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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자

본문 /  10:28-31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0:28-31)

 

 

1. 욕망의 버림

우리는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에서 예수님을 찾아와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부자에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그리고 그 부자는 재물이 많아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그것은 결국 그 부자는 자기가 추구하는 영생보다는 재물이 더 중요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가 천국 가는 일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면서 아예 불가능함을 선포하셨음을 보았습니다그러자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10:28)라고 말합니다성경에 보면 베드로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제자들은 마태복음 4장에 보면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22)고 하여 예수님을 따라 나설 때 실제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여기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가족이나 생업을 다 버렸음을 뜻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인간에게 있어서 가족과 생업은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들이야 말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야 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사람들이고 그런 자신들을 예수님도 인정해 주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그런데 같은 내용의 말씀인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9:27)라고 말합니다즉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린 자기의 행위로 인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베드로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그 행위로 말미암아 분명히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해 근심하고 돌아가는 부자를 보면서 상대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자신들의 행위야 말로 대단한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보상으로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하지만 이것은 베드로가 이야기한 것처럼의 ‘버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베드로의 기대처럼 ‘모든 것을 버린 나에게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것을 좋은 것을 얻기 위한 버림이 되는 것이고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버림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내가 천원을 버렸으니까 대신 만원을 주세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천원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버린 것이 아니라 만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천원을 버린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따라서 뭔가 더 좋은 것이 상으로 주어질 것을 기대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베드로는 사실은 버리지 않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더 좋은 것을 갖고자 하고 또 얻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것은 주안에서의 진정한 버림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며 거래이며 투자인 것입니다.

 

2. 진정한 버림

오늘 본문 29절부터 보면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10:29-30)고 말씀합니다이 구절을 보면서 사람들은 버림이라는 행위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갖기도 합니다즉 내가 주를 위해 버리면 나중에 주께서 백배나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백배나 받는다는 말에 인간적인 자기 욕망을 걸어두고 ‘버리자’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하지만 백배나 받는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한다면 앞뒤의 말도 모두 문자적으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집이나 전토를 버리면 백배로 받는다는 말은 다들 좋아할 것입니다하지만 같은 말씀에서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을 버리면 백배로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축복으로 여겨지느냐 하는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의 네가 버리면 내가 백배의 축복으로 갚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버린 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빌립보서 2장에 보면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라고 하십니다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그러나 그런 예수님은 하나님께 ‘내가 버렸으니까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그냥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버린 자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예수님의 버리심은 집이나 전토 부모 형제 자매가 전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 버리심이었습니다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버림의 의미인 것입니다그런데 베드로는 버림의 행위에는 항상 자기 자신이 있고 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이렇게 버렸으니까 뭔가 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0:21)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재물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그것은 결국 ‘너 자신까지 버리라’는 뜻입니다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자신의 포부나 자신의 뜻은 없습니다다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순종할 뿐인 것입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신 버림이 단지 재물을 버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억지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노년이 되어서라도 ‘내가 죽을 때 재물들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또 그렇게 전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린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자기 소원을 두고 살아가는 자신을 버리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베드로가 말하는 버림을 예수님이 말씀한 버림으로 간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버림이라는 행위를 행한 자기 자신이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그 버림의 행위를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진정한 버림의 길로 이끌어 가고자 하십니다그 길은 재물만을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버려야만 하는 길입니다말한 대로 주를 따르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한 버림의 의미라는 것을 안다면 설사 자신의 재산 전부를 기부했다고 해도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와 같이 ‘내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만약에 예수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나는 나 자신도 버리지 못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만 있을 뿐입니다이런 면에서 베드로는 진정으로 주를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낸 말을 한 것입니다그러면 오늘 본문에 있는 백배나 받는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이것은 내가 버린 것이 그대로 백배로 되돌아온다는 뜻이 아닙니다복은 그런 뻥튀기를 뜻하지 않습니다그러한 것이 버림이라면 아마도 우리 모두는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앞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한 버림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진정한 버림의 길이란 세상의 것을 점차 내 마음에서부터 놓아 버리고 나중에는 자신까지 놓아 버리는 자로 세우시는 일입니다그리고 그러한 신자는 그 길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나게 됩니다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에서의 관계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관계인 것입니다그것은 새로운 집이고새로운 전토이며 또 새로운 가족인 것입니다이것은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백배라는 말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이러한 풍성한 복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신자가 버림의 길을 간다고 해서 비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의 풍성한 것으로 채워지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즉 버리면 버릴수록 비어지는 것이 아니라 버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늘의 풍성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버린 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이것이 버림의 길인 것입니다.

 

3. 나중 된 자 먼저 된 자

오늘 본문 31절에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0:31)고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아버지와 배를 버리고 주를 따르는 것을 의로운 자신의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그러한 생각이 천국에서 누가 큰가라는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천국에서 크다고 여길 수 있는 모습이야 말로 오히려 작은 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 것입니다진정한 버림은 주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지 인간의 결단과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버림의 행위를 베드로처럼 자기의 의로 여기는 자는 나중 된다고 하는 것이며자신의 그 행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아는 자는 먼저 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천국에서 먼저 되는 사람은 스스로 버림으로써 예수님께 ‘내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아닙니다예수님에 의해서 버림의 길로 이끌림 받으면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하나하나 자기 손에서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생이 자기 계획과 생각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인생의 모든 것을 내 뜻이 아니라 나를 주관하시는 분의 뜻에 맡기고자 할 때 그것이 천국에 먼저 되는 것입니다즉 천국에서 먼저 되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행위를 내어 놓고 그 행위로 경쟁해서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자에게는 자신의 소중한 것이 하나하나 자신에게서 떠나가는 고통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나를 버림의 길로 이끌어 가시면서 예수님의 버림 받으심을 생각하게 하고삶의 모든 것을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자로 살게 하셔서 내세에 영생이라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하시는 사랑이심을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버리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하나님이 우리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려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버림의 길로 이끌어 가시면서 하늘의 풍성한 것으로 채우시는 것입니다이것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시며 또 우리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우리 모두가 이러한 주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오직 주의 뜻대로 하나하나 버려지고 세워져 가는 복된 인생임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베드로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하는 말에서 무엇을 알 수 있다    고 합니까?

2베드로의 주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는 그 버림이 예수님이 말씀하는 진정    한 버림이 아닌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주를 위해 버린 자는 ‘백 배’나 받는다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    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4. 예수님을 통해 알 수 있는 진정한 버림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버림의 의미를 아는 자에게는 어떤 증상이 있다고 합니까?

6. 주를 위해 버린 자는 백배나 받는다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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