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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산 아래서 바라보는 산 위의 세계

본문 /  막 9: 9-13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9:9-13)

 

1. 예수님의 경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누었던 것은 천국은 신자가 예수를 잘 믿어서 들어갈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존재하기보다는 기존의 세상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결국 그것은 신자가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장차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자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정죄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처럼 천국은 기존의 세상을 부인하면서 우리들의 속에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습니다따라서 천국을 믿는 자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도 않습니다항상 그 마음이 세상에서 떠난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지금의 우리들의 신앙 현실을 보면 천국을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기 존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자기 불멸에 의미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 많습니다그래서 천국이 단지 상상속의 세계일 뿐 현실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이렇게 천국이 신자의 현실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 백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속한 채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런 세상 속에서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9:9)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광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제자들이 산 위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그것은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좋고 유리한 것은 무조건 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사람은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고 반대로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그래서 좋지 않은 것이 주어지면 ‘왜 원하지도 않은 이런 것을 주는가?라고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이것이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삶입니다그런데 과연 이러한 인간의 잘못됨이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그것은 인간이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산에서 예수님의 영광된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신비한 장면을 목격한 베드로는 그곳에서 계속 거하고 싶어졌습니다그래서 초막 셋을 짓자고 예수님께 제안을 하였습니다바로 이러한 모습이 좋은 것은 무조건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베드로는 영광된 세계에 자신이 과연 합당한 자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사실 베드로가 그곳에 거하기를 원하였지만 베드로가 목격한 영광의 세계는 그러한 식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었습니다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도록 허락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무엇보다 그 누구도 그러한 영광의 세계에 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예수님이 세 제자에게 산에서의 영광을 보게 하신 것은그 누구도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하려고 하시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베드로는 영광의 세계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구만 드러낼 뿐영광의 세계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는 않은 것입니다만약 영광의 세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영광의 세계에 결코 합당하지 않은 자신의 악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그래야만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에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천국에 대해 말하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천국을 상상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소유하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천국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자신의 의와 공로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인자의 죽음과 부활이 있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베드로가 원하고 또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 영광의 세계는 오직 인자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먼저 온 엘리야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9:11)라고 말합니다제자들의 이 질문은 구약성경 말라기서 4장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당시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대로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입니다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영웅 같은 엘리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위해 큰일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것은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세상의 죄를 고발하기 위해서인데 이스라엘은 엘리야의 능력만을 바라봄으로서 엘리야가 다시 와서 자신들이 고대하는 세상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그래서 세례요한이 말라기의 예언처럼 엘리야의 모습으로 왔지만 세상은 그러한 세례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인 것입니다왜냐하면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와 같은 그런 능력을 기대했지만 세례 요한은 능력을 보이려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고발하기 위해 보냄 받은 선지자이기에 세상은 그를 엘리야로 바라보지 못한 까닭은 것입니다이것이 세상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말씀을 기준으로 말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통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며 하나님을 찾습니다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도 결국 바로 이러한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마치 세상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인 것처럼 말입니다이것을 보면 세상은 온통 자신이 원하는 자기 세계를 원할 뿐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자기 세계를 고수하기 위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3. 세상의 현실과 실상

이러한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오늘 본문 12절부터 보면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9:12-13)고 하는 말씀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신자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세계에 마음을 두기 위해서는 인간이 원하고 꿈꾸는 눈에 보이는 세상은 현실이 아닌 허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곳에서 어떤 세상을 기대하고 살든 그것은 참된 세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참된 세상은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생명의 나라뿐입니다이 나라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둘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시고 간섭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복음을 변질시키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여기서 말한 자기 세계란 자기 교회까지 포함한 말입니다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교회인간이 소망하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은 채 복음을 빙자하여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복음을 변질케 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자신들이 원하는 이스라엘로 만들어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세상에게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새로운 세상을 이루실 예수님을 그런 세상에 보내셨습니다그렇기에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십자가의 예수님은 우리 자신의 죄를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자기 죄를 보지 않고서는 자신은 영광의 세계를 들어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지를 못합니다그리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즉 자신의 죄를 보지 않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의를 공로 삼아서 천국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뿐입니다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임을 십자가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오늘날 이 시대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사라지고 없습니다물론 교회마다 십자가는 말하고 예수님도 외쳐질 것입니다그러나 그 십자가는 인간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주고천국도 차지하게 해주는 십자가일 뿐인 것입니다한마디로 말해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이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그리고 대신 긍정의 힘이라는 사탄적 사고방식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긍정의 힘은 인간의 능력을 믿는 사탄적 발상일 뿐입니다이 긍정의 힘은 고난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며신앙인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밀쳐내어 버립니다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님이 부인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사람이 어떤 말에 힘을 내겠습니까‘인간은 죄인이다죽은 자다좁은 길을 가는 것이 신자다’라는 말보다는 긍정의 힘을 말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예수님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역사한다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다오직 믿음으로 해보자’라는 말이 더 힘이 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그러나 말씀이 신자에게 역사한다면 그 말씀은 신자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저주받고 심판받아 마땅한 죽은 자임을 보게 합니다즉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이 처한 현실을 깨닫고 보게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처럼 자신이 죽은 자임을 깨닫고 알게 될 때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곧 나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능력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런 믿음의 사람은 천국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천국이라는 말 앞에서 ‘나 같은 자가 천국에 합당하기나 합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산 위의 세계를 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산 아래의 삶인 것입니다오늘도 이러한 주의 은혜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여 우리의 실상과 그런 우리를 보게 하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천국과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2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산 위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시는 까닭과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영광의 세계에 거하고 싶어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알게 하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보다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예언처럼 먼저 온 엘리야는 누구이며그럼에도 이    스라엘이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신자인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변질 된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어떤 것입니까?

8. 교회 가운데서 변질 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부인 되는 현실은 무엇입니까?

9. 참된 복음이 신자 가운데 역사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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