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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

본문 /  10:35-40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35-40)

 

1. 인간의 욕망

오늘 본문에 37절에 보면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라는 청탁을 합니다야고보와 요한이 이러한 청탁을 하는 것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자신들에게는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은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러한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인간은 애당초 하나님 같이 된다는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은 존재들입니다한마디로 하면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외면하는 존재인 것입니다이러한 인간성은 아담의 후손즉 아담에게 속한 자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이것이 제자들에게서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만약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가 아니었다면 예수님께 그러한 부탁을 할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할 만한 공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결국 이들이 그러한 부탁을 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입니다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서도 얼마든지 발견되어지는 모습입니다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었고 또 많은 봉사를 하고 헌신하면서 착하게 살아왔으니까오늘 본문처럼 말하자면 예수님을 잘 믿고 열심히 따라 다녔으니까 그런 복을 누릴 자격이 있고 또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자격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복을 달라고 하는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따라다닌 것도 자신을 위해서였을 뿐 주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만약 신자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믿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어야만 할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항상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가지면서 그동안 자신이 행했던 믿음의 삶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개선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모든 것이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았을 뿐 예수님을 위해서 산 적이 없다고 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은 신자라는 명목을 동원하여 복을 구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을 만한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그저 우리는 날 위해서 교회를 다녔을 뿐이고날 위해서 기도했을 뿐이고날 위해서 봉사하는 척 했을 뿐인 것입니다바로 이러한 죄가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져 있다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드러나고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누구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할 말이 없도록 만들고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죄인인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그 거룩한 의 앞에서 어떻게 ‘내가 주를 위해 살았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예수님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 놓으셨는데 우리는 겨우 교회 다닌 것으로 나는 주를 위해 살았느니주를 위해 헌신 했느니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욕망 때문에 이미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이 가시는 길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면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고난과 죽으심이 있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예수님은 지난주 본문인 32절부터 보면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2-34)고 말씀하시면서 분명하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증거 하셨습니다예수님의 길이 이와 같은 십자가의 길이라면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의 길 역시 예수님의 고난을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올라가시는 예루살렘의 길을 고난의 길이 아닌 영광을 얻는 길로만 생각한 것입니다그래서 주께서 영광을 누리실 때에 그 좌편과 우편의 영광은 우리가 누리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은 신앙한다고 하는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똑같이 영광의 길만 생각합니다예수님을 믿으니 내 소원이 이루어지도 내 환경이 개선되어질 것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 간 것처럼 우리 또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셔야만 합니다이처럼 자기 영광만을 바라보고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라고 말씀합니다여기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알고 구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 자리는 제자들이 생각하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오히려 그 자리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으심을 함께 겪어야 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결국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따르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고삼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아주 멋진 헌신도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이방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에게서 과연 어떤 나라를 구하며 살아갑니까혹 천국은 그냥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일 뿐 우리가 진정으로 구하고 원하는 것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의 풍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나라는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그것이 곧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이방인과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몸은 예수님과 함께 할 뿐 그 인식의 전환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진정한 출애굽이란 몸만 주님을 따름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과 동일하게 하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 안에서의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는 길입니다자기 영광은 부인해야 하는 길이고오히려 주님이 받으신 고난과 죽으심에 순종하게 되는 것을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이 길은 분명 우리의 의지와 사고로는 갈 수가 없는 길입니다그래서 이 길은 참 믿음이 있는 신자들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신자에게 믿음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또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나 수단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신자에게 믿음은 다만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 가신 길에 함께 하기를 원하는 소원을 성취해주는 능력인 것입니다이러한 믿음은 이방인들의 종교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믿음만으로도 참된 것과 참되지 못한 것이 분별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믿음이 우리를 이러한 분별이 있는 신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신자는 자신이 믿는 예수님이 누구시고 또 세상에서 어떤 길을 가셨는가를 잊으면 안 됩니다이 점을 잊지 않아야 신자가 믿음으로 사는 삶의 길이 결코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신자는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신자라고 일컫고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말하면서도 신자로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갑니다그러면서도 우리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세상에서의 영광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예수님을 부르는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자라면 우리가 구할 것은 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처럼 세상에서의 영광의 자리가 아닙니다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고난을 받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음을 생각한다면 주님과 함께 하는 길에 세상의 영광은 약속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의 삶

믿음이 있는 신자라는 자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리이고 또 섬기고 희생해야 하는 자리입니다그러므로 신자는 바로 그러한 자리를 달라고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신자는 세상에서 힘을 가지고 그 힘으로 약자를 다스리고 지배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자리는 헛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구하는 자리임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그래서 참 믿음의 신자가 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사신 섬김의 자리에 앉아서 오직 예수님만을예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그리고 그 섬김만을 증거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자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의 길에 서 있는 신자인 것입니다신자가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복을 받고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이것은 결코 복음도 아니며 기독교도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이런 약속을 하시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다만 예수님이 당하신 것과 같은 미움과 배척과 고난이 있을 뿐임을 말씀하셨습니다그럼에도 그 길을 소원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이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세상에서 그 어떤 영광을 누리던 그 모든 것은 헛된 것일 뿐임을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의 두 제자의 요청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오늘 본문의 두 제자처럼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일 때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나 자신을 죽이는 능력으로 다가옴을 알아야만 합니다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로 설 수 있어야만 합니다그렇게 죽은 자로 섰을 때 모든 가능성과 능력은 주께 있음을 믿게 되는 것이고주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신자가 구해야 할 자리임을 알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누리는 신자로서 구해야할 바를 바르게 알고 구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서는 어떻게 나타나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것과 우리의 고백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예수님이 가시는 예루살렘의 길에 대한 제자들의 착각은 무엇이며 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6. 신자에게 믿음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7. 믿음이 있는 신자가 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어떠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까?

9.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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