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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말라버린 무화과나무

본문 /  11:20-25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11:20-25)

 

1. 본문 내용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지난 시간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열매를 얻고자 무화과나무를 찾았지만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11:14)고 하는 저주를 한 내용에 대해서 보았습니다그리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내용입니다오늘 본문에 보면 그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 사실을 말하자 예수님은 22.~~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11:22-23)고 말씀합니다이 말씀이 우리 생각에는 ‘너희도 의심치 않는 믿음만 있다면 말로도 이런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더군다나 오늘 본문 24절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4)는 말씀은 ‘믿고 기도하면 다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의 옳음을 뒷받침해주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이어지는 오늘 본문 25절에서는 갑자기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11:25)는 말씀을 하십니다이 말씀은 앞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용서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는 ‘믿고 기도하면 다 된다’는 방식의 약속은 없다는 것입니다흔히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하지만인간들에게 있어 의심하지 않는 기도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가령 우리가 ‘산을 바다에 던져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했을 때 우리 마음에 아무런 의심이 없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물론 그러한 기도를 할 사람도 없겠지만 또 그러한 기도를 한다고 해도 누구나 ‘기도한 대로 될까?라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이것은 우리의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상식에서는 산이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신자들로 하여금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내용의 말씀이 아닙니다그렇다고 기도하면 다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예수님은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달리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러한 예수님의 뜻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열매 없는 의미

예수님께 무화가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써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 곧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말씀하고자 한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신 것으로 보여주셨습니다성전은 이스라엘이 거룩한 제물의 피로써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는 제사에만 충실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이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그래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뜻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제사라는 형식에만 열심이었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성전에 장사꾼들이 성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반복해서 드리면서도 그 제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다시 말해서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자신들이 드리는 제사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전혀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자신들은 다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만 중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제사와 제물에 대하여 그들이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친히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또 친히 제물이 되게 하셔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그치게 하는 온전한 제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예수님의 이러한 제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가운데 반복되어 드려지던 제사가 그치게 된 것입니다이것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사실입니다따라서 이스라엘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이 말씀을 잊지 않았다면자신들의 드리는 반복되는 제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아가 친히 드릴 제사에 모든 희망을 두어야만 했던 것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온전한 제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자신들이 행하는 제사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오히려 그런 생각으로 드렸던 이스라엘의 제사가 이스라엘을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그것은 마치 우리가 예배를 빠지지 않고헌금하고기도하며봉사하면 그런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한 신앙인인 것처럼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기대하신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의 현실이며 또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무화가 나무가 말라버린 것은예수님이 기대하신 열매가 없는 자의 결국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신자가 무엇을 얼마나 행하였던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내세우는 우리의 행함을 아예 보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잎만 무성한 형편이 되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증거는 절대로 그들이 생각하는 율법에 대한 실천즉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드리는 제사의 제물이 흘리는 피를 통해서 증거되는 하나님이 용서를 아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증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등장하는 이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

오늘 본문 25절을 다시 보면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11:25)고 말씀합니다이 말씀은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6:12)라는 내용과 비슷합니다이 두 기도는 그냥 보면 먼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용서가 있어야 하고다음에 그러한 우리의 용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하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알지 못한 사람이 과연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알지 못하면 이웃을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한 용서는 도덕과 윤리 수준의 용서가 아니라예수님의 용서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용서는 조건적이 용서가 아니라 무조건인 용서입니다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식이 아니라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신자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믿는 신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한 용서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압니다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증거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예수님이 기대하신 열매입니다이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그 잎이 아무리 무성하다고 해도 쓸모없는 나무일 수밖에 없습니다그런데 용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아니 쉽고 어려운 문제를 떠나서 아예 불가능한 것이 용서입니다하나님의 용서에는 사랑과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대로 증거하고 나타낼 자질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이웃의 작은 실수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정도의 아량은 있을지 모릅니다하지만 예수님의 용서처럼 모든 죄를 용서할 능력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즉 우리의 용서에는 한계가 있고 범위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22.~~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2-24)고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마음에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는 말도 그대로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이 말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그 믿음으로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믿음을 말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믿음은 우리를 능력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그 일을 믿게 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들은 믿음이 주어지면 그 믿음에 의해서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합니다아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원하는 능력이 기도 응답이라는 능력일 것입니다하지만 그것은 믿음에 대한 큰 오해입니다따라서 의심치 않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그렇게 행하실 것임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산을 바다에 던지울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은 믿으십니까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입은 자기 백성을 이웃을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왜냐하면 자기 백성을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드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나타내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산도 바다에 던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그러한 자로 새롭게 고쳐내고야 말 것입니다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가지고 행하실 것입니다신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신자의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할 것이기 때문에자신이 이웃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고 따라서 신자는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그러한 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은 수없이 제사를 드리고죄 없는 제물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도 그 피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하나님이 원하시는 피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제사는 이미 제사가 아닙니다그냥 인간이 행하는 종교놀이이고 하나의 행사에 불과할 뿐입니다이러한 이스라엘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 제사는 드리면서도 자신들이 저주 아래 있고 말라죽어가는 운명에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잎이 무성한 채 죽어가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던 것입니다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종교적 현실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오늘날의 기독교도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보다는 자신들이 행하는 종교놀이에 심취해 있고종교놀이를 믿음의 열매로 내어 놓으며 자랑하는 것만 보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것이 바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실체임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신자는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 가를 보지 않고 ‘내가 누구인가?를 보는 자입니다내가 누구인가를 보면서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을 보게 되고 그러한 자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의 크심을 알게 됩니다그래서 이웃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예수님의 용서의 은혜를 증거하고 싶은 것이 용서를 맛본 신자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오늘도 이러한 주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여 우리의 실체와 주의 은혜를 보며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우리들에게 의심하지 않는 기도가 불가능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2예루살렘 성전에 장사꾼들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의 생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4. 당시 이스라엘과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착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오늘 말씀에서는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모습을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6.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그냥 보면 어떻게 이해된다고 합니까?

7.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용서는 어떤 것이며 또 그 열매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믿음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무엇이며우리가 의심치 않고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또 그 뜻을 아는 자들의 기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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