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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의 정체성

본문 / 11:13-15

 

 

 

1. 신자의 정체성

예전에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강의를 잠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강사로 나온 교수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조상을 둔 위대한 민족인가에 대해 역설하였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감동하면서 그 강의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는 항상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좌파냐 우파냐 또는 중도냐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체성을 강변하면서 국가의 장래나 이익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자기 당의 이익을 챙길 뿐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이 예배와 설교시간은 무슨 시간이겠습니까? 사실 이 시간도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도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죄인이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기에 우리는 얼마든지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자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한 신문에 이런 광고가 나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 한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부제가 SAT(Scholastic Aptitude Test)만점, 하버드 의예과 전액장학생으로 합격이라는 것입니다. SAT란 우리나라의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미국에서의 시험인데 그 시험에서 1,600점 만점에 1,600점을 받은 것입니다. 철저한 신앙교육 속에서 말씀으로 양육 받고 주일성수, 교회 봉사, 이웃 섬김을 하면서도 세상 학생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성적을 낸 믿음 학습법 대 공개라고 소개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몇 개 모아서 설교시간에 이야기 하면 아마도 사람들은 크게 환호할 것입니다. 특히 아직 어린 자녀들을 두신 부모님들에게는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알아봄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이라는 고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어찌할꼬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면 제대로 자기 정체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는 고백이나 또는 바울사도처럼 나는 죄인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나오면 제대로 된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또한 감옥에 갇힌 바울을 감시하던 간수장이 자살하려고 하는 그때에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인간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발이 없이 구원을 이야기 하게 되면 평소에 자기가 원하는 구원의 상태를 그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원관은 결국 자기 욕망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구원관의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도 남은 자들이 있어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계시되기도 하였지만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의 잘못 된 구원관이 있었기에 참되신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보면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능욕 받은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큰 재물이며 상급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세를 믿었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님도 믿었을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모세를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믿었던 메시아는 애굽의 모든 영광, 세상의 영광을 버리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믿었던 메시아는 세상의 영광을 주는 메시아였습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하여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세상의 영광을 오로지 유대인들에게 회복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정체성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11:13)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의 골육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시기가 나서 얼마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가 단지 자신의 민족애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지만 그 중에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가 이스라엘에게도 일어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보는 이방인들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자기 자신을 자꾸만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에게 대입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우리는 항상 이방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 18절에 보면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가 잘나서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일부가 교만하여 불순종함으로 꺾어진 자리에 너희가 접붙여 졌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6)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는 이방인도 아니요 사마리아도 아닙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섞였다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개처럼 취급당한 사마리아인들보다 더 못한 이방인들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조건으로 따지면 누구보다도 더 거리가 먼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것을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15:21-28)고 합니다. 자신을 개로 인정한 이 여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확인을 하시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이런 이방인에 대하여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인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습니까? 오직 주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이방인에게 또 유대인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일부가 꺾어진 것은 자기들의 행위를 의지한 까닭입니다. 그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이심으로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일관성이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그의 자비와 무궁하신 사랑으로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인간의 자기 의를 무너뜨리는 예수님이 싫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모든 특권들을 무시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감히 율법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바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들보다 세리와 창기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인가, 하는데서 오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예수님을 제거해버린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의 긍휼과 자비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자는 반드시 구원하시는데 그것은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알게 하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바울사도 자신이 체험하고 나서 유대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방인의 지역으로 가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언제나 유대인들의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이 없을 시는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지만 항상 제일 먼저는 회당이었습니다. 그렇게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거부하면 다시 이방인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도의 결론이 사도행전 끝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23-28)고 합니다. 바울의 이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합니다. 그러자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구약에 이미 말씀하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하면서 28절에서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28:28)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방인인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까? 믿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하심 가운데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다른 이방인에게로 복음은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인간의 자기 행위나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 가운데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무엇인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선택한 모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죄 아래, 불순종아래 가두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

로마서 11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하심이라”(11:32)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 아래, 불순종아래 가두어 두신 까닭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긍휼로 구원이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나 율법 지킴 같은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긍휼로만 되어 짐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긍휼의 구체적인 증거물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에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1-18)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였습니까? 이방인이며, 할례를 받지 않는 무리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이며,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하나님 없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또 그 하나님의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던 우리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그 구원과 멀리 있던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간에 그 피로 그 십자가로 의롭다 함을 입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이 일을 이루어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보며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뜻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그 어떤 힘과 노력이 아닌 오직 주의 긍휼과 은혜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만 되어 진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해 무슨 엄청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사 은혜로 구원하신 그 은혜와 긍휼을 바르게 알아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원 모든 가족에게 이런 주의 은혜의 통치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들이 성경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두 가지 정체성은 어떻게 드러난다고 합니까?

2. 성경을 통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 없이 갖게 되는 구원관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3. 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자기 민족에 대한 구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말하는 것입니까?

4. 우리가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5. 방인인 우리를 주의 은혜로 구원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6.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 아래 가두어 두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성도란 어떤 자들이며 또 성도들이 오늘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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