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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삶

본문 / 9:38-41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9:38-41)

 

1. 신자의 고백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논쟁한 제자들의 의식구조는 세상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논쟁을 했다는 것은 서로가 자신의 공로를 주장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게 된 것은 모든 행동을 자신에게서 나온 자기 행동으로 인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의식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의 신자에게서는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라는 고백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주님을 핍박한 것 밖에 없는데, 그런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삼으신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에 있게 되었음을 알고 믿기 때문에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신자가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도 예레미야 24장에 보면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4:5-7)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게 하시지만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잘 돌보시고 다시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잡혀가게 하시고, 돌보시고, 다시 약속의 땅에 거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이런 마음을 받은 신자만이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인 중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게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믿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로 살고 있을 뿐인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셔서 신자 되게 하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신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감사와 찬송 듣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란 자신의 행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은혜가 나를 살렸고 또 살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은혜만을 높이고 감사와 찬양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세계에서는 누가 크냐라는 논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공로가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신자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2. 의식구조

그런데 본문에 보면 또 하나의 세상의 의식구조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파벌의식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면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9:38)라고 말합니다

  제자인 요한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행하는데 그를 보니 우리를 따르지 않음으로 그 일을 금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앞에서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자인 요한에게는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제자도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행하는 것에 대하여 시기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인 자신들이 행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행했다는 것 자체가 제자인 자신들의 체면과도 연관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아니한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에 대하여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금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 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권리나 판권처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즉 제자들은 파벌의식에 따른 집단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구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26.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11:26-28)라고 합니다

  여기에도 보면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에게 영이 임하여 그들이 진중에서 예언을 할 때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금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 이유는 예언은 오직 자신이 모시는 모세만이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계속 백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예언하는 것을 위험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도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오직 모세에게만 향하던 백성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모세는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는 말을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는 모든 백성에게 영을 주셔서 모두가 선지자 되게 하셨다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홀로 선지자로 대접받고 높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드러낸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모세만을 바라봤기에 다른 자의 예언을 금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고, 모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봤기에 그러한 말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말하는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9:39-40)고 말씀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면 어쨌든 그가 주를 비방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주를 반대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금하지 말라는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면 그가 의지하는 분은 주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따라서 그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는 주가 위대한 분임을 증거해야 자신의 능력도 참된 것으로 인정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만약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행하였으면서 주를 비방하고 반대한다면 그가 의지한 주의 이름은 뭐가 되겠습니까? 따라서 자신을 위해서도 주의 이름을 비방하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주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주의 편에 서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금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입장만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지 않는 외부인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게 되면, 결국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력이 드러난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앞세움으로 인해서 금하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도 보면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12-17)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붙들려 옥에 갇혀 있을 때 그때를 틈타서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내용이 있습니다. 평소에 바울에 대해 투기와 시기의 마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바울이 옥에 갇힌 틈을 타 하나님을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울에 대한 투기와 분쟁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고 말함으로써 모든 관심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가령 어느 교회가 교인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를 한다고 합시다. 그러자 앞에 위치한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저 교회가 전도를 열심히 하면 우리 교회에 피해가 되니까 우리는 저 교회보다 더 열심히 전도를 하자고 말합니다. 그때 목사가 저 교회가 우리 교회보다 더 크게 부흥되기 위해 전도를 한다고 해도 결국 증거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그것으로 기뻐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고, 우리는 저들보다 더 열심히 전도해서 더 큰 교회로 만듭시다라고 하면서 전도로 경쟁을 한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보다는 교회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보다는 자신의 교회가 부흥되고 그 이름이 높임 받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가 서로 상대방을 경쟁적 관계에 있는 적으로 견제를 하는 것은 복음에서 완전히 벗어난 세상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로 신자 된 우리는 이러한 세상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는 거룩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 속한 자

오늘 본문 41절을 보면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9:41)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그 한 가지 사실만을 가지고 제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을 한다면 그것이 곧 천국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사실 하나만을 본다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면 제자들의 출신 성분이나 가문 고향 등등을 따지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믿습니까?’라는 물음에 라는 대답 하나면 족합니다. 신자의 관계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관계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내 성격과 맞다 안 맞다라든가 또는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라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사람이 모였을 때 다른 것 보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 하나 때문에 물 한 그릇을 대접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즉 내 자신이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서는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만으로 대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세상은 외적인 것을 기준으로 파벌이 존재하고 집단 이기심이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교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에서는 주님만을 높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하면서 함께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세상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쓸모없는 것으로 인해 무너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서도 어리석게 누가 크냐는 경쟁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주께 속했다는 것은 굉장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가 우리에게 생명이 있게 하셨고 또 지금도 우리를 그 생명 가운데 살게 하며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누림으로 범사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세상에 속한 자와 주께 속한 자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다르게 드러난다고 합니까?

2. 신자들에게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라는 고백이 가능한 까닭과 또 그런 자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증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제자들이 귀신을 쫓고 있는 다른 이에게 하지 말라고 금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민수기에서 두 사람이 예언하는 것을 여호수아가 금해 달라고 요청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여호수아의 요청에 대한 모세의 답은 무엇이며 또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제자 요한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과 그런 말씀을 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혔을 때에 나타난 두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8. 울은 그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며 또 그 일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9. 제자들에게 물 한 그릇이라고 대접하는 것이 천국에 속한 모습이라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0. 신자가 누리는 최고의 은혜와 감사와 찬양의 제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1.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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