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0,606
오늘 : 25
어제 : 280

페이지뷰

전체 : 78,737,115
오늘 : 209
어제 : 1,339
조회 수 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하나님의 사랑

본문 / 3:16-21

 

1. 잘못된 이해

오늘 본문을 읽을 때 누구나 다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고 하는 말씀을 가장 중요한 구절로 여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기독교의 중심 구절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뒤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16절의 한 구절에 하나님의 사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16절 하나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게 된다면 결국 사랑에 대해서 곡해하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 16절을 가지고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그 누구도 멸망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이 그들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으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주신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들만이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6절 한 구절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들의 생각과 상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생각해 볼 때 과연 그러한 말들이 옳으냐에 대해서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의 그 누구도 멸망 받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심판을 받는 것이라면 결국 심판받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이 누구에게 지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기 거부하는 인간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다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인간의 불신앙도 극복하고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명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셨다는 것이나 인간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심판하신다는 말들은 모두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의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장로교 교리를 말하는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만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도 자신들의 말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를 기어코 구원하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결국 믿고자 하는 우리들의 열심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서 구원하시려고 믿음을 선물로 주셨으니 우리는 선물로 받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의지가 합하여서 구원을 이루어낸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선택하고 구원하고자 한다고 해도 인간의 의지가 그에 부합되어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택은 실패된다는 결론이 되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7)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 역시 16절의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이 세상의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사실 본문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세상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왜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옥 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본문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인간의 불신앙에 패배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날 구원시키려고 해 봐라. 나는 예수 안 믿고, 구원 안 받는다는 인간의 완악함에 대해서 하나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 돼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10절부터 21절까지가 모두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16절이나 17절은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구절만 따로 떼어 말하는 것은 성경 해석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독 16절만 가장 중요한 말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성경을 잘못 대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대화에는 16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만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16절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인간과 심판

우리가 앞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니고데모는 율법학자로서 자기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거듭남 역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전혀 알 수 없는 신비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지키려고 하는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과연 니고데모에게 그러니까 너희가 독생자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믿음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짐작하게 해 주는 것이 오늘 본문 18절의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16절이 말씀이 아니라 18절의 이 말씀일 수 있습니다. 18절의 말씀은 심판을 받지 않을 자가 예수님을 안 믿어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판 속에 있는 자가 독생자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서 심판을 받을 자라는 사실이 확정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심판과 구원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 위치에 있다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을 심판과 구원의 중간 위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망, 즉 심판의 자리에 두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이미 죄는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믿음이 아니라 죄를 선택해서 그 결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이미 심판, 즉 사망에 처한 자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믿지 않아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얼른 생각할 때는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인간은 이미 심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서 심판을 받을 자가 분명하다는 것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인간을 구원받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심판 속에 있는 우리를 선택하셔서 구출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심판에서의 구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출의 대가는 독생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인간이 심판에서 구출되기 위해서는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명한 원칙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죄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신다면 하나님의 의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굳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을 실행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의 몫을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는 심판에서 구출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필히 심판을 언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에 있던 자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의지로 힘써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죄의 강함입니다.

그처럼 강한 죄의 사슬을 끊어 버리시고 우리를 구출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죄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강한 능력은 예수님의 피에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들의 윤리나 도덕 양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 되는 것은 오직 거듭남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이 심판 속에 있음을 아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심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음을 알 때에만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게 하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에서 확증하려고 합니다. 즉 자신의 환경이 좋아질 때,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은 우리의 환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서 확증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우리의 심판 안에서 확증되는 것입니다.

 

3. 신자의 삶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심판 가운데 버리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버림을 받으심으로 대신 우리가 구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네가 율법을 지킴으로서 심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심판에 버림을 받음으로 구출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이란 어두움에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세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부터 보면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3:19-21)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빛을 미워하는 자는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나오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악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무엇 때문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악한 행위를 미워하게 되고 반면에 그리스도의 행위를 따라 살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한 자에게서 보여지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행위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위로부터 났다는 진리를 증거하는 증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버려지심으로 인해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자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93 2023 11월 12일 / 요한복음 22. (요 4:39-42) 우리가 친히 듣고 앎이라 관리자 2023.11.12 11
692 2023 11월 12일 / 요한계시록 37. (계 10:1-11) 손에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 관리자 2023.11.12 9
691 2023 11월 5일 / 요한복음 21. (요 4:27-38) 예수님의 양식 관리자 2023.11.05 10
690 2023 11월 5일 / 요한계시록 36. (계 9:13-21)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관리자 2023.11.05 9
689 2023 10월 29일 / 요한계시록 35. (계 9:12) 계속되는 화 관리자 2023.10.29 12
688 2023 10월 22일 / 요한복음 20. (요 4:19-26) 영과 진리의 예배 관리자 2023.10.22 11
687 2023 10월 22일 / 요한계시록 34. (계 9:1-11) 사단의 권세 관리자 2023.10.22 14
686 2023 10월 15일 / 요한복음 19. (요 4:11-18) 그리스도에게 구할 것 관리자 2023.10.15 18
685 2023 10월 15일 / 요한계시록 33. (계 8:11-13) 하나님의 원칙 관리자 2023.10.15 12
684 2023 10월 8일 / 요한복음 18. (요 4:9-10)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관리자 2023.10.08 12
683 2023 10월 8일 / 요한계시록 32. (계 8:6-13) 천사가 나팔을 불매 관리자 2023.10.08 8
682 2023 10월 1일 / 요한계시록 31. (계 8:3-5) 성도의 기도 관리자 2023.10.01 45
681 2023 9월 24일 / 요한계시록 30. (계 8:1-2) 나 관리자 2023.09.24 13
680 2023 10월 17일 / 요한복음 17. (요 4:1-10) 사마리아 여인 관리자 2023.09.17 13
679 2023 9월 17일 / 요한계시록 29. (계 7:13-17) 환란에서 나온 자 관리자 2023.09.17 8
678 2023 9월 10일 / 요한복음 16. (요3:31-36) 위로 부터 오신 이 관리자 2023.09.10 9
677 2023 10월 10일 / 요한계시록 28. (계 7:9-12) 구원의 노래 관리자 2023.09.10 9
676 2023 9월 3일 / 요한복음 15. (요 3:22-30) 요한의 기쁨 관리자 2023.09.03 12
675 2023 9월 3일 / 요한계시록 27. (계 7:4-8) 인 맞은 관리자 2023.09.03 8
674 2023 8월 27일 / 요한계시록 26. (계 7:1*-3) 세상의 현 관리자 2023.08.27 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