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520,317
오늘 : 892
어제 : 1,379

페이지뷰

전체 : 80,202,712
오늘 : 3,049
어제 : 7,34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본문 / 21: 6- 8

 

1. 신자의 삶

신자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즉 신자의 모든 삶은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되어진 것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삶의 한 부분을 하나님에게 바치면 나머지는 자기를 위한 삶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의 십일조를 말하면서 하루 24시간 중에 2시간 40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하면서 그 시간에는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본다거나 아니면 봉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삶의 전부가 하나님을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부인하는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삶의 전부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할 때 그 말에 대해서 거부하고자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하루종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의문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루종일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한다면 회사 일이나 자기 일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역시 삶에서 자기 일과 하나님의 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회사에 다니고 장사하는 것들, 다시 말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고 살아가는 것은 자기 일이고, 교회와 관련되고 종교적인 행동과 연관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에서 자기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자기 일을 따로 생각한다면 그 순간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전서 10장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거창한 일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사가 설교하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한 영광을 위한 삶은 상상외로 간단합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영광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33절에 보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3)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은 무엇입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자기 유익보다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가 중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자기만 편하고 유익 되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예수님께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우선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날까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먹고 마시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고린도전서 10장의 내용으로 하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형제의 양심을 위해서는 그 자유도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회사에서든 어디에서든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누리는 결과임을 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로 삶을 내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고 감사하기보다는 삶에 치우쳐서 자기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모든 관심을 두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삶이 왜 주어졌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신자로서 마땅한 삶인지, 나의 삶이 지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삶을 산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믿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것은 믿는 자는 삶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신 삶이기 때문에 내 삶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이루었도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21:6)라고 말씀합니다. 알파와 오메가란 시작과 마지막, 즉 처음과 나중이란 의미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헬라어의 알파벳 처음이 '알파'이고 마지막이 '오메가'인 것을 보면, 알파와 오메가는 역시 처음과 나중의 표현으로 하는 말씀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처음에 '이루었도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말을 즐겨합니다. 하나님이 전면에 사람을 내세워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고 사람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을 지시하시면 인간이 모든 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사람을 들어서 일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고 있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즉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인간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분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며,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하고 성경을 볼 마음이 있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고백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것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기보다는 예수님을 세상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로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과 나중이라는 것은 구원이라는 한 부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원의 문제는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구원과 상관없이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란 처음부터 구원과 결부된 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역사의 존재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근원이고 마지막입니다. 역사에 처음과 마지막을 부여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역사를 마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 속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장 바른 태도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존재 의미가 하나님을 위한 것에 있는 것이지 인간을 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시작하시고 마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세상에 의미를 두거나 기대를 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기대를 걸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되고,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에 소망을 둡니다. 자신의 삶의 환경이 좋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점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의 뜻대로 세상을 만들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인생의 시작과 마침도 하나님에게 있음을 생각할 것입니다. 때문에 되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임을 알게 될 것이고, 어떤 삶에서도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산다면, 되어지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게 되고 불만족하게 됩니다. 자신의 뜻을 내세움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힘이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우린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3. 값없이 주리라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5장의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관계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관계에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수 샘물은 바로 이들의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목말라 하면 준다'는 어떤 거래적인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가령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음의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고 택한 자기백성에게 주어진 은총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자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씀에는 '내 백성은 믿게 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결국 믿음의 시작도 구원이라는 이룸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살아가는 것은 역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에 대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해서 목말라 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작하신 믿음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사야 55장에 보면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6-7)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값없이 생명수 샘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모든 것을 우리의 공로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나아와서 회개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목말라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의 결과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세상 끝날까지 살아가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7)고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라는 말은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에 대한 편지에서 계속 나옵니다. 이기는 자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세상이 어떠하든 그 세상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 때문에 항상 마음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김이며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이김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승리인 것입니까?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하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을 소유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수 샘물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고 말합니다. 이들은 결국 그 속에 믿음이 시작되지 않은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믿음이 없었다면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믿음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합당한 모습에 순종되어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힘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부름받은 신자로서 합당한 삶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믿음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증거 하는 도구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신자의 신앙생활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체인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말하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합니까?

 

4. 믿는 자의 삶과 믿지 않는 자의 삶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르다고 합니까?

 

5. 늘 본문에 알파와 오메가란 무슨 의미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6.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역사 속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장 바른 태도는 무엇이며 왜 그런 것입니까?

 

8. 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을 보는 삶과 보지 않는 삶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9. 성경에서 말씀하는 목 마르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10.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의 대하여 잘못된 이해와 바른 이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2. 기는 자란 어떤 자이며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왜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합니까?

 

13. 하나님께 부름받은 신자로서의 합당한 삶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 11월 10일 / (롬 4:1-8) 참 믿음과 거짓 믿음

    Date2024.11.10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204
    Read More
  2. 11월 3일 / 요한복음 57. (요 (9:: 39-41) 본다고 하는 죄 new

    Date2024.11.03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863
    Read More
  3. 11월 3일 / (롬 6:1-4) 하나님과 죄

    Date2024.11.03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965
    Read More
  4. 10월 27일 / (요일 1:8-10) 진리와 죄

    Date2024.10.27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79
    Read More
  5. 10월 20일 / 요한복음 56. (요 9:24-38) 눈을 뜨고 보게 된 것

    Date2024.10.20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293
    Read More
  6. 10월 20일 / 요한계시록 81. (계 22:16-21)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Date2024.10.20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552
    Read More
  7. 10월 13일 / 요한복음 55. (요 9:13-34) 눈 뜬 자의 경험

    Date2024.10.13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812
    Read More
  8. 10월 13일 / 요한계시록 80. (계 22: 8-15)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Date2024.10.13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100
    Read More
  9. 10월 6일/ 요한복음 54. (요 9: 1-12) 실로암으로

    Date2024.10.07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89
    Read More
  10. 10월 6일/ 요한계시록79. (계22: 6-7)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

    Date2024.10.07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612
    Read More
  11. 9월 28일 / 요한계시록 78. (계 22:1-5) 생명수의 강

    Date2024.09.29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09
    Read More
  12. 9월 22일 / 요한복음 53. (요 8:42-59) 유대인과 하나님의 말씀

    Date2024.09.22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258
    Read More
  13. 9월 22일 / 요한계시록 77. (계 21:9-27) 어린양의 아내

    Date2024.09.22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782
    Read More
  14. 9월 15일 / 요한계시록 76. (계 21:6-8)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

    Date2024.09.15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72
    Read More
  15. 9월 8일 / 요한복음 52. (요 8:31-41)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Date2024.09.08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24
    Read More
  16. 9월 8일 / 요한계시록 75. (계 21:1-8) 하나님의 장막

    Date2024.09.08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545
    Read More
  17. 9월 1일 / 요한복음 51. (요 8:21-30)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Date2024.09.01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861
    Read More
  18. 9월 1일 / 요한계시록 74. (계 21:1-8)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Date2024.09.01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95
    Read More
  19. 8월 25일 / 요한계시록 73. (계 21:1-5) 새 하늘과 새 땅

    Date2024.08.25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71
    Read More
  20. 8월 18일 / 요한계시록 72, (계 20:11-15) 흰 보좌의 심판

    Date2024.08.18 Category2024 By관리자 Views121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