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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누가 천국 백성인가

본문 / 5: 1- 3

 

1. 산상수훈은 윤리가 아니다

오늘부터 함께 나눌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흔히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상수훈은 신자를 신자답게 세워줄 수 있는 고차원적인 윤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예수님의 말씀은 윤리적 계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마태복음 4장에 보면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4:23-25)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1절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5:1)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 앞에 모인 무리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병이 나은 자, 아니면 모든 병을 고치시는 신비한 능력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인 자들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해서 입을 열어 가르치신 예수님의 첫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입니다.

예수께 모인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거나 듣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좇아 모였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자가 아니고, 천국 백성이 아닙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의 사람, 즉 천국 백성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은 천국 백성다운 뭔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인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산상수훈을 윤리적인 계명으로 오해하게 되면 결국 천국 백성다운 것은 윤리적인 실천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윤리와 도덕으로 바르게 사는 것이 곧 천국 백성다운 모습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상수훈에서 윤리적인 삶을 생각하고, 그것을 천국 백성다운 모습으로 여긴다면 문제는 천국 백성, 즉 신자와 신자 아닌 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삶은 세상도 가르치는 덕목이고, 또한 모든 종교도 나름대로의 도덕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천국 백성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뜻도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해 져라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얻을 것이다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심령이 가난 한 자와 가난하지 않은 자 둘로 나누고, 천국은 심령이 가난 한 자의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천국에 가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과 열심은 결국 허사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심령이 가난해지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열심도 있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심령이 가난해지기 위한 노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심령의 가난은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심령의 가난을 이룰 수 없는 악으로 뭉쳐 있기 때문입니다.

 

2. 세상에 임한 천국과 윤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공생애 시작의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라고 말씀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10절에서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10)고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7장에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의 중심에는 누가 천국 백성인가?’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실천하면 죽어서 천국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으로 인해 이 세상에 임할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임할 천국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천국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도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천국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망했던 지상천국은 메시아가 이루실 다윗왕국의 건설입니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제일가는 국가로 굳게 세우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모였던 사람들 중에는 모든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로 여기면서 지상낙원을 꿈꾸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환상을 깨뜨리면서 예수님이 이루실 천국이 어떤 나라이며 또 그 나라의 백성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생존해 있을 때 신앙생활 잘하고 착하게 살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죽어서도 천국 가는 복을 누리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천국을 상식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대된 주장을 하는 것이 여호와 증인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천국은 없다고 하고 지상에 이루어질 천국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십사만 사천 명만 들어갈 것인데, 그들이 바로 여호와 증인인 자신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죽은 다음이 아닌 지금 살아있는 동안 세상에 임할 천국을 말하는 것이니 여호와 증인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세상에 임한 천국을 말하는 것은, 하늘의 천국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늘의 천국은 예수님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나타날 완성된 나라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임한 천국은 과연 누가 진정한 천국 백성인가를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한 예수님의 세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증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상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싫어하고 피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속성을 가진 나라로 임한 것입니다.

소위 팔복이라고 말하는 12절까지의 내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세상이 복으로 환영하는 내용들이 그 가운데 있습니까? 심령의 가난이나, 온유,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하는 것, 긍휼히 여기는 것들은 고상한 인격적인 차원으로 해석해서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통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을 과연 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아마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복으로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 세계에 속한 신자만이 장차 완성된 생명의 나라에 영원히 거할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결국 천국 백성은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완전히 새롭게 된 사람을 뜻합니다.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의 세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의 세계를 기뻐하고 영접한다면 그것은 가치관이 새롭게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이 전혀 귀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귀하게 보이는 가치관이 새롭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의 세계를 기뻐하고, 그 세계의 백성으로 참여되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산상수훈을 세상의 윤리적인 방향으로 해석을 하고 또 윤리적인 실천을 교훈하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들이 그러한 잘못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신자들 역시 그러한 해석과 가르침을 원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가는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외적으로 드러난 삶의 모습과 행동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실천은 자기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산상수훈은 신자가 갖고 있는 윤리적인 자긍심까지 모두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인 실천이 천국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가를 심령 깊이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키시는 민족은 이스라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민족도 이스라엘이 유일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당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종교적인 열심과 실천이 있고 또 세상이 칭찬하는 높은 윤리와 도덕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야말로 천국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열심과 그런 실천도 주님의 산상수훈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누가 천국 백성인가?

그러면 과연 누가 천국 백성입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한 자신의 것은 자신을 천국 백성으로 간주하게 할 만한 그 어떤 의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스스로 의롭고 선한 것으로 여기는 자신의 열심과 선함 그리고 윤리적인 실천과 윤리적인 삶, 그 모든 것들이 주님 앞에서 부인되는 사람이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천국은 오직 의만을 용납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천국이 용납하는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의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신자가 할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의를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심령을 심령의 가난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다면 그 심령은 자신의 의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자신이 의에 대해 부인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의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를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산상수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선명하게 우리 앞에 드러나게 합니다. 가령 간음을 행하지 않은 사람은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대해 떳떳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28)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대하게 되면 우리 자신 역시 간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고, 그래서 결국 내가 간음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의가 되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이러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신자의 마음은 예수님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예수님에게로 향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희망이 예수님에게만 있고, 예수님이 없는 자신은 비참함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에게는 더 이상 윤리적 교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윤리와 도덕적 교훈을 배우지 않아도 세상에서 배운 윤리와 도덕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다못해 초등학교에서 배운 도덕 생활대로만 살아도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지금껏 세상이 교훈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윤리를 교훈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을 가만히 들어보면 모두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사랑하라’ ‘이웃을 도와주라’ ‘비판하지 말라’ ‘타인의 허물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보라 등등 교회가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세상의 윤리보다 더 수준 높은 윤리를 교훈하기 위해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인간이 붙들고 있는 의로움과 선함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헛되며 천국과 거리가 먼 것들인가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오신 한 ’,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인 것이고 또 예수님의 의를 믿는 이것이 곧 세상에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 의는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만을 소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합니다. 이런 신자야말로 복의 세계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나오십니까? 신자라면 예수님을 향한 소망과 기대와 소원이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교회를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종교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종교를 즐기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늘로 가셨다고 해서 이 세상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들도 보면 기존의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자가 모인 교회라고 해서 다툼과 경쟁 등, 세상의 속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다른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자와 그 의를 믿지 않는 자로 구분되고, 의를 믿는 자를 성경은 천국 백성이라고 일컫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의는 모두 부인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로우심만이 우리의 심령에 남아 하나님 보시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의 가르침인 산상수훈을 보는 우리의 생각은 무엇이며 또 그 생각이 잘못 된 이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심령의 가난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예수님께 모여든 자들 앞에서 천국 선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4. 기독교가 말하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닌 지금의 천국을 말하는 것이 지상천국을 주장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적 가치관으로는 어떤 나라이며 또 그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6. 신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또 그런 신자들에게 산상수훈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7. 주님이 선포하신 천국 백성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8. 심령의 가난은 무엇이며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9. 신자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을 때는 언제이고 또 그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신자와 불신자가 무엇이 같으며 또 무엇이 다르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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