회개하라고 외치신 의미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7. 천국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인 자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어떤 사람이며 또 예수님이 그런 자들을 고치신 것은 무엇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까?

   

9.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의미는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표는 무엇이며 또 교회는 무엇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까?

 

11. 신자가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무엇이 전제되는 것이며 왜 그렇다고 합니까?

 

12. 신자의 신앙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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