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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맹세하지 말라

본문 / 5:33-37

 

1. 인간의 존재성을 잊지 말라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마주할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성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인간의 존재성을 잊은 채로 성경을 마주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은 말 그대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경전의 수준으로 전락될 뿐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순간 그 앞에서 자신의 뜻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시하시는 것이고, 신자가 말씀을 대하며 듣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이 장악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 참으로 희박한 시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긴 채 하나님께 나오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갖기 보다는 하나님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러면 신앙생활 잘 하겠습니다라는 자기 욕망을 쏟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성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도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뜻을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 피조물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나 비신앙적인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뜻과 포부가 차고 넘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마다 하나님의 뜻을 외칩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모이는 교회가 외치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하나님 앞에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어놓으시고 그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지 인간의 뜻을 듣고 그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무당을 찾아가고, 우상을 찾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찾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그것이 곧 신앙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신앙의 열심을 보시고 자기 소원과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맹세라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맹세를 하게 되는 이유

사람이 왜 신 앞에서 맹세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이번 일만 해결해 주시면 십일조를 철저히 하겠습니다라는 식의 맹세를 왜 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맹세를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맹세는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맹세는 신 앞에서 자신의 열의를 꺼내어 놓는 것입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을 신을 향한 자기 열심과 의지와 각오를 담보로 해서 얻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뜻을 이루어 주시면 하나님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바로 맹세인 것입니다.

결국 맹세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지 못함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인생이 끌려가고 있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 앞에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자기 열심과 의지와 각오를 담보로 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안다면 맹세는 감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세를 한다는 것은 오직 자기에게 모든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고, 하나님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찾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이 말하는 신앙을 보면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이고,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를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가기를 원하는 소원을 갖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정말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라는 존재에 모든 관심과 목적을 두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고 있는가?’에는 관심 밖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복음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기 말을 하고 멸망에 갇힌 세상과 똑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교인들을 그것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아멘이라고 하면서 마치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5:34-36)고 말씀을 합니다.

 

3. 맹세하라와 맹세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앞에서 말씀하신 살인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비해서 실천 가능성이 있는 말씀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는 것도 살인에 포함되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에 비하면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맹세를 하지 않으면 되니까 쉽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과연 맹세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은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구약에서 하나님은 맹세를 하고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있습니다. 신명기 10장에 보면 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10:20)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 신명기 23장에도 보면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22.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23.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23:21-23)고 하십니다. 여기보면 맹세를 하라고 하시고 또 맹세한 것은 지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맹세에 대한 하나님의 규례를 무너뜨리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는 맹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세의 다스림 아래 있고 이스라엘의 주인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만 경외하고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말씀에는 자기 소원이 있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뭔가 맹세를 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주신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도로 맹세를 한다면 그것은 곧 헛맹세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는 여호와의 백성으로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것을 알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고 경외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이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고 거짓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인간도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자기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맹세를 한다고 해도 인간은 자기 맹세를 지키는 자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사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심을 하고 또 결심을 한다고 해도 자식이 공부를 못하고, 말썽만 피우고, 심지어 병이 들어서 큰 짐과 고통이 될 때 그런 형편에서도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마음이 변치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 어떤 맹세를 한다고 해도 결국 헛맹세로 그칠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믿음의 길은 우리의 각오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끌려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4. 맹세는 하나님이 이루신다

신자는 자신의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맹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 14장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14:24)고 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맹세를 하시는 분이고 맹세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결국 이 세상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이 맹세를 이루시는 그 일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맹세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각오와 열심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다스려지고 인도되고 있음을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5:37)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해야 하고 그 맹세를 실천하고 이루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에 붙들려서 인도되고 있음을 믿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그른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옳을 뿐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일이 많겠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결국 선으로 열매가 맺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 안에서 오직 라는 반응으로 나올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입니다.

반면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옳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른 것이기에 아니라는 반응이 나올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성을 알게 된 신자의 자신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만약 누구든 나의 선행도 알아주세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옳은 것이 있다는 것이 되고, 결국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성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 우리에게서 믿음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의 열심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나 같은 자를 놓지 않으시고 고쳐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감사하고 높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인간이 옳다고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맹세의 성취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맹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라는 지체는 날마다 부인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나의 소망, 나의 기쁨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부름 받아 그의 제자라는 관계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에 있게 하신 것은, 우리의 입술과 우리의 행동과 삶 전부를 도구로 삼아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가 되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소원과 뜻을 가지고 나오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맹세를 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부인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를 주의 지체로 삼으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주의 뜻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내 것이 없습니다. 인생도 내 것이 아니라 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삶에 대해서도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신자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이러한 신자로 만들어 가시면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포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신자가 성경을 대할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그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신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앙은 무엇입니까?

 

3. 맹세는 무엇이며 또 맹세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라 합니까?

 

4. 오늘날의 교회의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로만 가득하다고 합니까?

 

5.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하신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고 거짓 맹세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신자인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맹세는 무엇이고 왜 그렇다고 합니까?

 

9.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된 신자의 반응은 무엇이고 또 주안에서의 신자의 존재성을 바르게 알게 된 신자의 반응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예수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우리를 그의 제자라는 관계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 7월 27일 / 마태복음 32. (마 5:43-48) 원수를 사랑하라

  2. 7월 20일 / 요한복음 82. (요 13:12-20) 서로의 발을 씻기라

  3. 7월 20일 / 마태복음 31. (마 5:38-42) 보복이 아닌 자비로

  4. 7월 13일 / 마태복음 30. (마 5:33-37) 맹세하지 말라

  5. 7월 6일 / 요한복음 81. (요 13:4-11)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6. 7월 6일 / 맥추감사주일 / (민 28:26-31) 아무 일도 하지 마라

  7. 6월 29일 / 마태복음 29. (마5:27-32) 간음하지 말라

  8. 6월 22일 / 요한복음 80. (요 13:1-11) 끝까지 사랑하심

  9. 6월 22일 / 마태복음 28. (마 5:21-26) 옛 사람의 율법

  10. 6월 15일 / 요한복음 79. (요 12:46-50) 선지자 예수님

  11. 6월 15일 / 마태복음 27. (마5:17-20) 율법의 요구

  12. 6월 8일 / 요한복음 78. (요 12:44-45) 주를 보는 자 하나님을 보는 자

  13. 6월 8일 / 성령강림주일 / (행 2:1-13)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14. 6월 1일 / 요한복음 77. (요 12:37-43) 믿는다는 것

  15. 6월 1일 / 마태복음 26. (마 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16. 5월 25일 / 마태복음 25. (마 5:10-12) 의에 주리고 핍박을 받는 자

  17. 5월 18일 / 요한복음 76. (요 12:31-36) 죽으시는 한 알 하늘 밀

  18. 5월 18일 / 마태복음 24. (마 5:9) 화평케 하는 자

  19. 5월 11일 / 요한복음 75. (요 12:27-30) 아들을 영화롭게

  20. 5월 11일 / 마태복음 23.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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