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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우리가 보게 되는 하나님 나라

본문 /  막 9: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

 

1. 사탄의 말

지난주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은 이 말씀 하나로 제자들은 물론이고 당시 자신들의 상상과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헛된 기대를 무너뜨려 버리셨습니다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헛된 생각이나 꿈과 기대를 모두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또한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지금 우리들의 귀에는 십자가라는 말이 구원의 의미로 들리겠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반국가적인 죄인이나 흉악한 죄를 지은 자들을 사형시키는 형틀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죽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사람이 숨을 쉬며 살아있는 이상 인간은 자신을 향한 마음을 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생명에 속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그래서 지난주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5)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그런데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는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까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까물론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실 것입니다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길입니다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죽게 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그렇게 십자가에서 자기 죽음을 경험한 사람만이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신자를 죽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지 신자가 사는 길로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그런데 오늘날 말씀을 대하는 우리들은 언제나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인간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악과 사건 이후에 죄인이 되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절대적인 이기주의자가 된 것입니다자기 영광과 자기 성공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오직 자신을 살리기 위한 용도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결국 우리 자신을 죽이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정 반대인 살리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사탄의 말인 것입니다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인간 중심의 해석을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은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는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신자와 하나님 나라

오늘 본문을 보면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라고 말씀합니다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제자들 중에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합니다예수님의 이 말씀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만 합니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입니다그러므로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몸의 죽음즉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닌 십자가에서의 자기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몸은 살아있으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고 또 그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에게만 보일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이 바로 신자라는 것입니다그러면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한 신자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겠습니까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금은보화로 치장된 호화롭고 화려한 나라이겠습니까아닙니다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없습니다금은보화는 이 세상에서나 가치 있을 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그럼에도 성경에서 하늘나라를 금은보화와 같은 것으로 표현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도구 삼아 하늘나라의 영광됨을 표현하고자하는 것일 뿐입니다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입니다그리고 이 생명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존귀하고 영광된 것입니다그러한 생명의 가치를 알아보는 신자라면 그 사람이야 말로 자기가 부인된 사람일 것이고 또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기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가치관의 변화인 것입니다이러한 신자는 하나님으로 인해 부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가는 그런 좋은 곳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신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고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주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볼 수도 없지만세상의 시각에서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할 수밖에 없는 나라인 것입니다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스스로 신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고난이 있고자기 부인이 있고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그러한 나라가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하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한 신자에게만은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야 말로 가장 복되고 존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넉넉하고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세상이 뭐라 하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세상의 소유가 있고 없음에 주눅 들지 아니하고 또 부러워하지도 아니하며 오직 하늘 생명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신자에게만 보이는 복된 나라인 것입니다결국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제자들을 어떠한 길로 이끌어 가실지를 암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그것은 곧 십자가의 길이며죽는 길인 것입니다앞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오신 메시아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셔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세우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 왔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나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당시의 제자들은 이해하지를 못하였습니다그래서 제자들도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십자가의 현장에서 모두 다 살고자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한 것입니다결국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을 바르게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이 오심으로써 가능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이처럼 아무리 주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말씀으로 다가오기 십상입니다내 몸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그야말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신비이고 비밀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리고 그 이해는 오직 신자에게만 허락되어진 은혜이고 복인 것입니다.

 

3. 어리석음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16절부터 보면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6-21)고 합니다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어서 많은 소출을 거뒀습니다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소출을 거둔 부자는 속으로 기존의 창고를 허물고 크게 지어서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19절에 보면 기쁨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고 말합니다한마디로 자신을 위한 노후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여생은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면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그 이유는 그렇게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는 그 부자의 영혼을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이 데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이것이 부자의 어리석음이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어리석음인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창고에 가득히 쌓은 재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잊고 사는 것입니다세상은 돈이 곧 부요의 기준입니다그런데 이상하게 돈을 가득히 쌓아둔다고 해도 세상이 볼 때는 부요한 자일지는 모르나 정작 자신은 배부르지가 않고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여전히 배고픈 상태인 것입니다이것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하나님은 이런 우리즉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우리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고 갑니다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악함을 보게 하시고 죽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그리고 무엇이 참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하며진정으로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십니다어리석은 부자가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바라보며 남은여생을 편하게 살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겠습니까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상은 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느냐는 것입니다어리석은 부자의 문제는 자신만을 바라봤다는 것에 있습니다이것이 죄입니다십자가는 이러한 우리를 이끌어서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자가 아닌 예수님의 죄 없는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게 합니다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게 하십니다그 은혜가 나를 살리셨음을 알게 하고 또 그 은혜가 여전히 나를 살게 하심을 깨닫게 합니다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임에도 그런 우리를 십자가 앞에 세워 그 은혜만을 바라보게 합니다이것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시며 또 그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요한계시록에 보면 너무나 다른 두 교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3:17)고 합니다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칭 부자 교회입니다그래서 남들도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서 부러워 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눈멀고 벌거벗고 가난한 교회라고 하십니다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2:9)고 합니다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입니다그래서 누구에게도 좋아 보이거나 부러워할만한 교회가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합니다이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시각과 생각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사람들 보기에 좋은 것과 부요한 것만 꿈꾸며 살아갑니다이제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과 가치관으로 우리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그러한 자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이것만이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감사가 되는 아름답고 복된 예원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은 어떻게 다릅니까?

3. 늘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까?

4.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또 성경은 왜 그렇게 묘사한다고 합니까?

5. 십자가에서 자기 죽음을 경험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은 무엇입니까?

6.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시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누가복음 12장의 등장하는 부자가 어리석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우리가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는 의미와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9. 계시록에 등장하는 두 교회를 보며 알게 되는 하나님과 우리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0.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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