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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서기관 믿음과 과부의 믿음

본문 /  12:35-44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12:35-44)

 

1. 서기관과 과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과부를 등장시켜서 말씀을 하십니다이미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과부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이 아닙니다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으로서 아예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믿음에 있어서도 서기관은 존경을 받는 부류이지나과부는 무시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그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것은(지금도 거의 마찬가지겠지만율법을 잘 지키고 실천하는 것을 믿음이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먹고 살기에도 힘든 과부가 서기관만큼의 외적인 실천을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오늘 본문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시면서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12:40)고 말씀하시고, 44절에 보면 과부에 대해서는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12:44)고 하시면서 인정을 하십니다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서기관과 과부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물론 그렇다고 다른 점을 알아서 과부처럼 실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과부에 대하여 말씀하신 ‘구차한 가운데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는 믿음’을 우리는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물론 억지로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과부의 그러한 헌금행위만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과부에게 그 헌금행위를 있게 한 과부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과부처럼 억지로 그 행위를 만들어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다고 해도 오늘 본문의 과부와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은 아셔야만 할 것입니다그 당시에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유대교에서는 제사장장로와 함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므로 유대사회에서는 존경과 대접을 받는 사람이 바로 서기관이기도 한 것입니다이런 서기관들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접받는 것을 매우 즐겼습니다그래서 자신이 서기관임을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문안을 받았고 또 회당에 가면 상좌에 앉고잔치 집에 가서도 상석에 앉음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면서 즐겼던 것입니다예수님께서 그런 이들을 삼가라고 하시는 것은서기관들이 곧 구원 받지 못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서기관이 자신의 높음을 즐기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것은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구약 성경에 보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하나님을 만난선지자 이사야의 모습이 있습니다이사야서 6장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이사야 선지자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목격했을 때 인간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입니다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함과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자신의 높음을 자랑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오히려 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증거하게 될 뿐인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위기는 서기관처럼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실천한 사람을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존경한 것입니다따라서 자연히 서기관과 같이 율법에 철저하지 못한 과부와 같은 사람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러한 분위기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대개는 목사를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존경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목사는 서기관처럼 높임과 대접받는 것을 즐기고 또 어딜 가든 상석이 당연히 목사의 자리라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이러한 목사의 눈에는 세상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보일 뿐오늘 본문의 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이것이 바로 예수 밖에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2. 과부의 헌금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서기관을 삼가라고 하시고 그들의 받는 판결이 더 중하다고 하시는 것은서기관들이 행하는 것과 같은 거룩과 경건은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심지어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음을 오늘 본문에 과부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오늘 본문 41절부터 보면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12:41-44)고 말씀합니다과부의 헌금 액수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에 불과합니다여기서 말씀하는 한 고드란트는 지금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몇 천원에 불과한 액수에 지나지 않습니다굳이 액수로 따지면 아주 적고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서는 ‘호리’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과부의 헌금을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헌금으로 여기십니다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자기 소유에서 아주 적은 액수를 넣었겠지만 이 과부는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은 ‘나는 굶어 죽어도 좋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과부가 자신의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남겨 놓고 헌금을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오늘 본문의 과부는 자신의 생존은 전혀 생각지 않고 하나님께 헌금한 것입니다그래서 생활비 전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오늘 본문의 과부와 같은 헌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헌금을 해왔을 것입니다그런데 그 수많은 헌금을 하면서도 오늘 본문의 과부와 같이 ‘나는 굶어 죽어도 좋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금한 적이 우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혹 있었다면 주의 은혜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없을 것입니다오히려 헌금을 하면서 뭔가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오늘날의 교회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 좋은 것으로 선동하면서 빚을 내서라도 헌금을 하게하고 또 집을 팔아서라도 헌금을 강요하면서 그것을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말하며 가르치는 것은 오늘 본문의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또한 오늘날의 교회가 오늘 본문의 과부의 헌금을 이용해서 생활비 전부를 넣는 헌금을 독려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교인의 것을 갈취하려 하는 악한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교회가 헌금을 강요하면서 외치는 것은 ‘복을 받으려면 바쳐라’는 것입니다바치지도 않은 사람에게 복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로써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바치면서 복이 주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그런 우리들의 마음이 오늘 본문의 과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예수님은 신자로 하여금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과부의 헌금은 생활비 전부를 넣는 헌금이 헌금답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함이 아닙니다오늘 본문의 과부는 예수님 앞에서는 자기 생존은 의미가 없음을 알았습니다그리고 그것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으로써 나타낸 것입니다과부는 그 마음이 예수님에게 이끌린 사람입니다그래서 자신의 생존은 도외시하고 생활비 전부를 헌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하지만 서기관은 그 마음이 자신에게 이끌려 사는 사람입니다자신의 높음과 자기 자랑을 즐기며 살았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 존재입니까과연 우리들의 마음이 무엇에 이끌려 살아갑니까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님보다는 항상 자기 생존의 문제에 이끌려 살며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성공에 마음 두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이러한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간다는 것을 당연시 여길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그런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또 인간을 실체를 알게 되면그런 인간이 천국 간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실감하게 됩니다그래서 우리를 천국 가도록 돕는 인간의 행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그래서 오직 주님의 의만 바라보는 것이 신자이고 또 그런 신자만이 주님에게로 마음이 이끌리는 것입니다이러한 신자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의 신령한 것을 받았고 또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님께 내어 놓기 위해 주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더 받으려고 서는 자들이 아니라오늘 본문의 과부처럼 내어 놓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자들이 신자인 것입니다물론 여기서 내어 놓는다는 것이 단지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면서 어떤 형편에서도 예수님의 의와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곧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이고이것을 성경에서는 헌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신자의 자연스러운 삶이고 반응인 것입니다.

 

3. 믿음의 헌금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12:35)고 묻습니다이 말은 결국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다윗의 자손은 다윗의 혈통적 후손이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게서 다윗시대와 같은 강한 이스라엘을 기대한 것입니다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던 때는 다윗이 왕이었을 때입니다다윗은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습니다그러므로 그때야 말로 이스라엘은 가장 왕성하고 강했습니다그래서 서기관이 생각한 다윗의 자손은 다윗의 영웅적인 힘을 물려받아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였고그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예전의 이스라엘의 영화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12:36-37)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은 다윗도 그리스도를 주로 불렀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기대하는 왕으로 오시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그리스도는 인간의 바람과는 달리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가장 힘없고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우리는 예수님의 그러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이것이 놀라운 기적이며 은총인 것입니다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과 순종을 바라보며 자신의 전부를 내어 놓으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이 믿음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떤 신분과 어떤 위치에 있든 그것을 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다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의만 바라보고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그렇게 주만 바라보는 자가 헌금을 하면서도 오늘 본문의 과부의 믿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바쳤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주께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이런 믿음이 있는 그가 바로 구원에 합당한 신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서기관과 같이 마음이 내 자신에게 이끌려 사는 자입니까아니면 과부처럼 오직 마음이 예수님께 이끌린 자입니까자기를 자랑합니까아니면 예수님만을 자랑합니까오늘도 주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우리의 속을 들키시기를 바랍니다그래서 주께 무릎 꿇고 주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과부에 대한 평가와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과부에 헌금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우리가 그런 헌금을 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당시의 서기관들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시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등장시킨 과부와 서기관은 어떻게 다른 사람이라고 합니까?

6. 님께로 마음이 이끌린 자는 어떠한 자이며 또 그런 자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7.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이 기다린 그리스도는 어떠한 그리스도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님을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9. 하나님이 허락하신 참 된 믿음은 우리를 어떠한 자로 세워 가신다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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