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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생존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

본문 /  막 8:34-38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8:34-38)

 

1. 설교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답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리고 베드로의 이 답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왜냐하면 주는 분명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치셨을 때에 예수님을 만류합니다그리고 그로 인해 예수님께 사탄이라고 하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피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베드로는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가 가셔야 하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길을 만류한 것입니다그것은 베드로가 유대교적 메시아 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즉 베드로의 고백은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아가 되어 달라고 하는 육체적인 욕망을 피력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그것은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제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전체 그리고 오늘날 주를 믿는 모든 이들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입니다예수님에게서 고난 받은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입니다그동안 예수님이 보여주신 능력을 본다면 충분히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로서의 일을 해 주실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그렇게 본다면 베드로가 고백했던 그리스도는 유대교적 관점에서 탄생된 다른 그리스도일 뿐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제자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는 자신들을 살려주기 위해 오신 분이었습니다자신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로마로부터 해방을 주시고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스라엘로 세워주실 능력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입니다예수님을 바로 그러한 분으로 여겼는데그러한 분이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에 대해 말씀하시니 만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예수님은 분명 죽음에 처한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하지만 우리가 처한 죽음의 현실은 죄로 인한 영원한 사망을 뜻하는 것이지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이고 외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처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죄 문제의 해결 밖에 없습니다그 일을 예수님이 이루시기위해 세상에 오셨고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에 보면 고난 받은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아를 기대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3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4-35)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 고난이 불가피하다는 것과 또 그 고난을 통해서만 드러나게 될 예수님의 영광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당황스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살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결국은 우리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니 우리 또한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결국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목숨을 구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즉 생존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그래서 세상에서 좋다고 또 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이 곧 예수님과의 생명의 관계에서는 멀어지는 것이고 또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자기 부인

베드로가 생각하고 있던 예수님도 자기 목숨을 구원해주기 위해 오신 분이었습니다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베드로의 고백에는 ‘예수님은 나의 목숨을 구원해 주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베드로는 이처럼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메시아를 기대했기 때문에 고난과 함께 죽으시는 메시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자신의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고난과 죽으심의 길을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만류한 것입니다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물은 유대 관리가 있습니다그는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18)라고 묻습니다이 유대 관리 역시 자신의 구원에 관심을 둔 사람입니다오늘날 우리의 관심 또한 오직 우리의 구원뿐입니다그런 자에게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8:25)고 하십니다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그들에게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18:27)고 하십니다구원은 인간의 능력과 열심 그리고 그 어떤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즉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자 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자기 구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이처럼 자기 관심사에만 관심하고 또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의 특징은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예수님께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설사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안다고 해도 그것조차도 자신을 살리는 혜택으로만 바라볼 뿐입니다다시 말해서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로 나를 부르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알게 하신 모든 것이 자신을 십자가를 증거하는 도구로 삼으신 뜻에 의한 것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오직 자신을 살리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당시 제자들이었고 오늘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합니다그런데 과연 누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이렇게 내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이것은 우리의 각오나 결단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왜냐하면 인간의 본능은 오직 자신이 사는 길로만 달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사는 본능을 초월하여 오직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자로 만드는 능력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만 있습니다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그러한 사람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신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서 생명을 보게 됩니다그리고 그 생명은 세상에서의 목숨과는 비할 수 없는 영광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결국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됨으로써 그 가치를 따라 살게 되는 것이 신자이고이러한 신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한 인생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이 자기가 부인된 상태인 것입니다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 뜻을 선포하시는 것이고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앞으로의 미래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길로 인도 받을 것임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그렇게 만들어 내신다는 것이고신자는 예수님의 그 뜻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맡겨 버리는 사람인 것입니다신앙은 예수님의 존귀하심과 그 생명에 마음이 붙들려서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앙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자신의 목숨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에 살고 죽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관에 맡기고 자신은 오직 존귀하신 예수님만을 좇고자 하게 됩니다이것이 주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자기가 부인된 신자들의 모습이고 삶인 것입니다.

 

3. 신자의 삶

이러한 시각에서 오늘날의 교회를 본다면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신앙과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라면 크고 적음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예수님의 이름이 존귀하기 때문에 그 이름만으로도 교회는 이미 존귀한 모임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교회가 서로 큰 교회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에 있고서로 자기 교회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열심이라면 이것은 세상과 다를 없는 인간 단체에 불과한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이 곧 죽는 길인 것입니다우리 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이 죽는 길에 서 있는 것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진심으로 존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단지 세상으로부터 높임 받고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이러한 모습이 바로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까닭인 것입니다신자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를 안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유대 관원처럼 자기 구원을 위해 방법을 배우려고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생명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또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이러한 신자는 예수님에게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의 형편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게 하고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게 합니다이것이 곧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믿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십자가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고 고난도 피하고 싶고 오직 항상 형통한 삶만 주어지기를 고대하면서 자신의 생존에만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정말 엉터리 같은 우리들에게 찾아 오셔서 쉬지 않고 수고하시고 일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에게 두게 하시는 그 지독하신 하나님의 고집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가장 존귀한 분으로 자리하게 하시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는 백성으로 또 하나님의 증거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신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과 일하심을 찬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 38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8:38)고 말씀합니다믿음은 신자의 눈에 보이는 삶과 이 시대에 힘이 되지 못하는 예수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로 만듭니다믿음이 우리를 이러한 신자로 굳게 세우고 예수님에게서 생존이 아니라 생명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갑니다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그리하여 오늘도 또 앞으로도 주를 바라봄이 우리의 생존에 묶여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주의 거룩한 생명주심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자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의 소망이심을 알아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고백은 우리들의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합니까?

2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구원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3. 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이 믿는 우리에게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관심은 무엇이며 또 그런 자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예수님이 주신 구원과 생명이 우리 안에 이루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늘 본문의 자기 부인과 복음을 위한 신자의 삶에 대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8. 신자에게 은혜로 주어진 믿음의 능력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9.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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